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사법부의 대선 개입 논란이 거세다. 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을 두고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원합의체 회부 이후 9일, 그것도 단 ‘두 번’의 심리 만에 내려진 판결이라는 점에서 과연 공정한 검토가 이뤄진 게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된지 하루 만에 공판기일이 정해졌고 소환장 발송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전이 펼쳐진 셈이다. 일각에선 “명백한 정치적 의도” “사법 쿠데타”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 법조계 안팎, 대선 개입 의도 아니냐는 지적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4월 22일 오전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인 2부에 배당된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곧바로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이어 이날 오후 2시, 바로 첫 합의기일을 열어 심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24일 두 번째 심리이자 마지막 심리를 하면서 바로 5월 1일로 선고기일을 확정했다. 12명의 대법관은 이틀 동안 6만여쪽에 달하는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표결까지 완료했다. 1심 유죄, 2심 무죄라는 사법부의 판단이 첨예하게 엇갈린 사건을 상고심인 대법원은 두 번의 논의로 끝낸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첫 번째 심리 이후 두 번째 심리에서 표결이 진행됐기 때문에 사실상 한 번 논의로 함의가 모아졌다고 봐야 한다. 상식적으로 6만여쪽의 사건기록을 전원합의체 회부 이후 이틀 만에 모두 검토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공직선거법상 6·3·3(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이내) 원칙을 강조한 성향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1심과 2심의 판단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심리가 필요했다. 게다가 대법원 스스로도 “국민적 관심이 큰 중요 사건인 점을 고려한 결정”을 이유로 선고를 생중계했기 때문에 그만큼 이 사건이 중대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심리가 시작된지 이틀 만에 2심의 무죄 판결을 뒤엎고 파기환송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전에 미리 답을 정해놓고 심리한 것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제21대 대선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판결문 85페이지 중 4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반대 의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고심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대법관 상호간에 충분한 설득과 숙고를 거친 결정인 것인지도 불명확해 보인다.
박범계 의원은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반대의견을 낸 두 대법관은 판결문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요체는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대법관들 상호간의 설득과 숙고에 있다. 그러나 이번 전합체 이재명 후보에 대한 판결은 그런 설득과 숙고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부분을 작성했다”며 “과연 이번 상고심이 숙고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또한 박범계 의원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대법원의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소부에 배당하기 전에 전원합의체 심리기일을 먼저 지정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 사건은 원칙적으로 먼저 소부에서 심리를 먼저 진행하며, 중요도에 따라 주심 대법관의 요청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는 구조다.

박범계 의원은 긴급현안질의에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띄워놓고 “이재명 후보의 법원 사건기록 조회 결과를 살펴보면 4월 22일 전원합의기일 심리 지정이 이뤄진 후에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 배당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소부에 정식 배당하기도 전에 전원합의체로 회부할 것을 결정해 놓고, 이후 형식적으로 배당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일사천리 속도전… 짜여진 각본인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분위기도 석연찮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날인 2일 서울고등법원은 사건을 형사7부에 배당하고 첫 공판기일을 오는 15일 오후 2시로 잡았다. 또 이날 이재명 후보 측에 소송기록접수 통지서와 피고인 소환장을 함께 발송했다. 동시에 집행관에 인편 송달을 요청하는 촉탁서도 바로 보냈다.
통상 ‘부재’ 등의 사유로 우편송달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원 집행관이 직접 전달하도록 요청하는데, 우편 발송과 동시에 인편 송달을 시도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5월 2일 하루 안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직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를 발표한 것도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에 무게를 싣고 있다.
5월 1일 오후 3시 대법원 유죄 취지 파기환송, 같은 날 오후 4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대선 출마 선언, 다음날인 2일 서울고법의 재판 절차의 속도전까지. 공교롭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는데, 이런 전광석화같은 속도전은 일반적인 국민의 상식에도 부합하기 어려운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초고속 속도전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는 2일 전국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30여년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송경근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대법관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재판을 통해 정치한다 등의 국민적 비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거세지고 있다”며 “도대체 이러한 사법 불신사태를 누가 왜 일으키고 있는지, 사상 초유의 이례적이고 무리한 절차 진행이 가져온 이 사태를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선거 후 사법부가 입을 타격이 수습 가능할 것인지 그저 걱정될 뿐”이라고 말했다.
법원공무원 노조도 2일 ‘희대(稀代)의 재판거래 - 사법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란 제목으로 성명서를 내면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졸속적인 재판 진행으로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도록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와 정면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이는 앞서 박영재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2023도16586 사건을 말한다.
당시 대법원은 정읍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1, 2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 취지의 판단을 내리면서 “공표된 사실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엔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허위의 사실이라 볼 수 없다”면서 “사후적 해석을 가미해 형사처벌의 기초로 삼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장려돼야 할 표현을 위축·봉쇄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영재 대법관은 이번 이재명 상고심에선 이와 반대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이에 법원공무원 노조는 “본인이 본인을 부정하는 유체이탈 경지에 이르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법원공무원 노조는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것이지, 법관에 의한 지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며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작동돼야 하는 것이지,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단체 등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번 판결과 관련해 반발과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다. 민생경제연구소를 비롯한 ‘검사를 검사하는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 단체 등은 공동으로 조희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3일 공수처 고발에 나서는 한편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및 전원합의체 대법관 12인의 소송 기록 열람 방법, 열람시간을 전면 공개하도록 요구하겠단 취지다.
또한 고발인단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접 위법하게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단 9일 만에 선고까지 이끌어 낸 것은 전례 없는 권한 남용이자 헌정질서 유린”이라며 “조 대법원장이 TV 생중계를 통해 이재명 후보의 특정 발언을 ‘허위사실공표’라고 지적한 것은 사실상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사전선거운동이며, 확성장치를 사용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점에서 공직선거법 제254조 및 제255조 위반 혐의도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실체적·법리적 쟁점에 대해 충실히 논의가 이뤄지고 판결에 다 담아서 90페이지에 가까운 판결문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도 “판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최고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법부의 대선 개입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사법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가 ‘상식 밖’이라는 목소리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정치, 나아가 국민들의 선택인 대통령선거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가 되면서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법부의 존중과 권위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급기야 ‘사법부 전면 개혁 필요’ 목소리까지 커지면서 논란을 둘러싼 후폭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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