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최고령 공격수, 배구공 놓지 않는다…황연주가 김천에서 그리는 해피 엔딩 [MD더발리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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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황연주./더발리볼

[마이데일리 = 이정원 기자] ‘꽃사슴’ 황연주의 배구는 끝나지 않았다. 5월 말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현대건설에서 15년을 뛴 황연주가 한국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것. 현대건설은 새 시즌 구상에서 황연주를 제외했고, 도로공사는 아직 황연주의 힘이 필요했다. 황연주도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를 마쳤다. V-리그 우승 6회에 V-리그 역대 서브 1위(461개)&득점 3위(5847점)에 빛나는 황연주. 김천에서 자신의 마지막 배구 Chapter를 그리고 있는 황연주다.

Q. 김천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일단 밥이 마음에 들어요. 집밥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도로공사가 그렇게 나와요.

Q. 등번호는 정했나요.

4번이요. (전)새얀 선수가 양보를 해줬어요. 먼저 이야기 꺼내기 예민할 것 같아서, 그냥 남는 번호를 할 생각이었어요. 4번 욕심은 있지만, 뺏을 생각은 없었죠. 그런데 먼저 제안을 해주더라고요. 고맙고, 감동받았어요. ‘연주 언니 오면 저는 다른 번호 할게요’라고 했대요. 감사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줬어요.

Q. 지방 연고 팀에서 뛰는 건 처음이잖아요.

아버지 직업이 경찰이었어요. 어릴 때 명절에 어딜 간 적이 많이 없어요. 40년 만에 지방에서 생활을 하게 됐네요. 그런데 저는 가정이 있잖아요. 주말에 집으로 가는데, 기차표 예매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파워 'J'에요. 무조건 미리 표를 예매해야 하는데, 전날 취소표를 기다리는 게 미칠 것 같더라고요(웃음).

Q. 주말부부 생활이네요. 남편(박경상 남자프로농구 부산 KCC 전력분석)과는 자주 전화 통화하나요.

남편은 떨어져 지내니까 좋아하던데요. 전화는 자주 해요. 매일 같이 용인 마북리(KCC&현대건설 숙소 위치)로 출근했는데, 이젠 아니잖아요. 요즘 같이 살 때보다 연락을 더 자주 해요.

Q. 그 어떤 선수들보다 화제가 된 이적이었어요.

저도 팀을 옮길 거라 생각하지 못했죠. 저에게도, 도로공사 입장에서도 많은 부담이었는데 그저 감사하죠. 사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현대건설에서 은퇴할 거라 생각했잖아요. 어쩌면 이번 이적이 저에게는 배구 인생의 마지막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겠죠.

한국도로공사 황연주./더발리볼

Q. 15년 머문 현대건설을 떠나게 됐어요. 이적을 택한 계기가 있다면요.

사람이 그 환경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안주를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안주를 하고 있더라고요. ‘외국인 선수랑 같은 포지션이니까 못 뛰는 건 어쩔 수 없지, 도와주기만 하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몇 년을 지낸 것 같아요. 배구 선수로서 제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은퇴하기 전까지 팬들에게 배구하는 황연주를 보여드려야죠.

Q. 이적 과정도 궁금해요.

현대건설에서 나오고 나서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효쌤’(이효희 도로공사 코치)이나 김세영 흥국생명 코치님과 통화하면서 ‘난 이제 끝났다, 그만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고요. 사실 프로 선수의 세계는 비즈니스잖아요.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해는 되죠. 은퇴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도로공사에서 한 번 해보자고요.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당연히 고민했죠. 어떻게 보면 현대건설에서 아름답게 은퇴하는 게 팀이나 저에게 예쁜 그림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현대건설과 다시 한번 만나 어떻게 해야 될지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현대건설에서는 확답이 없었어요. 코치직을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약속된 게 없었죠.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현대건설에 ‘계속 운동을 하고 싶다고, 도로공사에 가고 싶다‘고 말했죠.

Q. 옆에서 남편이 많은 조언을 해줬네요.

남편이 저보다 먼저 은퇴를 했잖아요. 처음에는 힘들고 원했던 모습의 은퇴가 아니기에 힘들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몇 개월 지나면 마음도 편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고, 관리도 안 해도 되고,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라고 위로도 해줬고요. 도로공사 가서 뛰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이유도 남편 때문이에요.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많은 존중을 해줘요.

Q. 현대건설을 떠날 때 팀원들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사실 직접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어요. 대신 전화나 문자로 ‘언니와 함께 해 영광이었어요’, ‘레전드와 함께 운동해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마음이 찡했죠. 강성형 감독님도 ‘너는 더 잘할 수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힘을 주셨고요.

Q. 현대건설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이적 첫 시즌인 2010-2011시즌 통합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FA로 처음 팀을 옮겨서 마음도 힘들었고 잘해야 되겠다는 부담감도 엄청 컸어요. 그때 잘했고, 팀도 통합우승도 했잖아요. 떠날 때가 되니까 처음 왔었던 때가 기억이 나더라고요.

