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남극, 쿨한 한국②] 남극의 경고: 이상한 계절의 동물들

시사위크
시사위크 특별취재팀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월까지 남극에서 한 달간 취재를 진행했다. 당시 남극은 ‘혹독한’ 여름을 보냈다. 이 기후재난의 피해를 직격으로 받는 것은 이곳의 원주민들, 즉 펭귄을 비롯한 남극 생물들이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시사위크 특별취재팀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월까지 남극에서 한 달간 취재를 진행했다. 당시 남극은 ‘혹독한’ 여름을 보냈다. 이 기후재난의 피해를 직격으로 받는 것은 이곳의 원주민들, 즉 펭귄을 비롯한 남극 생물들이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끝날 것이라 말한다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멸망할 것이라 말한다.

욕망을 맛본 나는 불을 택한 사람들 편에 섰다.

하지만 만일 세상이 두 번 망해야 한다면

이미 증오에 대해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얼음도 불 못지않아 충분히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 로버트 프로스트 《불과 얼음》 (1920) -

시사위크|남극=박설민·김두완 기자  로버트 프로스트는 세상의 끝을 ‘불’과 ‘얼음’으로 노래했다. 이 시는 최근 우리에게 닥친 ‘기후위기’를 묘사하는 듯하다. 한국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불 같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 녹아내리는 극지의 빙하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인류에 대한 싸늘한 증오처럼 느껴진다.

지난해 12월부터 1월, 시사위크 취재팀이 한 달간 머문 남극도 ‘혹독한’ 여름을 보냈다. 추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원할 것 같던 빙하는 녹아내렸다. 차가워야 할 대지는 낮게 깔린 열기로 뒤덮였다. 이 기후재난의 피해를 직격으로 받는 것은 이곳의 원주민들, 즉 남극 생물들이었다.

◇ 줄어드는 턱끈펭귄, 늘어나는 젠투펭귄

“턱끈펭귄의 부화가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에요. 지금까지 여러 번 남극에 왔지만 이렇게 일찍 새끼가 부화한 것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지난해 12월 25일, 킹조지섬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No. 171 나레브스키 포인트 ‘펭귄마을’을 방문한 세종기지 하계대 연구팀의 남현영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원래 턱끈펭귄은 12월 20일쯤부터 새끼가 부화한다. 하지만 지난해엔 12월 15일쯤부터 부화를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남극의 여름이 일찍 찾아오면서 부화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특히 턱끈펭귄의 평균부화일은 매년 0.66일씩 빨라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기후변화로 남극의 여름이 일찍 찾아오면서 턱끈펭귄의 평균부화일이 매년 0.66일씩 빨라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기후변화로 남극의 여름이 일찍 찾아오면서 턱끈펭귄의 평균부화일이 매년 0.66일씩 빨라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실제로 턱끈펭귄은 킹조지섬의 기후변화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극지연구소(KOPRI)가 발표한 ‘남극특별보호구역 연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985년 기준 2,500개의 턱끈펭귄 둥지가 펭귄마을에서 확인됐다. 이후 지속적인 개체수 증가를 이뤄 2012~2013년 기준 둥지 수가 3,332개까지 늘었다. 하지만 이후 가파르게 개체수 감소가 진행됐다.

특히 가파른 둥지 수 감소가 나타난 기간은 2018년~2019년이다. 전년과 비교해 둥지 수가 17%나 급격히 줄어 2,388개였다. 당시 킹조지섬 지역의 온도는 12월 1.47°C였다. 펭귄의 개체수가 늘기 시작했던 2012~2013년 12월 기온인 0.79°C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8년, 한국에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운 겨울과 41℃ 등 일 최고기온을 기록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반면 턱끈펭귄보다 개체수가 훨씬 적었던 젠투펭귄 숫자는 늘어났다. 1985년 기준 펭귄마을에서 서식하던 젠투펭귄의 둥지는 500~600개였다. 하지만 2008년과 2009년을 기점으로 개체수가 급증해 2016~2017년 둥지 수는 2,604개까지 늘었다.

