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부천=이영실 기자 “30년 후에도 제 특별전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3일 경기 부천시 현대백화점 중동점에서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집행위원장 신철) 배우 특별전 ‘더 마스터: 이병헌’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특별전 주인공 이병헌이 참석해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제는 2017년부터 한국 영화의 현재를 이끄는 동시대 대표 배우를 선정해 ‘배우 특별전’을 진행해 오고 있다. 전도연을 시작으로 정우성·김혜수·설경구·최민식 지난해 손예진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특별전 주인공으로 선정돼 관객과 더 가까이서 소통했다.
이병헌의 행보를 한마디로 축약한 ‘더 마스터: 이병헌’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대표작 상영을 비롯해 특별전 기념 책자 발간 및 메가 토크와 사진·애정품 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이병헌의 연기 인생 30여 년을 돌아본다.
특별전 상영작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 △‘번지점프를 하다’(2001) △‘달콤한 인생’(2005) △‘그해 여름’(2006) △‘악마를 보았다’(2010)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내부자들’(2015) △‘남한산성’(2017) △‘남산의 부장들’(2019)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등 10편이다.
이병헌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 아티스트다. 스크린 안팎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에서 독보적인 연기력을 펼쳐온 것은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넷플릭스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 시리즈까지 글로벌 무대에서도 주목받는 성과를 일궈냈다.
국내외 수상 경력 또한 화려하다.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대종상 6회(34·38·49·53·56·59회), 백상예술대상 8회(32·39·42·46·47·52·55·56회), 청룡영화상 5회(22·30·34·37·4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3회(25·36·40회) 등 80여 회에 달하는 수상을 기록했다. 또 2006년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기사장을 받았고 2021년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이병헌은 특별전 주인공으로 나서는 소감과 함께 자신의 배우 인생을 돌아보고 연기의 의미를 짚으며 앞으로 더 다채롭게 채워갈 앞날을 예고했다.

-특별전 주인공으로 나서는 소감은.
“특별전을 한다고 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든 감정은 민망함이다. 민망함의 연속인 것 같다. 나에 대한 칭찬을 계속 듣게 되는 게 행복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참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전을 하는 것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고 언제 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내가 그렇게 특별전을 할 만큼 잘 해왔나 하는 부끄러움도 느낀다. 선배들이 평생 일궈놓은 작품을 가지고 특별전을 하는 걸 봤을 때 막연하게 내가 저렇게 한 가지 일에 파고들어 저런 위치에서 특별전을 할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도 이런 날이 왔다는 게 배우로서 뿌듯하기도 하고 보람도 느껴지는 순간이다.”
-특별전 상영작 10편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또 지난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며 어떤 소회가 들었나. 앞으로는 어떻게 채워가고 싶나.
“특별하진 않다. 그냥 내가 찍은 영화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인 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고 내 영화 인생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을 택했다. 또 그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골고루 보여주고 싶다 정도를 감안하면서 영화를 선정했다. 영화를 선정하면서 참 많은 작품을 찍었구나 생각하긴 했는데 현실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어렸을 때 보던 선생님이 된 것 같은 상황이 됐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10년, 20년, 30년 후에도 이 자리에서 나의 더 커다란 특별전을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본다.”
-연기 인생 동안 한국 영화의 전성기와 지금의 위기를 모두 겪으며 걸어왔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함께 작업하는 영화인들을 볼 때마다 늘 빠지지 않는 주제가 지금의 영화 위기와 극장 위기다. 늘 이야기를 나누는 소재가 됐다. 정말 분명한 것은 위기는 위기라는 거다. 하지만 탈출구처럼 스트리밍 서비스가 생겼다.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장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언젠가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나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는 순간을 맛보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나라에서든 재밌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면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결과물이 훌륭하다면 그 성과 또한 어마어마하게 달라지는 상황이 이미 생겼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극장, 영화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또 다른 해결책을 찾을 방법이 새롭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가 아무리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해도 아직 특별한 해결책을 찾은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어떤 답이 있다고 말은 할 수 없지만 과도기라는 생각은 한다. 뭔가 다시 안착하기 직전, 약간은 정신없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영화 ‘킹 오브 킹스’를 통해 목소리 연기에도 도전했다. 참여 계기는.
