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전국 시·도는 농어촌 기본소득 정부 공모에 사활을 걸고 있다. 참여를 희망하는 군의 신청 기회를 열어주고 중앙정부와 재정 분담을 협의하며 한 곳이라도 더 선정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경남도는 도내 9개 군 가운데 산청군 한 곳만 추천했다. 나머지 8개 군은 정부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다른 지역이 국가재정 확보의 가능성을 넓히는 동안 경남은 스스로 그 가능성을 좁혔다.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 주민들에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는 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안에 1조 1658억 원을 편성했다. 사업 대상도 전국 17개 군에서 35개 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주민에게 매월 15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해 생활 안정을 지원하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는 사업이다.
신규 18개 군을 선정하기 위한 공모에 전국 52개 대상 군 가운데 34개 군이 신청했다. 경쟁률은 1.9대 1이다. 정부가 농어촌 지원을 확대하는 시기에 경남도는 도내 9개 군 가운데 8개 군의 정부 심사 기회를 박탈했다.
경남도는 농어촌 기본소득을 “좋은 사업이 아닌 데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박완수 도정이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 도민에게 지급한 생활지원금은 어떤 기준에서 좋은 사업이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경남도는 도민 1인당 10만 원씩 지급하기 위해 3288억 원을 전액 도비로 마련했다. 당시에는 도민의 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업은 지급 방식과 재정 구조에 차이가 있지만 주민의 생활 안정과 지역 내 소비 촉진이라는 정책 목적을 공유한다. 도민 생활지원금은 지역 상권에서 사용하도록 지급했고 농어촌 기본소득도 지역사랑상품권을 통해 소비가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설계됐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효과를 문제 삼으려면 생활지원금 3288억 원이 가계 부담을 얼마나 덜고 지역 상권에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지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일회성 생활지원금에는 전액 도비를 투입하면서 국비가 절반 지원되는 농어촌 기본소득에는 재정 부담을 앞세운 판단은 정책의 일관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남도가 내세운 이유는 재정 부담이다. 도는 9개 군이 모두 선정되면 연간 도비 19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9개 군이 모두 선정된다는 가정에 따른 최대 재정 소요다.
정부 공모에 신청하는 단계와 실제 선정돼 예산을 부담하는 단계는 구분해야 한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8개 군의 신청 기회를 박탈한 결정에는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정부의 재정 지원 비율도 높아진다. 2027년에는 국비 부담률이 50%로 확대되고 도비와 군비는 각각 25%를 부담할 예정이다.
산청군이 선정되면 2027년 사업비 620억 원 가운데 국비 310억 원, 도비 155억 원, 군비 155억 원이 투입된다. 기존 사업지역인 남해군에 대한 도비 부담 예상액 170억 원을 합하면 경남도의 부담액은 약 325억 원이다.
경남도는 국비 지원 비율을 8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정 분담 개선을 요구하는 일과 공모 신청 기회를 제한하는 일은 별개다.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은 재정 부담을 검토하면서도 공모 참여의 기회를 열어두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전북도는 참여를 희망한 군의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경북도는 희망 군의 신청서를 모두 제출하면서 도비 부담을 고려해 선정 규모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남도 역시 9개 군의 신청을 보장하면서 국비 분담률 확대와 단계별 재정계획을 협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남도는 외부 전문가 7명이 참여한 자체 심사를 거쳐 산청군 한 곳만 추천했다. 산청군은 89.1점, 하동군은 85.6점을 받았다.
산청군의 사업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은 사실과 다른 8개 군의 신청을 제한한 결정은 구분해야 한다.
경남도는 추천 규모를 한 곳으로 정한 기준과 결정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광역자치단체의 권한 행사라는 측면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경남도는 도비가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재정 여건을 검토하고 시·군 간 사업을 조정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을 행사할 때에는 공모 지침에 따른 기준과 합리적인 절차를 지켜야 한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의 정부 공모 참여 기회를 제한했다면 공모 지침상 권한의 범위와 재량권 행사의 적정성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농어촌 주민들의 실망은 크다. 함양과 거창, 합천, 하동, 의령 등 인구감소지역에서는 청년 유출과 고령화로 농업인구가 줄고 읍·면 상권이 위축되고 있다. 학교와 의료, 돌봄과 교통 등 생활서비스를 유지하는 데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주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지역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 실험이다. 실제 효과는 시행 과정에서 검증해야 하지만 주민들이 공모 참여를 기대한 이유는 충분하다.
지난 6월 경남 6개 군은 정부 공모에서 탈락했다. 이번에는 8개 군이 경남도의 자체 결정으로 정부 심사를 받을 기회를 잃었다. 연이은 좌절을 겪은 농어촌 주민들에게 경남도는 재정 부담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국가재정 확보와 기초자치단체 지원을 책임져야 할 광역자치단체가 공모 참여 기회를 제한한 데 대한 실망은 클 수밖에 없다.
박완수 지사는 산청군 단독 추천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직접 밝혀야 한다. 추천 규모를 한 곳으로 정한 기준과 결정 시점, 군별 평가 결과와 세부 배점, 도비 분담 검토자료, 도의회 협의 내용 등을 공개해야 한다. 다른 시·도의 대응과 비교해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산청군 단독 추천 방침을 재검토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해 도내 9개 군 모두가 정부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재정 부담이 크다면 국비 분담률 상향을 요구하고 실제 선정 규모에 따른 단계별 재정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경남도는 산청군을 포함한 9개 군 모두에 공정한 공모 기회를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 부담과 정책 효과는 객관적인 자료로 검증하고, 기초자치단체의 정부 공모 참여는 투명하고 일관된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다른 시·도가 국가재정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금, 경남도 역시 농어촌 주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책임 있는 대응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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