올해 환경부에서 발표한 ‘남극특별보호구역 모니터링 및 남극기지 환경관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젠투펭귄은 모니터링이 시작된 2006~2007년 이래 둥지 수가 57.6% 증가하며 연간 2.6%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턱끈펭귄의 둥지는 동일 기간 23.4%가 줄면서 연평균 1.5%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인근 펭귄마을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 펭귄들의 부화시기에 영향을 미쳐 개체수의 변화가 해마다 변화가 나타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남극세종과학기지 인근 펭귄마을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 펭귄들의 부화시기에 영향을 미쳐 개체수의 변화가 해마다 변화가 나타났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전문가들은 턱끈펭귄의 감소와 젠투펭귄의 증가가 남극 기후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한다. 턱끈펭귄은 남극반도에서도 추운 지역에 주로 서식한다. 때문에 기온이 해마다 상승하는 서남극 지역의 개체수가 줄어든다. 반면 젠투펭귄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도 생존율이 높다.

김정훈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젠투펭귄의 분포지역은 아남극의 도서지방과 남극반도 일대”라며 “턱끈펭귄과 아델리펭귄에 비해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 서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남극의 저위도 지방까지 기온이 상승하면 이들의 번식지도 저위도의 해안이나 도서지방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며 “젠투펭귄의 서식지는 보다 남쪽으로 확장되고 턱끈펭귄이나 아델리펭귄은 킹조지섬을 떠나 보다 남쪽으로 서식지를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바뀌는 먹이환경, 위기의 아델리펭귄

남극의 온난화는 주변 생물들의 먹이 활동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남극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크릴새우’와 ‘옆새우’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빙하가 녹아 바다의 염분 농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삼투압으로 체내 염분을 조절하는 크릴새우들은 몸이 터져서 죽게 된다.

실제로 호주 정부 산하 연구기관 ‘호주 남극부 남극해 생태계 프로그램(AAP)’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남위 60도 북쪽 지역의 크릴새우 밀도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0년 전만 해도 남극해의 크릴새우의 밀도는 다른 지역보다 8.5배 높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2.2배 수준으로 급감했다.

아델리펭귄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종이다. 이들은 얼음이 가득한 남극에서 살아야하지만 최근 빙하가 녹으면서 사진처럼 푸른 이끼들판에서 종종 발견되고 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아델리펭귄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종이다. 이들은 얼음이 가득한 남극에서 살아야하지만 최근 빙하가 녹으면서 사진처럼 푸른 이끼들판에서 종종 발견되고 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남극의 크릴새우 감소는 펭귄들의 먹이활동에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아델리펭귄’의 경우 남극 기후변화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종이라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정훈 책임연구원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남극 케이프할렛(Cape Hallett) 지역의 아델리펭귄 새끼들의 식단에서 크릴새우가 차지하는 비율은 최대 95%에 달했다.

김정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아델리펭귄과 턱끈펭귄은 크릴의존성 펭귄이기 때문에 젠투펭귄에 비해 서식지나 먹이 선택의 폭이 좁다”며 “따라서 해빙(海氷) 감소로 인한 크릴새우의 개체수 변화는 이들(펭귄)의 번식성공률이나 새끼의 생존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이 악화되면서 아델리펭귄들의 사냥패턴도 바뀌고 있다. 김정훈 책임연구원은 아델리펭귄 약 4만 쌍이 서식하는 남극 로스해 케이프할렛(Cape Hallett)에서 2021~2022년, 2022~2023년 두 하계 기간 동안 아델리 펭귄 47마리의 이동 및 먹이 활동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아델리펭귄들은 새끼의 먹이를 둥지에서 가까운 평균 7km에서 구했다. 반면 성체인 자신의 먹이는 약 45km 떨어진 곳의 장거리 사냥터를 이용했다. 기후변화로 먹이 환경이 불리해지자 영양공급을 자주 받아야 하는 새끼들의 먹이는 가까이서, 그렇지 않은 자신의 먹이는 멀리서 구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이원적 먹이사냥 전략(Bimodal foraging strategy)’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아델리펭귄은 주요 펭귄 3종 중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종”이며 “뿐만 아니라 사냥·이동·휴식에 해빙(海氷)이 필수이기 때문에 해빙이 없는 지역은 생존에 매우 불리하다. 남극반도의 온난화가 가속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남극에서 아델리펭귄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 뜨거워진 남극, 전염병 확산도 치명적

