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살리려 버틴 20년"…소아응급의료계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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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진료 중인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방식의 수사, 의료 생태계 무너뜨릴 것."

소아응급의료 현장에서 나온 호소는 명확했다. 의료사고 의혹에 대한 수사는 필요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응급환자의 진료와 안전까지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을 둘러싼 논란이 의료진의 사직 움직임으로 번지자 소아응급의료계가 정부와 경찰에 명확한 수사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3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규탄 및 진료권 보호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회는 수사기관과 대립하거나 의료진의 책임을 면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며, 응급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적 기준과 약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30일 경기남부경찰청이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하면서 불거졌다. 경찰은 지난 7월 청색증 등의 증세로 병원을 찾은 영아가 치료 중 숨진 사건과 관련해 유족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의료계는 진료가 진행 중인 응급실에 대한 강제수사가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며 반발해 왔다. 

특히 지난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함영욱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장이 여야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 과정에서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소속 전문의 9명 가운데 7명이 병원 측에 사직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것은 이번 압수수색에 대한 논란만이 아니다. 진료 현장이 언제든 강제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의료진을 위축시키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소아응급의료는 중증 환자를 신속하게 판단하고 처치해야 하는 분야인 만큼, 의료진이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필수의료 현장 압수수색 원칙적 제한"…3대 원칙 제시

학회는 수사 가이드라인에 담아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진료하는 필수의료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불가피하게 강제수사를 진행할 경우 사전 협의와 영장 심사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의제출이 가능한 자료에 대한 무분별한 영장 집행을 통제하고, 보호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을 때 진료 공간을 범죄 현장처럼 취급하는 조사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이드라인 초안 공개 시한으로는 오는 11월 말이 제시됐다. 

전공의와 전임의 지원 시기가 다가오는 데다 내년 초 기존 의료진의 재계약도 예정돼 있어, 현장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필수의료 인력의 유입과 유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학회는 앞서 관련 의견을 전달한 만큼, 실제 지침에 의료 현장의 특수성과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경찰과 지속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단체도 응급의료 현장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이날 경기남부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열고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실 압수수색에 대한 경찰의 사과와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아주대병원 센터장 "사직은 개인적 고뇌"…의료계, 수사 방식 개선 촉구

이지숙 아주대 소아응급의료센터장은 기자회견에서 의료진의 사직 움직임이 집단행동으로 해석되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이 센터장은 전날 경찰 고위 관계자들이 병원을 방문해 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 부족을 인정하고 의료진에게 사과했다고 전하면서도, 진료 중인 공간에 사전 동의 없이 진입하고 의료진이 조사에 협조했음에도 압수수색을 진행한 경위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20여년간 소아응급 현장을 지키며 어떤 의료 대란 속에서도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며 병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개인으로서 겪은 깊은 고뇌와 고충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병원 전산 시스템과 진료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현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의무기록의 수정 여부와 변경 이력은 원내 전산실 서버에서 로그 기록을 추출해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며, 진료실 PC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환자 사망 사건에서도 보호자의 신고만으로 진료실을 강력범죄 현장처럼 취급하거나 의료진에게 진료 중단을 요구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것은 수사 면책이나 특혜가 아니다. 의료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수사는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응급환자의 진료와 안전까지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료진의 사직 고민이 소아응급의료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수사 가이드라인 마련이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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