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권력 시대 개막… 시장에 던진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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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주주 권익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에 이어 오늘(8월 25일) 잇따라 통과시켰다. 사진은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된 모습이다. / 뉴시스
국회가 주주 권익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에 이어 오늘(8월 25일) 잇따라 통과시켰다. 사진은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된 모습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한국 자본시장이 주주 중심 경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가 주주 권익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에 이어 오늘(8월 25일) 잇따라 통과시켰다. 주주권력 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하지만 기업에는 경영판단 부담과 소송 리스크라는 현실을 안겨주고 있어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상법 개정이 불러올 변화… 개혁인가 규제인가

이번 상법 개정은 두 차례에 걸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달 3일 통과한 1차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회사 차원의 이익을 넘어 주주의 권익까지 고려해야 함을 법적 의무로 명시한 것이다. 아울러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전자주주총회 병행 개최 의무화 △모든 감사위원 선임시 합산 3% 룰 적용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 변경 △독립이사 선임 비율 1/3로 확대 등도 1차 개정안에 담겼다.

이어 오늘(25일) 국회를 통과한 2차 상법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를 더욱 촘촘히 다듬는 데 방점이 찍혔다. 2차 개정안은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주당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인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2명으로 확대했다. 이로써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상법 개정은 기업 경영진에 대한 엄정한 책임성과 공정한 주주 대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전환된 셈이다.

시장에선 이번 개정안을 두고 “주주가 경영진의 진정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론과, “경영 판단에 대한 과도한 제약과 소송 리스크 등의 부담이 있다”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실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소액주주도 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만큼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느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역시 경영진 견제 기능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으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주주 중심 시대’로 가는 불가피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5일 ‘경제 8단체’는 상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대한 공동 입장문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두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주주권력 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지만 동시에 기업에는 경영판단 부담과 소송 리스크라는 현실을 안겨주고 있어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경제 8단체는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 및 소송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시급하다”며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의 합리적 개선, 경제형벌과 기업규모별 차등규제‧인센티브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가 넓어진 만큼 경영진의 의사결정 리스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에는 회사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던 경영 판단이 이제는 개별 주주 이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면서 분쟁 가능성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경영진이 회사 가치 제고를 위해 단기 손실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렸더라도 특정 주주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꼼꼼하게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시장 평론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을 두고 국내 자본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한다. 장기적으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과 해외 투자자 신뢰 제고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단기적으로는 경영권 분쟁 리스크와 기업 의사결정 지연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상법 개정안은 ‘주주 중심 경영’으로의 진입 신호탄이자 한국 자본시장이 새로운 실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업 경영진과 주주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과 전략적 판단을 요구하는 변화가 시작된 만큼 시장은 한동안 긴장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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