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나에게 밥이고 보약이야. 배가 고프면 밥으로 허기를 달래듯 마음이 허전할 때는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져. 그래서 시집을 자주 사지. 책상 위에는 손만 뻗으면 바로 펼쳐 읽을 수 있는 시집들이 항상 서너 권 놓여 있어. 마음이 원하면 언제나 시를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거지.
내가 시를 본격적으로 읽고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야. 그때 지금까지 좋아하는 시들을 많이 만났지. 고등학교에서처럼 시험을 치르기 위해 무작정 외우기만 하는 시 공부는 지겨울 수밖에 없어. 시는 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하고 느끼면 되는 거야. 나는 시도 내 방식대로 즐겨. 내 삶의 고통을 위로하거나 나랑 비슷한 생각을 노래하는 시들을 주로 읽지. 내 블로그에는 2,400개가 넘는 시와 짧은 감상문이 올라와 있네. 필요할 때마다 바로 찾아 읽을 수 있어서 좋아. 물론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편의 시를 꾸준히 올리고 있지.
오늘은 지난 8월에 나온 박남준 시인의 그림 시집 『내가 고요해질 때』에 있는 <소중한 대접>을 소개하고 싶네. 우리 같은 노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이거든.
사람들 떠나갔다
허기도 불쑥 복날 손님처럼 찾아오네
식은 호박죽 덜고
반찬통 꺼내 숟가락 들었는데
목이 멘다
쉽지 않다 식은 죽 먹기
위안되지 않는다
버림받은 풍경이 쓸쓸함을 가속시킨다
너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
뜰앞에 나갔다
찻잎에 머문 푸른 햇살 한 줌과
별빛 이슬에 재운 노란 산국 향기 꺾어 들어와
김치와 토마토 장아찌 접시에 옮겨 담는다
밥상을 장식한다
이제 좀 먹을만 하니
가만히 묻고 빙긋 웃는다
첫 번째 연을 읽을 때는 마음이 아프지. 밥상에 호박죽을 퍼놓고 숟가락을 들었지만, ‘식은 죽 먹기’마저 쉽지 않다는 노인의 독백이 눈물샘을 살짝 건드리기 때문이지. 혼자 사는 늙은 친구들이 많고, 나도 머지않아 혼자 살 수 있을지 모르니 시인처럼 목이 멜 수밖에 없지. 남성 홀로 사는 노인 중에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많거든.
하지만 두 번째 연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네. 식은 죽을 앞에 놓고 갑자기 울컥해진 노인이 뜰에 나가‘찻잎에 머문 푸른 햇살 한 줌’과 ‘별빛 이슬에 재운 노란 산국 향기’를 데리고 들어오지. 푸른 햇살과 산국 향기로 밥상을 장식하고, 이제 좀 먹을 만하냐고 자신에게 묻는 노인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빙긋 웃고 말았네. 이 시를 천천히 읽으면 한 편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시인 중에는 이 노인처럼 아름답게 늙는 사람들이 많네. 나도 혹시 혼자 살게 되면 이렇게 살 걸세. 몸과 마음이 늙고 외로워져도 언제나 자신에게 ‘소중한 접대’를 하면서 살고 싶어. 함께했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도 햇살은 어디에나 머물고, 좋아하는 꽃들은 계속 향기를 내뿜고, 나 자신을 위해 어디서든 밥은 먹어야 하니 말일세.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가만히 물을 거야. “이제 좀 먹을 만하니?” 그때가 되면 이런 질문이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소박하고 소중한 위로의 말일지도 모르지.
내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날마다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시를 통해 외로움을 덜고,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야. 아무리 강한 사람도 늙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어. 이동성이 줄어들면 함께 밥을 먹거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친구도 줄어들지. 그러니 시를 친구 삼아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시를 통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만날 수 있거든.
일찍 시를 몰랐다면 노년의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시를 읽지 않는 날은 뭣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을까?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몸과 마음 모두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종종 나에게 스스로 물어보는 질문들이야. 그래서 지금처럼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서 살게 해준 동서고금의 모든 시인에게 감사해하고 있지. 나에게는 그들이 누구보다도 고마운 사람들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시는 나에게 밥이고 보약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할 걸세.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나이 들어서도 마음을 계속 자라게 하는 데 시만큼 좋은 것은 없거든. 시는 단순히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하게 살아갈 힘을 길러 주는 보약이야. 그래서 시를 좋아하면 늙어가는 것을 즐기면서 언젠가 맞이할 죽음마저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야. 게다가 시를 읽는 데는 돈도 많이 들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19세기의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이 말했던 것처럼 시는 “가장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탈 수 있는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마차”이거든. 그러니 자네도 남은 세월 나와 함께 시(詩) 마차를 타고, 아직 사람 냄새가 남아 있는 작은 것들의 세상 구경이나 하면서 살다가, 때가 되면 우리가 왔던 곳으로 웃으면서 돌아갔으면 좋겠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