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시기와 정세 맞춰야”…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38주기, ‘경영 메시지’ 보니

마이데일리
1978년 8월 25일 열린 해외사업 추진위원회에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오른쪽)이 당시 36세의 3남 건희를 앉히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호암자전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시대를 앞선 창조적 지략가’라는 평가를 받는 호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38주기 추도식이 19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렸다. 독립적인 산업기반이 전무했던 일제강점기 무역상으로 출발해 IT업계를 이끄는 글로벌 기업 삼성을 일군 창업가를 기리는 날인 만큼 이병철 창업회장 특유의 경영 철학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특히 국가 간 첨단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가 자서전에 남긴 경영메시지는 삼성의 미래를 밝히는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이날 삼성그룹을 비롯해 신세계, CJ, 한솔 등 범삼성가 일원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시간대를 달리해 선영을 찾아 고인을 기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 참석을 위해 지난 17일 출국길에 올라 이날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추도식을 계기로 삼성가 안팎에서는 이병철 창업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湖巖自傳)>이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은 이 창업회장이 별세 1년 전 남긴 지적유산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자본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무역상사로 출발한 삼성이 OECD 국가경쟁력 30위권에 드는 선진국의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 지나온 험난한 여정이 담겼다.

이 책에는 ‘사업보국’으로 요약되는 그만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함께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이 빠짐없이 담겼다. 특히 목차 <제8편 삼성의 장래 : 제3장 삼성반도체에 내일을 건다>에 적힌 내용은 오늘날 삼성을 향한 경영 메시지로 읽힌다. 삼성은 올해 대법원 무죄 선고로 이재용 회장이 10년 만에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반도체 사업이 다시 상승 곡선에 올라탔다.

1985년 5월 21일 삼성반도체통신 기홍 반도체 2라인 준공식에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오른 쪽 5번째)과 이건희 선대회장(오른쪽 2번째) 등이 제막 줄을 당기고 있다. /호암자전

호암자전에 따르면 이 창업회장은 인구는 많고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길은 무역입국뿐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장기불황과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값싼 제품의 대량수출에 의한 무역도 이젠 한계에 와 있어 이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 개발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를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하는 제철과 쌀로 비교하기도 했다. “반도체 자체는 제철이나 쌀과 같은 것이어서 반도체 없는 나라는 고등기술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며 “이런 반도체를 외국에서만 수입할 경우, 모든 산업의 예속화를 면할 수 없고, 상대국과의 제품경쟁으로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을 당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이란 험난한 산업”이라며 “고가의 기기들이 계속 투입되어야 하는 장치산업이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산업”이라고 덧붙였다.

이 창업회장이 호암자전에서 다룬 사업 전반에 대한 소신 역시 첨단 기술과 인재 확보를 위해 국가 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입해도 손색없는 명쾌한 해답을 준다.

사업을 반드시 시기(時期)와 정세(情勢)에 맞추어야 한다고 고집한 그는 사업을 운영할 때 지켜야 할 4가지 수칙으로 △국내외 정세의 변동을 적확하게 통찰해야 하며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고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2, 제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함으로써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고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청산하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무에서 유를 일군 창조적 창업가가 전하는 경영지표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반도체 사업은 이 창업회장의 뚝심 경영이 결실을 거둔 대표적 사례”라며 “1970년대 전자산업의 성장을 예측하고 대대적인 반도체 사업 육성을 밀어붙인 그의 저력이 ‘삼성신화’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사업은 시기와 정세 맞춰야”…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38주기, ‘경영 메시지’ 보니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