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고난 저 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30여 년 전 없어진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 사람은 누구라도 남들은 없는 특유의 재능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잘 살리라는 것이다.
미국 남자 프로농구(NBA) 올해 우승 감독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마크 데이그널트를 보면서 한국의 옛 국민교육헌장이 생각난 것은 그의 경력이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 그가 걸어온 농구 인생은 사람마다 타고난 소질은 정말 다르며, 그것을 어떻게 계발하느냐에 따라 운명은 1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NBA는 세계 농구의 절대 강자 리그. 30개 구단 가운데서 우승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데이그널트는 40세에 우승. 그러나 지난해 우승 감독 ‘보스턴 셀틱스’의 조 매줄라가 36세였기 때문에 젊은 나이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를 단연 돋보이게 한 것은 농구 경력.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고교 선수 경력뿐이다. NBA는커녕 어떤 프로구단은 물론 대학에서조차 선수를 한 적이 없다. 대학 4년 내내 농구부 매니저로 자원봉사를 했다. 선수들 발목을 테이핑하고, 시합 중 선수들에게 땀 닦는 수건과 물병을 챙겨주던 그가 절정의 농구 고수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NBA 감독이 되었다. 우승까지 일궜다. 말이 되는가?
농구를 넘어서 모든 스포츠의 상식을 깬 파격 중의 파격. 한국에서 고교 3년간 농구나 축구 선수를 한 경력이 고작인 지도자가 프로 감독이 되고 우승한 예가 있는가? 데이그널트는 농구를 잘하는 소질은 없었다. 그러나 농구를 가르치는 데는 천재였다. 그는 자신만의 농구 재능을 갈고닦아 농구 천하를 평정했다.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지 않는다”는 스포츠계 속설은 NBA에서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현재 30개 구단 가운데 누구나 인정하는 NBA 최고 선수 출신 감독은 둘 뿐이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제이슨 키드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천시 빌럽스. 키드는 10차례, 빌럽스는 5차례 NBA 올스타에 뽑혔다. 감독 30명 중 절반가량만이 NBA 선수 경력이 있을 따름이다,
■ 농구 하는 것과 농구 가르치는 ‘재능’은 다르다
스포츠 세계는 특히 지식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한다. 경험에 너무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선수 시절 이름값만으로 줄기차게 프로나 국가대표 감독을 차지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떤 선수들은 명선수 출신 감독을 무조건 숭배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맹점이 있다. 위대한 선수들은 대개 타고난 재능을 가진다. 그들은 다른 선수들이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 뛰어난 기술을 어떻게 해내는지, 그 과정을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재능이다.
그래서 선수 출신 감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는 이들은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니다. 대체로 평범한 수준의 선수였던 사람들이다. 대신 가르치는 소질을 타고난 것이다.
NBA 우승 11번 필 잭슨, 5번 팻 라일리 등 최고 명장들은 NBA 선수 시절 후보였을 뿐이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감독으로 2번 우승한 그렉 포포비치는 공군사관학교 농구부 주장. 그러나 NBA 선수는 아니었다. ‘마이애미 히트’ 감독으로 두 차례 우승한 에릭 스포엘스트라 역시 대학 선수를 했으나 NBA에서 뛴 적은 없다. 마이애미에서 비디오 코디네이터로 시작,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 보스턴의 매줄라도 대학 포인트 가드였으나 NBA 신인 선발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이런 명장들은 최소한 NBA 후보였거나 대학 선수로는 뛰었다. 이들에 비해 데이그널트는 한 번도 농구의 엘리트 길을 밟은 적이 없다. 그러나 NBA 사상 처음으로 고교 선수만의 경력으로 우승 감독까지 되었다.
최근까지 ‘멤피스 그리즐리스’ 감독이었던 테일러 젠킨스(41)도 고교 선수 경력밖에 없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농구에서 뛴 적은 없다. 대학 3학년 여름 ‘샌안토니오 스퍼스’ 운영 부서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는 월가에서 수십만 달러를 버는 동기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NBA의 하부 리그에서 코치로 출발했다. 세계 최고의 직장을 마다할 만큼 농구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는 오랜 코치 생활을 거쳐 19년 멤피스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22년에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5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사실상 확정한 상태에서 잘리고 말았다.
젠킨스에 이어 비슷한 나이의 데이그널트는 20년 ‘오클라호마시티’의 감독으로 깜짝 승진했다. 원래 데이그널트는 농구부 매니저로 일했던 코네티컷대를 졸업하자마자 전공인 교육학 석사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데이그널트는 자신이 ‘농구를 하는 것’보다는 ‘농구를 분석하고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음을 진작 깨달았다. 체육관에서 쪽잠을 자면서 영상 분석을 맡아 감독의 전략·전술을 공부했다. 농구부 운영의 기본기를 몸으로 익혔다. 어떻게 농구를 가르치는지를 배웠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농구를 사랑하고 많이 알아도 선수 출신이 아닌 그가 농구의 길로 나아 갈 방도가 없었다. 지도력은 눈에 드러나는 이력서보다 철학과 방식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빠른 결과에 집착하는 스포츠 문화 속에서 고교 선수 경력뿐인 데이그널트의 설 자리는 없었다.

■ 데이그널트가 세계의 선수에게 던진 교훈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꿈을 포기하자 마라”
그러나 4년간 농구부 매니저로 데이그널트를 데리고 있었던 짐 칼훈 감독이 그의 재능을 꿰뚫어 알아차렸다. 칼훈은 전국대학선수권 3번 우승의 명장. 12살 때부터 길거리에서 마약을 팔며 15번이나 경찰에 붙잡혔던 캐런 버틀러를 수렁에서 구해내 코네티컷의 대선수에 이어 NBA 스타로 만들었다. 버틀러는 지금 NBA ‘마이애미 히트’의 코치다.
칼훈 감독은 데이그널트의 석사 진학을 말렸다. 농구 지도자가 될 것을 권했다. 작은 대학에 코치로 그를 추천했다. 고교 선수 경력이 고작이던 데이그널트를 대학 코치로 만들어 준 칼훈의 안목·추진력도 놀랍다.
NBA 우승 12시간 뒤 그는 영원한 스승 칼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코네티컷대에 가지 않았고, 감독님이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스승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의 NBA 성공은 그런 겸손 위에 세워졌다.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플로리다대 코치 등을 거친 뒤 G리그 ‘오클라호마시티 블루’의 감독이 되었다. 당시 29세 데이그널트는 프로 근처에 가본 적이 없었다. 오클라호마는 그의 농구 기술이 아니라 농구 철학을 선택했다. 그는 주목을 좇지 않았다. 선수들의 성장을 좇았다. 마침내 오클라호마가 그를 감독으로 승진시킨 것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G리그 현장에서 묵묵히 선수들을 믿고 지도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NBA 감독은 단순히 농구에만 능통해서는 안 된다. 선수들과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고 그들의 성격도 관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데이그널트는 이 두 영역 모두에서 탁월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전술 능력이 탁월할 뿐 아니라 인간관계 구축의 기술도 통달했다. 그는 단지 농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지도하는 감독이다.
고교 선수 출신 데이그널트와 젠킨스가 NBA를 평정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찍 간파하고 그 재능을 갈고닦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선수도 되지 못한 그들이 NBA 최고 감독이 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절대 스포츠의 꿈을 포기하지 마라! 세계 모든 선수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모든 인생들에게도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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