“내가 출연한 작품들이 거의 다 19금이라서 아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전체를 보여준 작품은 3편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함께 봤는데 ‘귀마’ 역할이라고 했더니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난 그만 볼래’라고 하더라. 연기고 캐릭터라고 설명을 해줘도 내심 귀마나 프론트맨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상처고 우리 아빠가 좋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킹 오브 킹스’는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는 불교지만 종교와 관계없이 좋은 이야기고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속 인물이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가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몇 년 전에 미국에 가 있을 때 소니 픽쳐스에서 연락 와서 LA 본사에서 기획하는 분들과 만남을 몇 번 가졌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겠냐고 했다.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소니 픽쳐스에서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공개됐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몇 번의 미팅을 거쳤고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한국 녹음실에서도 녹음을 하고 화상 연결을 통해 감독님들의 디렉팅을 받으면서 녹음을 하기도 했다. 영어로 더빙해야 해서 사실 힘들었다. 아주 디테일한 뉘앙스나 감정을 영어로 표현해야 하는 게 굉장히 큰 숙제였다.”
-참여한 작품들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한 소회도 궁금한데.
“나도 정말 깜짝 놀랐다. ‘오징어 게임’ 시즌3가 시리즈 부문 글로벌 1위를 하고 있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영화 부문 1위를 하고 있지 않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신난다. 케이팝의 현재 위치가 어느 정도 있고 얼마나 대단한지 업계에 있으면서도 새삼 놀라웠다.”
-최근 ‘오징어 게임’ 시즌3도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리즈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나 역시 물론 재밌게 읽었지만 너무나 실험적이라서 쫄딱 망하거나 아주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겠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가 되게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오락적이라 재밌지만 또 한편으로 보자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이슈가 다 들어가 있다. 지금의 세상을 축소해 놓은 게 ‘오징어 게임’이 아닐까 싶다. 굉장히 한국적이고 한국 전통적인 놀이를 소재로 하고 한국 문화를 진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임에도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재밌게 봐준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도 함께 나누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러 이슈나 이야기의 큰 주제인 인간성, 인간성의 부재에 대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절실하게 느끼고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이 안에 푹 빠져서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그 인물이 된다. 캐릭터를 탐구하는 본인만의 방법, 비결이 있다면.
“공감대가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큰 필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고 각기 가진 처지 또한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폭넓게 공감대를 갖고 사람을 대하고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늘 관찰하는 편이다. 왜 저런 버릇이 생겼지, 왜 저런 감정을 느낄지, 왜 저런 특이한 버릇이 생겼지 등. 정답은 없지만 계속 추측하고 예측하면서 내 안에서 답을 찾아나간다. 정답이 아닐지언정 내 안에서 확신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게 공감대를 넓혀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조금 더 용이하게 받아들여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생기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배우 이병헌에게 연기란.
“딱 성인이 됐을 때부터 연기를 했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연기를 시작해서 이제는 연기를 한 시간이 내가 살아온 것의 반보다 긴 것 같다. 예전에 ‘이병헌의 진짜 모습인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을 했는데 어느 날 그 질문을 받으니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배우로서 많은 역할을 만나면서 그 캐릭터들이 섞은 게 어쩌면 나일까? 나의 원래 성격은 어땠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더라. 결국 나를 통해 나가기 때문에 내가 묻을 수밖에 없는 게 작품 속 캐릭터다. 그러면서 나 역시 캐릭터를 통해 변해가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캐릭터에게 영향을 주듯 나 역시 캐릭터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내게 연기란 (캐릭터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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