[칼럼] AI 시대, 대학은 더 이상 '지식 저장소'가 아니다

프라임경제
오랫동안 대학은 연구와 지식의 공간이었다. 교수는 지식을 전달했고, 학생은 이를 습득해 시험으로 증명했다. 중·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을 통과한 학생들은 대학에서 전공 지식을 쌓고 졸업 이후 사회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였다. 대학과 사회는 분리된 단계였고, 사회 진출은 늘 '그 다음'의 문제였다.

그러나 AI 시대에 이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최근 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전공 지식이나 학점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팀으로 협업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본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디지털 도구와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이는 지식 암기 중심의 교육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역량이다.

이 변화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 불안으로 이어진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의 간극,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압박, 실패하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겹치며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 자체를 미루게 된다. 이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과 사회가 단절된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지금 대학은 역할을 바꿔야 한다. AI 시대의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주입하는 마지막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회 직장생활을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첫 번째 공간이 되어야 한다. 팀 프로젝트를 통해 역할을 나누고, 협업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험은 곧 직장생활의 축소판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역할에 강한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성과가 나는지를 배운다.

이와 맞물려 정부는 2026년부터 '청년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청년에게 처음부터 완벽한 성과를 요구하기보다,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첫 경험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중요한 점은 이 첫걸음이 사회에 나간 이후에만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첫걸음은 대학 안에서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대학이 팀 기반 학습과 프로젝트, 실습을 통해 실수해도 괜찮은 환경, 연습할 수 있는 직장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준다면, 첫걸음 보장제는 정책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학에서 쌓은 경험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경력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청년의 진입 부담은 크게 낮아진다.

실제로 기업들은 이력서의 공백보다 "무엇을 해봤는가"를 묻는다.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가 곧 경력의 핵심이 된다. 대학에서의 프로젝트와 협업 경험은 졸업과 함께 사라지는 과제가 아니라, 첫 경력 포트폴리오가 되어야 한다.

이 흐름은 해외에서도 동일하다. 단기 프로젝트와 실무 중심 경험을 통해 경력을 쌓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무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연결해 역량을 증명하는 경로가 보편화되고 있다. 커리어는 더 이상 직선이 아니라, 연결된 경험의 집합에 가깝다.

이제 대학은 묻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 지식은 사회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
이 프로젝트는 어떤 직무와 연결되는가,
이 경험은 나의 첫 경력이 될 수 있는가.

AI 시대의 대학은 연구 중심을 넘어, 청년이 사회 진출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는 전환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대학에서의 팀작업과 포트폴리오는 사회로 이어지는 다리다. 그 다리가 단단해질수록, 청년의 첫 사회 진출은 실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장이 될 것이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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