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전기차가 116만 대를 넘어섰지만 고전압 배터리를 어디서 정비할 수 있는지 정부조차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사에서 수백만 원의 수리 견적을 받아도 다른 정비소를 찾아 진단과 비용을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보급 속도를 정비 기반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더불어민주당·충남 아산갑)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전기차는 2021년 말 23만1443대에서 2026년 8월 말 116만968대로 늘었다. 4년 8개월 만에 약 5배로 증가했다. 하루 평균 545대가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휘발유·경유차는 104만여 대, 4.8% 줄었다.
차량 구성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정비 기반을 보여주는 기초 자료는 부족하다. 국토부는 전기차 정비에 대한 별도의 등록·자격 기준이 없어 정비 가능 업체와 인력 현황을 구분해 관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국 자동차 정비업체는 2022년 기준 3만6000여 곳이다. 이 가운데 고전압 배터리를 다룰 수 있는 곳이 몇 곳인지, 어느 지역에 있는지 정부 차원의 현황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정비업체를 안내하거나 지역별 부족 상황을 살피는 데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전기차 정비체계의 미비점은 이미 4년 전 지적됐다. 금융감독원은 2022년 ‘전기차 자동차보험 현황·감독 방향’에서 고전압 배터리의 진단과 수리·교환에 관한 통일된 기준이 없다고 짚었다. 이후 전기차는 92만 대 넘게 늘었지만 정비업체 현황 파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복 의원의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장비 비용과 전문인력 부족이 진입 장벽으로 꼽힌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정비에 필요한 진단장비 등을 갖추는 데만 최소 5000만 원이 든다. 기존 정비업체가 사업 영역을 넓히려 해도 초기 비용 부담이 크고 관련 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불편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어느 정비소에서 어떤 수리가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는 안내 창구가 없어 직접 업체를 찾아 문의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보증기간이 끝난 차량은 수리 범위와 비용을 비교할 필요가 커지지만 대안을 찾기 어렵다.
복 의원실이 제시한 온라인 전기차 동호회 사례에도 이런 어려움이 드러난다. 배터리 진단을 받으려 여러 정비소를 찾아다녔다는 글과 보증 종료 후 수백만 원의 견적을 받고 다른 수리 방법을 묻는 글 등이 올라오고 있다. 정비 정보 부족이 소비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문제로 이어지는 셈이다.
해외에서는 정비 역량을 확인하고 관련 인력을 찾도록 돕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자동차산업협회 격인 IMI가 운영하는 ‘테크세이프(TechSafe)’ 제도를 정부가 지지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공개 명부를 통해 가까운 전기차 정비 전문인력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은 고전압 차량 작업에 대해 작업 범위와 위험도에 따른 단계별 교육·자격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복 의원은 “제조사에서 수백만 원의 수리 견적을 받았다면, 다른 정비소에서도 꼭 필요한 수리인지, 비용은 적정한지 확인해 볼 수 있어야 한다”며 “비교할 곳을 찾기 어려워 소비자의 선택이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보급을 지원해 온 만큼 정비 기반을 갖추는 데도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며 “국토부는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진단장비 도입과 전문인력 양성을 지원해, 기존 정비업체의 진입 문턱을 낮추고 소비자가 안전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정비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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