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아이 둘 재우고 나면 밤 10시예요. 그때부터 집안일 조금 하면 하루가 끝나요. 어느 날은 아이 재우다 같이 잠들기도 해요. 책 한 쪽 읽기도 힘들어요.”
두 아이를 양육하며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 A씨는 하루 24시간 중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A씨의 남편인 워킹대디 B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회사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일이 바빠 야근이 잦은 B씨를 대신해 A씨가 퇴근 후부터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돌본다. 주말이라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뭔지 기억도 안 난다”라고 말했다.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는 여가와 문화생활에서 소외되고 있다. 특히 MZ세대 부모 사이에선 육아로 인해 ‘내 인생이 손해 본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유연근무제 활용도 쉽지 않다. 아이를 양육하면 ‘쉼’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소비실태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가 있는 가구의 성인이 여가·문화생활에 쓰는 월평균 지출은 15만 4000원에 불과했다. 자녀가 없는 가구의 평균 지출(약 50만 원)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연구소는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부모가 여가·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유연근무제도, 한국에서는 상황이 어떨까?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노동리뷰’에 따르면,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 근로자 중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비율은 2~9인 사업장에서 20.3%, 10~49인 기업에서 21.4%, 250인 이상 기업에서도 33.6%에 그쳤다. 반면 EU 15개국의 평균은 각각 45.6%, 57.8%, 69%에 달했다.
남성의 유연근무 활용률은 이보다 더 낮다. 250인 이상 기업에서도 여성의 절반 수준이며, 소규모 기업에서는 여성보다도 낮다. 반면 유럽에서는 남성도 적극적으로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U는 2019년 '일·생활 균형 지침'을 제정해 2022년까지 모든 회원국이 유연근로 청구권을 법제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부모는 근로시간 축소, 유연근무, 재택근무를 요청할 수 있으며, 고용주는 기업 여건을 고려해 응답하도록 돼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은 단축근로제 등 제도 도입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은 임신 전 기간 단축근로를 허용하고, 만 9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은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지원 제도를 운영한다.
양육은 부모의 책임이 맞지만 육아와 삶의 균형은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라’라는 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양육자도 자신을 회복할 시간이 있어야 아이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다. 육아와 삶의 균형을 위한 일상적 유연근무 환경 조성과 양육자들을 위한 여가 시간 확보가 될 수 있도록 기업문화 차원에서도 인식 변화가 필요할 때다. 부모에게 힘들어도 참으라는 식은 곤란하다. 부모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을 고민할 때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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