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코스피가 4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인 '코스피 5000 시대'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반면 코스닥은 여전히 900선 초입에 머물러 있다.
물론 코스피가 4000선을 넘었다고 코스닥도 꼭 1000선을 찍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반면, 코스닥에 대해서는 뚜렷한 목표나 성장 로드맵을 제시한 적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책 방향 역시 '혁신·벤처 중심 시장 기능 강화'라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수치로 가시화된 목표가 없는 시장은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코스피는 반도체, 지배구조 개편, 세제 인센티브 등 정책 모멘텀이 대형주에 집중되며 올해 70% 이상 상승했다. 반면 코스닥은 절반 수준인 36.6% 오르는 데 그쳤다.
코스피200 상장지수펀드(ETF)에는 12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지만, 코스닥150 ETF 유입액은 2000억원 남짓이다. 정책·수급·기대가 모두 대형주로 쏠린 결과다.
내부 체력도 약화됐다. 상반기 기준 코스닥 상장사 절반 가까이가 적자를 냈고, 불성실 공시나 상장폐지 기업은 늘었다. 거래대금은 5조원 아래로 떨어지며 '개인 중심 시장'이라는 정체성마저 흐려졌다.
시장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이 나온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코스닥이 소외된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2부 리그'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기업도 투자자도 이곳을 정착지가 아닌 '거쳐 가는 시장'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카카오·셀트리온 등 일정 수준에 오른 성장주는 대부분 코스피로 옮겨갔다. 최근에도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들이 잇따라 이전 상장을 검토하면서 '탈(脫)코스닥'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면 코스닥은 결국 '성장 사다리'로만 소비된다. 남은 곳에는 굳건한 주도주가 쌓이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지수 격차나 시가총액 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구조적 문제다. 코스피가 제조·대기업 중심 시장이라면, 코스닥은 기술·혁신·벤처의 무대가 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두 시장의 성격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정체성을 잃으면 차별성도, 신뢰도 무너진다.
이제 필요한 건 '균형 잡힌 제도 설계'다. 정부는 코스닥 기업을 위한 세제·상장·공시 지원책을 별도로 마련해 자금 유입 통로를 넓혀야 한다. 거래소는 기술특례기업의 사후관리를 강화하되, 혁신형 기업의 코스피 이전 요건을 재조정해 '시장 간 이동'이 아닌 '공존'을 유도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도 배당, 자사주, 기업설명회(IR) 확대 등으로 투자자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코스닥이 살아야 기업공개(IPO)가 열리고, 벤처투자 회수시장이 돌며 자본시장의 저변이 넓어진다. 코스피 중심의 정책은 '숫자'는 만들 수 있어도 '시장'은 만들지 못한다. 내실이 약한 상태에서 외형만 키우면 균형은 오래가지 않는다.
증시는 속도가 아니라 구조다. 정책 프리미엄으로 오른 코스피는 언젠가 균형을 요구받는다. 뿌리가 얕은 나무는 바람 한 번에 기운다. 코스피만 키우는 건 꽃만 돌보는 일이다. 코스닥까지 함께 자라야 숲이 된다.
지금의 증시는 겉은 푸르지만 속은 비어 있다. '근본 없는 성장'은 오래가지 않는다. '코스피 5000'을 외치기 전에, 시장의 뿌리부터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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