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동네 집 앞 식당이나 치킨집에서도 서빙 로봇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로봇이 일상의 일부가 되고 있다.
가정에서도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초기 진공청소기 기능만 하던 로봇은 이제 물걸레 청소까지 겸하는 복합형으로 진화했다. 심지어 스스로 걸레를 빨고 소독하는 기능까지 추가되면서 사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
정작 로봇 관련 더 큰 변화는 우리가 직접 접하지 못하는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 BYD 선전 공장에서는 로봇 1740대가 8초마다 차체 1개를 완성하며, 1분에 1대씩 전기차를 생산해내고 있다. BMW와 폭스바겐 같은 글로벌 기업도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면서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와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로봇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바로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가장 큰 도전은 급속한 인구 감소다.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세계 최저 기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제활동이 가능한 연령대인 생산가능인구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이미 인력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야간 근무나 주말 작업을 할 젊은 인력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바로 이런 인구학적 위기에 대한 현실적 해법을 제시한다. 24시간 연속 가동이 가능한 로봇들은 인력 공백을 메워줄 수 있고, 고령화로 줄어든 노동력을 보완할 수 있다. 특히 체력이 필요한 중량물 운반이나 정밀한 반복 작업에서 로봇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요양 분야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인간의 따뜻한 돌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환자 이송이나 약물 배분, 기본적인 모니터링 같은 업무는 로봇이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요양원에서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리프트 로봇이 요양사 허리 부담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로봇이 진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한 환경에서 활용이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야외 건설 현장이나 도로 공사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고충을 생각해보자. 35도를 넘나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하루 종일 작업해야 하는 분들에게 로봇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화학공장의 유독가스 누출 지역이나 원자력 발전소의 고방사능 구역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이지만 로봇에게는 그저 또 다른 작업 공간일 뿐이다. 고온의 용광로나 극저온 냉동창고처럼 극한의 온도 환경에서도 로봇은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낸다.
반복적인 중량물 취급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전체 업무상 질병의 60% 이상이 바로 이런 반복 작업으로 인해 발생한다. BMW 공장에서 테스트된 ‘피규어 02’ 로봇이 밀리미터 단위의 정확도로 부품을 배치하는 모습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모두 빼앗게 될까? 답은 그렇지 않다.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일자리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로봇이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로봇 설계와 제조, 유지보수 분야에서는 이미 새로운 고급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로봇과 인간 협업을 관리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운영자나 로봇 데이터를 분석하는 AI(인공지능) 전문가 같은 직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통해 기존 제조업 근로자들을 로봇 운영 전문가로 재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인간 역할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이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을 맡으면서 인간은 창의적 사고와 감정적 소통이 필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제조업 현장에서도 단순 조립보다는 품질 관리, 공정 개선, 맞춤형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업무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환경 측면에서 로봇은 놀라운 효율성을 보여준다. BYD 공장의 87% 자동화 시스템이 불량률 0%를 달성한 사례처럼, 정밀한 작업 수행으로 원자재 낭비를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한다.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는 로봇 도입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자동화 혜택이 대기업이나 자본가에게만 집중되고 일반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은 로봇 도입을 통해 얻는 수익을 근로자 재교육이나 복지 개선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로봇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기존 노동력과 상충 없이 정착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로봇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실업급여 확대와 함께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재교육 바우처 제도, 다른 직종으로의 전환을 돕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 시스템도 기존의 시장 운영방식과 달리 바뀌어야 한다. 로봇과 협업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과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하다. 평생학습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에 맞춘 새로운 학습 생태계 구축도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로봇 윤리와 안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법제화돼야 한다.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안전 규정, 개인정보 보호 원칙, 알고리즘의 투명성 확보 방안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 자동화로 얻어지는 이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로봇세 도입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만하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위험한 곳에서는 로봇이, 창의가 필요한 곳에서는 인간이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는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기술 발전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 바로 여기에 지속가능한 미래의 열쇠가 있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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