기온이 상승하는 남극은 질병 확산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이다. 외부 대륙과 남극을 오가는 물새들이 내륙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남극에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갈색도둑갈매기의 사체. 최근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의심 사례가 발견되면서 세종기지를 비롯, 주변 연구기지들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죽은 갈색도둑갈매기의 사체. 최근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의심 사례가 발견되면서 세종기지를 비롯, 주변 연구기지들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특히 우려되는 종은 ‘스쿠아(갈색도둑갈매기, Brown Skua)’다. 스쿠아는 11월에서 12월 남극을 방문해 번식한다. 이후 겨울이 되면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연안으로 이동하는 철새다. 때문에 외부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될 위험성이 있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스쿠아의 활동반경과 기간이 늘어나면서 위험성은 커지는 추세다.

영국 동식물 건강청(APHA-Weybridge) 바이러스부 연구팀은 2023년 9월부터 11월 사우스조지아와 포클랜드 제도의 남극 및 아남극 지역에서 스쿠아와 남극제비갈매기, 남방큰재갈매기 등의 사체에서 ‘H5N1 HPAIV’를 검출했다. H5N1 HPAIV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높은 전염성과 치사율을 가진 위험한 바이러스로, 우리가 흔히 ‘조류독감’이라 부르는 종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남극의 펭귄 등 조류뿐만 아니라 다른 포유동물들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APHA-Weybridge 연구팀은 2023년 12월 초 사우스조지아에서 남방코끼리물범(Mirounga leonine)과 남극물개(Arctocephalus gazella) 무리에서 H5N1 HPAIV의 감염을 확인했다. 남방코끼리물범은 5마리, 남극물개는 1마리가 양성 반응을 보였고 호흡 곤란, 기침 등의 증상을 보였다.

남극세종과학기지도 지난해 12월 펭귄마을 인근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 것으로 의심되는 스쿠아 사체가 발견됐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도 지난해 12월 펭귄마을 인근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 것으로 의심되는 스쿠아 사체가 발견됐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사진=남극특별취재팀

APHA-Weybridge 연구팀은 “2023년 10월 8일 조류인플루엔자가 처음 발견된 이후 12월 9일까지 사우스조지아에서 총 33마리의 조류 사체와 17마리의 포유류 사체가 채취됐다”며 “여기에는 8개 지역에 걸쳐 5종의 조류와 2종의 포유류가 포함됐고 이 중 66%에서 H5N1 HPAIV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제38차 월동연구대의 우재호 생물대원과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 하계대 야생동물팀은 펭귄마을 인근 지역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스쿠아 사체를 발견했다. 서남극 킹조지섬 바톤반도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감염 의심 사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재호 대원은 “남극 연구자들은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 단계별 대응 방안을 두고 활동한다”며 “킹조지섬 바톤반도에서 고위험군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극의 ‘이상한 계절의 동물들’은 지금 길을 잃고 있다. 일찍 부화한 턱끈펭귄, 북쪽으로 떠나야 하는 젠투펭귄, 먹이를 찾아 먼 바다로 가는 아델리펭귄, 그리고 낯선 바이러스에 쓰러진 스쿠아와 물범들. 모든 생명이 제자리를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제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핫한 남극, 쿨한 한국②] 남극의 경고: 이상한 계절의 동물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