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아무튼, 술 없는 계절

마이데일리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디자이너 강은영] 새 계절, 체중 감량을 시도하는 요즘.

감량을 위해 식단과 운동을 하고, 술을 끊기로 했다. 매일 유혹을 뿌리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와 싸움에 머리가 복닥거릴 때 <아무튼>시리즈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기 좋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만난 문장 덕분에 홀린 듯 책장을 넘겼다.

“최종 진실을 내놓기 전에 고트족처럼 적어도 두 번은 문제를 놓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로렌스 스턴은 이 점 때문에 고트족을 좋아했는데, 고트족은 먼저 술에 취한 상태로 토론하고 이후 술이 깬 상태에서 또 한 번 토론했다.” <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내 진짜 조상을 찾았다. (5페이지)

여기서 반한 문장은 “내 진짜 조상을 찾았다”이다. 그 덕분에 나도 내 진짜 조상을 찾았다.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빼앗긴 문장에 책이 상하지 않는 라벨을 붙인다. <아무튼, 술>은 공감되지 않는 부분을 찾는 편이 더 쉬울 만큼 모든 문장에 공감했다. 붙인다는 행동이 더이상 의미없음을 깨닫는다.

이 책은 술을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삶과 기억,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풀어낸 에세이다. 저자 김혼비는 첫 술의 서툰 기억부터 홀로 마시는 고요한 잔, 친구들과 웃음 섞인 술자리, 낯선 도시에서 건네받은 잔에 이르기까지 술과 얽힌 장면을 생생히 담았다.

술에 얽힌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술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감정, 사회적 맥락을 따뜻하고 위트 있게 풀어낸다.

술은 때로 위로가 되고, 때로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만든다. 나이와 계절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저자는 술을 통해 사람 사이 온기를 발견한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작은 일상의 의식을 완성한다.

이렇게 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삶의 계절을 함께한다.

흥미롭게도 <아무튼, 술>은 술을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술은 때로 몸을 무겁게 하고, 기억을 지우며,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술은 인간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삶이 한층 진솔해진다.

저자는 이러한 술의 양면성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술이 사람에게 주는 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을 긍정한다.

결국 <아무튼, 술>은 술 자체에 대한 찬가라기보다 술을 매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술잔에 비친 얼굴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친구와 가족, 사랑하는 사람, 지나간 시간이기도 하다. 술을 통해 일상을 기록하고, 인간관계를 성찰하며, 인생을 한 모금씩 음미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술은 결국 살아가는 태도를 드러내는 도구로 인생의 장면을 더욱 선명히 비춰주는 렌즈로서 그려진다.

술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해서 이 책을 쓰게 됐고, 이 책을 쓰게 돼서 말도 안 되게 기쁘다. 말도 안되는 일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세상에서, 다음 스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고 막막할 때에 일단 다 모르겠고, ‘아무튼, 술!’이라는 명료한 답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14페이지)

참 다행이다. 내게도 명료한 답이 하나 쯤 있어서. 명료함을 되찾기 위해 목표에 얼른 도달해야겠다.

|강은영. ‘표1’보다 ‘표4’를 좋아하는 북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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