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계열분리 선언 2년을 맞은 신세계그룹에서 정용진 회장은 1조4000억원 규모의 미국 콘텐츠 투자와 인공지능(AI)·호텔 사업에 나서고, 정유경 회장은 경쟁사 백화점 인수와 미디어 지분 투자를 추진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지난 2024년 10월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의 계열분리 방침을 공식화한 이후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두 남매가 대규모 인수·투자를 잇따라 결정하면서 사업 확장 방식과 경영체제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 할리우드에 1.4조 투자한 정용진, 경쟁사 점포 사들인 정유경
정용진 회장이 이끄는 신세계프라퍼티는 지난달 6일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 거래에 10억달러(약 1조3596억원)를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파라마운트의 워너브러더스 인수는 같은 날 완료됐으며, 신세계프라퍼티는 미국 자회사를 통해 투자법인 지분을 취득하는 간접 투자 방식으로 참여했다.
신세계그룹은 2024년 파라마운트와 테마파크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이번에는 콘텐츠 기업의 지분 투자자로 참여했다. 파라마운트의 ‘미션 임파서블’, ‘탑건’과 워너브러더스의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등 글로벌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스타필드와 화성 국제테마파크 등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영화·방송 콘텐츠를 활용한 체험시설과 테마공간을 확대하고, HBO Max와 파라마운트+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계열사 멤버십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존 쇼핑시설과 테마파크에 글로벌 콘텐츠를 결합해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계획이다.
정유경 회장이 이끄는 ㈜신세계는 지난달 29일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했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2007년 개점했으며, 신세계가 2009년 바로 옆에 센텀시티점을 열면서 두 백화점은 17년간 같은 상권에서 경쟁해 왔다.
두 점포의 매출 격차는 크게 벌어진 상태다.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연 매출 2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2조2642억원으로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의 1352억원보다 약 16.7배 많았다. 롯데는 해당 점포의 성장성과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각을 결정했다.
신세계는 인수 점포를 기존 센텀시티점과 연결하고 인근 C부지까지 개발해 ‘신세계 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C부지에는 호텔과 오피스, 레지던스 등이 포함된 복합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 정용진은 AI·해외 호텔, 정유경은 미디어…신사업도 다른 선택
정용진 회장은 지난 3월 미국 리플렉션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국내에 전력용량 250㎿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 GPU를 기반으로 기업 고객에게 클라우드 서비스와 맞춤형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며, 연내 합작법인 설립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존 유통사업에 상품 추천부터 결제·배송까지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고 재고 관리와 물류에도 AI 기술을 적용할 방침이다.
해외 부동산 개발에도 나섰다. 지난 7월 글로벌 부동산 개발회사 오코그룹과 합작법인 설립 협약을 체결하고 양사가 초기 투자금 5억달러(약 7500억원)를 조성하기로 했다. 아만·자누 브랜드의 호텔과 레지던스를 아시아·북미 등에서 개발하는 사업이다.
정용진 회장은 당시 “한국에서 검증된 신세계프라퍼티의 개발 모델이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시장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긴밀한 협력과 상호보완을 통해 전 세계 럭셔리 호스피탈리티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정유경 회장은 백화점과 연결할 수 있는 콘텐츠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달 20일 중앙일보 인수를 추진하는 다우키움·CJ 컨소시엄에 지분 투자자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경영권을 직접 확보하는 방식이 아닌 소수 지분 투자로, 구체적인 출자 금액과 지분율은 확정되지 않았다.
신세계 관계자는 “중앙일보의 콘텐츠를 자사가 운영하는 프리미엄 문화 플랫폼과 연계할 계획”이라며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에 미디어 사업을 접목해 양사가 시너지를 창출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정용진은 직접 경영, 정유경은 조직 안정…엇갈린 인사
정용진 회장은 지난 6월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이사에 취임한 데 이어 지난달 23일 발표된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마트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선임되면 두 회사에서 각각 전문경영인과 각자대표 체제를 구성한다.
이마트와 SSG닷컴 대표에는 김홍극 전 신세계까사 대표를 내정했다. 김 대표는 신세계TV쇼핑의 흑자 전환과 신세계까사의 수익성 개선을 이끈 인물이다. 이마트의 상품·물류 역량을 SSG닷컴과 연계해 온·오프라인 사업을 함께 관리하도록 했다.
정 회장이 주요 계열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배경에는 수익성 개선 과제도 있다. 이마트의 올해 상반기 별도 영업이익은 171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4% 증가했지만, 연결 영업이익은 1353억원으로 25.2% 감소했다.
SSG닷컴은 상반기 영업손실 514억원을 기록했고,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의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645억원 감소한 109억원에 그쳤다. 이마트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주요 자회사의 수익성 회복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정유경 회장은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유지하는 대신 사업별 전문성을 높이는 인사를 단행했다. 박주형 신세계 대표와 이석구 신세계디에프 대표 등을 유임시키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패션과 코스메틱 부문으로 나눠 운영하도록 했다.
패션 부문은 김덕주 대표에게, 화장품 사업은 CJ올리브영 대표를 지낸 허민호 대표에게 맡겼다. 허 대표는 신세계까사 대표도 겸임한다.
특히 화장품 사업은 최근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2분기 코스메틱 매출은 1295억원으로 전체 매출 2916억원의 약 44%를 차지했다. 코스메틱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2.0% 증가했으며, 회사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 70억원을 기록해 흑자 전환했다.
㈜신세계의 실적도 개선됐다.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36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7% 증가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백화점 사업의 2분기 영업이익은 1088억원으로 53.5% 늘었고, 면세점과 주요 자회사들의 수익성도 개선됐다.

◇ 신규 투자·지분 정리에 2.2조…계열분리까지 남은 과제
두 회장이 각자의 사업을 확대하면서 앞으로 필요한 투자 재원과 계열분리 작업도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정용진 회장 측은 미국 콘텐츠 투자와 SSG닷컴 지분 정리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워너브러더스 투자금 1조3596억원과 이마트의 SSG닷컴 지분 재매입 대금 8275억원을 합쳐 총 2조1871억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이마트의 지난해 연결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조8118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두 건의 자금을 전액 차입으로 조달할 경우 이마트의 연결 부채비율이 지난 6월 말 133.7%에서 155.7%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화성 국제테마파크와 AI 데이터센터, 해외 호텔 개발에도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정유경 회장 측은 지난 8월 SSG닷컴 지분 재매입에 4436억원을 투입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인수금액이 2000억원을 크게 웃돌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신세계가 지난 6월 말 기준 약 1조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가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또한 센텀시티점 리뉴얼과 C부지 개발, 중앙일보 인수 컨소시엄 참여에 따른 추가 자금도 필요하다.
계열분리 절차도 남아 있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SSG닷컴 지분을 각각 65.11%, 34.89% 보유하고 있다. 오는 12월 1일 장보기와 패션·라이프스타일 사업을 분할하더라도 양측의 지분율은 유지돼 후속 정리가 필요하다.
신세계건설이 보유한 신세계의정부역사 지분 19.9% 등 교차지분과 계열분리 이후 ‘신세계’ 상표권 사용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계열분리 초기에는 지분과 소유구조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두 회장이 각자의 사업을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킬지가 중요해졌다”며 “서로 다른 투자 선택이 향후 양측의 사업구조와 기업가치에도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