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이 '악마' 임윤아의 이름을 부를 때 [김지우의 P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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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리뷰

'악마가 이사왔다' / CJ ENM

[마이데일리 = 김지우 기자]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매일 새벽 악마로 깨어나는 여자와 그녀를 지켜보는 백수 청년. 얼핏 장난스러운 설정 같지만, '악마가 이사왔다'는 그 이면에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엑시트' 이상근 감독의 신작인 이번 작품은 코미디와 오컬트, 로맨스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결국 '이해와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되는 가장 인간적인 판타지를 완성한다.

영화는 퇴사 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청년 길구(안보현)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어느 날 새벽 전혀 다른 모습의 그녀와 마주치며 충격을 받는다. 매일 같은 시간, 악마에 씐 채 깨어나 달밤을 배회하는 선지. 길구는 그녀를 보호하는 아르바이트를 제안받고, 그렇게 엉뚱한 동행이 시작된다.

'악마가 이사왔다' / CJ ENM'악마가 이사왔다' / CJ ENM

이 작품은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를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퇴마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 오컬트물의 문법에서 벗어난다. 대신, '듣는 걸 잘하는 남자' 길구가 말 못 할 사연을 지닌 그녀에게 귀 기울이며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연다. 길구는 선지의 조상 대대로 이어진 이 저주를 풀 영웅도, 해결사도 아니다. 다만 분노와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금쪽이' 악마에게 가장 인간적인 예우를 다할 뿐이다.

악마 선지의 세상은 길구를 만나며 조금씩 확장된다. 아파트 단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시작해 한강, 영화관, 트램펄린장, 꽃밭으로 점차 넓어지고, 길구는 끝내 악마의 혼을 달래기 위해 홀로 제주로 향한다. 이러한 공간의 확장은 닫혀 있던 그녀의 내면이 열리는 과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악마가 이사왔다' / CJ ENM'악마가 이사왔다' / CJ ENM

성동일, 주현영의 서포트로 코미디 색채가 짙은 초중반부를 지나, 약간의 오컬트를 거쳐 절정을 맞이하고, 끝내 로맨스로 마무리되는 흐름은 유려하다. 이상근 감독 특유의 유머는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후반부는 K-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같은 맛을 주기도 한다. 클리셰를 적절히 버무린 결말은 관객들에게 익숙하고도 만족스러운 여운을 선사한다.

임윤아는 맑고 선량한 인간 선지와 악마 선지를 오가며, 무리 없이 1인 2역을 소화한다. 특히 인간 선지일 때의 비주얼은 굳이 짚고 넘어갈 정도로 아름답게 담겼다. 안보현은 순박하고 우직한 길구 역에 안정감을 더하며 반박불가

'호감캐'를 완성한다.

무속과 퇴마보다 강한 인류애를 얘기하는 '악마가 이사왔다'. 악마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그 전형적인 행위도 여기선 조금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오컬트를 버무린 유쾌한 웃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고, 따뜻한 여운은 관객들의 마음을 환기시킬 전망이다.

오는 13일 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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