Q. 김종민 감독이 해준 이야기가 있나요.

감독님께서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고요(웃음).

한국도로공사 황연주./더발리볼

김연경-박철우 등 은퇴, 위기의 한국 배구

“옛날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그대로를 지켜봐 주길”

Q. 김연경 선수를 포함한 박철우, 문성민, 표승주 등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했어요. 함께 V-리그 무대를 누볐던 선수들인 만큼, 느끼는 감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당연히 서운하죠. 같이 뛰었던 선수들이 떠나니까 ‘나도 은퇴를 해야 되는 건가’ 하는 눈치도 보이고요. 저도 얼마 남지 않은 건 알고 있거든요. 그러나 은퇴 시기를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경기를 마음껏 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이제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기량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면 그만둘 거예요. 남편은 ‘아직 할 수 있을 때 해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다시 네 인생에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인데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라’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이 나이에 다른 직장을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은퇴해서 후회하지 말고, 제가 못한다고 느껴질 때 그만둘 생각입니다.

Q. 김연경 선수의 은퇴는 어떻게 바라보세요.

승주 선수는 조금 놀랐고, 연경이는 시즌 때부터 은퇴를 한다고 계속 말했잖아요. 그리고 그만두더라도 충분히 다른 분야에서 잘할 수 있는 선수니까 걱정하지 않아요.

Q. 요즘 한국 배구에 위기가 왔다고 하는데, 연주 선수 생각은 어때요.

음, 세대도 다르고 배구의 흐름도 다 다르잖아요. 벌써 제가 V-리그에 데뷔한 지도 20년이 넘었어요.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는데, 두 번 바뀌었어요. 그만큼 세계 배구 추세도 달라졌고, 지금은 모든 게 달라요.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지만, 흐름에 맞춰 가아죠. 지금 선수들과 옛날 선수들을 비교할 필요가 없어요. 저희 세대도 언니들 세대와 엄청 비교를 당했어요. 지금 그대로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수 풀도 적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Q. 후배 선수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웃음). 시대가 변해서 선수들이 편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부럽기도 하고요. 또한 리그의 시스템, 구단의 마인드도 열려 있어요. 비록 제가 나이도 많이 먹었고, 젊은 선수들에 비해 금전적인 혜택은 못 받았다고 하지만 구단과 리그와 함께 성장하면서 많은 덕을 봤다고 생각해요.

한국도로공사 황연주./더발리볼

“우승 후 은퇴가 꿈, 그러나…”

황연주가 전한 진심 그리고 후배들에게

Q. 자기 관리가 뛰어난 선수로 유명해요. 비결이 있다면요.

어릴 때 했던 루틴을 지금도 해요. 하고 싶은 거 있어도 그냥 참아요. 저도 살찌는 음식, 떡볶이 같은 거 좋아해요. 술도 먹고 싶은데 안 마시고요, 웨이트 훈련하기 싫어도 해야 될 때가 있으니까 하고요. 무엇보다 타고난 게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덕이 크네요.

Q. 도로공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욕심은 끝이 없죠. 제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지금의 실력이 더 내려가지 않도록 유지해야죠. 현대건설에서 했던 만큼, 도로공사를 도와주고 싶어요. 사실 1년, 1년 지나면 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최대한 유지해야죠. 이제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먼저죠. 무엇보다 도로공사에서 첫 시즌이잖아요. 저 역시 잘하고 싶고, 몸도 잘 만들고 싶어요. 감독님이 배려해 주셔서 컵대회에 맞춰 몸 상태를 올리고 있어요.

Q. 우승 욕심은 없나요.

(배)유나가 오자마자 그러더라요. ‘언니에게는 우승 DNA가 있지 않냐’라고요. ‘내가 피를 바꿔가지고 한 번 해보겠다’라고 했죠. 정말 하면 좋겠어요.

Q. 연주 선수는 배구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고 있나요.

우승하고 은퇴하고 싶죠. 코트에 좀 더 많이 있으면 더 좋고요. 경기를 조금 뛰더라도, 팀 우승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만약 도움이 되지 못하면 우승해도 마음이 씁쓸하거든요. 그런데 우승하고 은퇴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Q.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제가 팀을 옮길 수 있었던 이유도 나름 성실하게, 묵묵히, 참고 버텼기 때문이거든요. 잘 안 풀려서 힘들고 답답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참은 시간만큼 좋은 날이 와요. 인생은 늘 굴곡이 있어요. 저 역시 힘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지고, 바닥을 찍었어도 ‘다시 올라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선수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어요. 버티고 힘들어도 참으면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힘들었거든요. 다 참고 버텼기에 새로운 팀에서 뛸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요.

한국도로공사 황연주./더발리볼

(이 기사는 배구 전문 매거진 <더발리볼> 창간호에 게재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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