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16] ESG를 핵심자원으로 下, 인터페이스의 순환경제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사무실 카펫이라 하면 낯설 수 있지만, 국내 대형 오피스 빌딩 바닥을 보면 종종 카펫 타일이 있다. 정사각형 카펫 조각을 바닥에 깔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손상된 부분만 교체할 수 있어 유지보수가 쉽다. 인터페이스는 이 분야 대표 기업으로 연 매출 10억 달러(1조4781억원)가 넘는다.

지난 1994년 인터페이스는 원료 조달의 불안정성 문제에 직면했다. 카펫 타일의 대부분이 석유에서 뽑아낸 나일론으로 만들어지는데, 원유 가격은 변동이 심하고 환경 규제는 강화됐다. 건축주는 친환경 자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CEO는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자원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전통적으로 카펫 회사 핵심자원은 석유 기반 원료, 생산 설비, 디자인 역량이었다. 인터페이스는 이를 ‘재생 소재 확보 능력’과 ‘순환 공급망’으로 재정의하고, 2020년까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미션 제로를 선언했다.

재생 원료를 어디서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핵심이었다. 카펫의 주원료인 나일론은 어망을 만드는 재료와 같았다. 전 세계 바다에는 매년 수십만 톤의 폐어망이 버려지는데, 나일론 어망은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고 산호초를 파괴하며 물고기를 죽인다.

인터페이스는 이 바다 쓰레기를 광산처럼 활용하기로 했다. 2012년 런던동물학회, 이탈리아 재활용 기업 아쿠아필과 손잡았다. 런던동물학회는 개발도상국 어촌 공동체와 협력 경험이 있었고, 아쿠아필은 폐어망을 100% 재생 나일론 원사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했다.

필리핀 중부 보홀섬과 세부섬 사이에 있는 다나혼 뱅크 지역은 과도한 어업으로 산호초가 황폐화되면서 어부들의 생계가 어려워진 곳이었다. 주민들이 폐어망을 수거하면 쌀이나 현금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모은 어망은 아쿠아필로 보내 재생 나일론 원사로 만들어 다시 카펫 원료가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프로그램은 필리핀 전역과 아프리카 카메룬까지 확대됐다. 인터페이스는 주민에게 소액 금융을 제공하며 지역사회에 뿌리내렸고, 주민은 해초 양식 같은 지속 가능한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30년 넘게 쌓은 지역 주민과 신뢰는 경쟁사가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 됐다.

핵심자원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지점이다. 폐어망을 일정한 품질의 나일론으로 재생하는 기술, 물류 네트워크, 지역사회 신뢰는 돈으로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다. 경쟁사가 똑같이 하려면 최소 5~10년은 걸린다.

고객 가치도 달라졌다. 유럽과 미국에서 친환경 건축 인증인 LEED, WELL을 받으려는 건물주는 건축 자재의 재생 소재 비율을 측정한다. 인터페이스 카펫을 쓰면 건물의 ESG 보고서 수치가 개선되는데, 특히 Scope 3 배출량 항목에서 효과가 크다. Scope 3는 기업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로, 원료 채굴, 운송, 제품 사용, 폐기 단계의 탄소가 모두 포함된다.

2020년 인터페이스는 세계 첫 탄소 네거티브 카펫 타일을 출시했다. 제품을 만들 때 배출하는 탄소보다 제품이 저장하는 탄소가 더 많다는 의미다. 2019년 미션 제로를 목표보다 1년 앞서 달성했고, 사용 후 카펫을 수거해 다시 원료로 쓰는 회수 프로그램도 구축했다.

석유 가격 변동에 덜 흔들리고, 고객에게는 탄소 감축 효과를 제공하며, 지역사회와 신뢰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순환경제가 핵심자원이 된 순간이었다.

국내 섬유와 화학 산업에 적용가능한 교훈이 있다.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섬유를 생산하는 기업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지만, 단순히 재생 소재를 쓰는 것과 안정적인 회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지역 재활용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고, 품질 기준을 함께 만들고, 재생 원료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건설과 자재 산업도 프로젝트 경쟁력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국내 건설사가 참여하는 해외 프로젝트에서 LEED 인증은 점점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회수한 자재를 다시 원료로 쓰는 순환 구조를 만들면 원료 조달 리스크를 줄이면서 고객에게 탄소 감축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제조업 전반에서는 폐기물을 2차 원료로 재정의하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역물류 시스템을 핵심 역량으로 구축하고, 회수한 제품에서 재사용 가능한 부품과 원료를 분리하는 기술을 확보하면 원료 가격 변동에 덜 흔들린다.

두 사례가 국내기업에 주는 교훈을 짚어보면 엔비디아는 기술 집약 산업에 적합한 모델을 보여줬다. 반도체, IT, 클라우드 산업은 에너지 효율 데이터를 축적하고 특허로 보호하며, 고객에게 운영비 절감 효과를 제시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는 자원 집약 산업에 적합한 길을 제시한다. 섬유, 화학, 건설, 제조업은 폐기물 회수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 파트너와 장기 관계를 맺으며, 고객에게 원료 안정성과 탄소 감축 효과를 함께 제공할 수 있다.

핵심자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엔비디아는 에너지 효율로, 인터페이스는 순환경제로 경쟁사가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었다. 기술 집약 산업은 에너지와 탄소 데이터를 무형자산으로 축적하고, 자원 집약 산업은 폐기물 회수 네트워크를 물리적 자산으로 구축하면 된다. 두 길 모두 ESG가 비용이 아니라 경쟁 무기가 되는 전략이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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