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그래서 얼마인데."
5세대 디 올 뉴 투싼(The all-new TUCSON)을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았던 질문이다. 차는 이미 다 보여줬었다. 세계 최초 공개도 했고 기술 설명도 끝냈고 직접 몰아볼 기회까지 줬다. 그런데 현대자동차(005380)는 유독 가격표만 늦게 꺼냈다.
앞서 <[카수다] 볼 거 다 보여준 투싼, 여전히 가격표는 오리무중>에서도 이 부분을 짚었다. 차체를 키우고 상품성을 끌어올린 만큼 가격도 따라 올라간다면 싼타페와의 간격은 어떻게 할지, 준중형 SUV인 투싼의 자리는 어디까지 올라갈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차는 이미 다 보여줬다. 이제 공개될 가격표에는 신형 투싼의 값뿐 아니라 현대차가 생각하는 '투싼의 자리'까지 함께 찍힌다"고 썼다.
지난 21일 드디어 숫자가 찍혔다. 1.6 터보 가솔린 H-Pick 3140만원, 1.6 터보 하이브리드 H-Pick 3615만원부터다. 가솔린 인스퍼레이션은 3790만원, 하이브리드 인스퍼레이션은 4270만원이다. 현대차는 기존 저가 트림을 정리하고 H-Pick을 새로운 기본 트림으로 세웠다.
처음 숫자만 보면 "투싼도 이제 3000만원부터네"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전 모델에는 2000만원대에서 출발하는 가솔린 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표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현대차가 새 H-Pick 가격을 기존 투싼의 주력 트림과 비슷한 수준으로 묶어놨기 때문이다. 차는 6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는데 소비자가 많이 찾던 가격대는 최대한 그대로 붙잡았다.
그 사이 투싼은 꽤 커졌다. 전장은 60㎜, 전폭은 40㎜, 휠베이스는 30㎜ 늘었다. 가솔린은 7단 더블클러치변속기를 버리고 8단 자동변속기를 택했고, 하이브리드는 시스템 최고출력 245PS와 복합연비 17.4㎞/ℓ를 확보했다.
기본형이라고 사양을 휑하게 만들어놓지도 않았다. H-Pick부터 플레오스 커넥트와 9개 에어백,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 고속도로 주행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2가 들어간다. 투명뷰를 지원하는 서라운드 뷰 모니터와 전·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 워크 어웨이 락까지 기본이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현대차가 왜 가격 공개를 앞두고 조심스러웠는지도 조금은 이해된다. 신형 투싼은 이전보다 커졌고 사양은 많아졌고 하이브리드 성능도 높아졌다. 상품성만 놓고 가격을 올리자면 명분은 충분했다. 문제는 그렇게 가격을 밀어 올리는 순간 싼타페가 가까워진다는 데 있었다.
투싼을 더 좋은 차로 만들면서도 투싼의 가격대를 지켜야 했다. 이번 가격표에는 그 고민이 꽤 선명하게 보인다.

현대차는 진입가격 숫자를 억지로 2000만원대에 남겨두지 않았다. 대신 실제로 탈 만한 기본 트림을 H-Pick부터 시작하게 만들고, 그 가격을 기존 주력 트림 주변에 묶었다. '싸 보이는 투싼'보다 '이 정도면 살 만한 투싼' 쪽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가격표가 나온 바로 다음 날 반응했다. 계약 첫날 1만5045대. 2020년 9월 출시된 4세대 투싼의 첫날 계약 1만842대를 웃도는 역대 투싼 최고 기록이다. 신차를 기다렸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첫날 기록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최소한 가격을 본 소비자들이 "이건 너무 비싸다"며 돌아선 그림은 아니었다.
더 흥미로운 건 어떤 투싼을 골랐느냐다. 가장 많이 선택된 트림은 가장 비싼 인스퍼레이션이었다. 비중이 44%다. 기본 H-Pick도 33%를 차지했고 익스클루시브는 22%, XRT는 1%였다. 기존 투싼에서 인스퍼레이션 비중이 29%였던 것을 생각하면 소비자들이 가격표를 보고 가장 싼 차로 몰린 것도 아니다.
묘한 결과다. 현대차는 H-Pick 가격을 눌러 "투싼이 너무 비싸졌다"는 인상을 줄였는데, 정작 계약자는 상위 트림에 가장 많이 몰렸다. 기본 트림이 가격표의 문턱을 낮췄고, 실제 구매 단계에서는 더 많은 사양을 가진 인스퍼레이션으로 올라간 셈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H-Pick으로 가격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인스퍼레이션 판매 비중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표를 잘 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이 대목에 있다.

하이브리드 반응도 눈에 띈다. 기존 투싼에서는 48%였던 선택 비중이 신형에서는 55%까지 올라갔다. 하이브리드 H-Pick이 3615만원이고 인스퍼레이션은 4270만원인데도 절반 이상이 하이브리드를 골랐다.
신형 투싼을 처음 봤을 때는 차가 너무 좋아져서 오히려 가격이 걱정됐다. 체격도 커졌고 실내도 달라졌고 파워트레인과 디지털 기능까지 손댔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가격까지 크게 올려버리면 투싼과 싼타페 사이에 남을 공간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었다.
막상 가격표를 열어보니 현대차는 그 선을 꽤 의식한 듯하다. 물론 첫날 1만5045대가 앞으로의 흥행을 보장해주는 숫자는 아니다. 신차효과가 빠진 뒤에도 월 판매가 유지되는지, 인스퍼레이션 44%와 하이브리드 55%라는 선택 비중이 계속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전편에서 남겨뒀던 질문에는 이제 답할 수 있다. 현대차가 생각한 신형 투싼의 자리는 '싼타페 바로 아래까지 가격을 끌어올린 작은 싼타페'는 아니었다. 차는 한 단계 키웠지만 가격은 투싼 고객이 익숙한 범위 안에 최대한 붙들어놨다.
그렇게 오래 감춰뒀던 가격표가 공개됐고, 첫날 1만5045명이 계약서를 썼다. 가격표를 늦게 보여준 게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기다렸다가 받아든 숫자를 보면 이번에는 "왜 이렇게 비싸?"보다는 "생각보다 괜찮은데?"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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