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공항 화장실의 불법촬영 범죄를 막겠다며 도입하는 탐지장비가 정작 가장 흔한 수법인 휴대전화 촬영은 감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촬영 사건의 상당수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발생하지만 한국공항공사가 선택한 장비는 카메라에서 영상이 무선으로 전송될 때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탐지 범위가 제한된 장비를 도입하면서 범죄 예방 효과보다 설치 비용을 우선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더불어민주당·충남 아산갑) 의원이 한국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사는 내년 2월 개정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김포·김해·제주공항 여자화장실 12곳에 불법촬영 탐지장비를 시범 설치할 계획이다.
문제는 장비의 탐지 방식이다. 공사가 도입하려는 장비는 카메라가 2.4GHz 와이파이(Wi-Fi)를 통해 촬영 영상을 전송할 때 발생하는 전파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영상이 외부로 전송되지 않으면 탐지할 신호도 발생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로 화장실 칸막이 너머를 촬영하거나 소형 카메라에 영상을 저장하는 경우에는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불법촬영이 이뤄지고 있어도 무선 전송 신호가 없다면 감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열·동작 감지형 장비는 화장실 칸마다 센서를 설치해 칸막이 너머로 휴대전화를 들이미는 동작이나 숨겨진 카메라에서 발생하는 열 등을 감지한다. 무선 전송 여부와 관계없이 촬영에 사용되는 기기나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탐지하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실제 공중화장실 불법촬영 범죄에서도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법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24년 검찰의 불법촬영 판결문 분석 결과, 화장실에 침입해 휴대전화 등으로 촬영하는 ‘침입형’ 범죄가 전체의 76%를 차지했다. 화장실에 카메라를 숨겨놓는 ‘설치형’은 18%였다.
대검찰청이 분석한 같은 해 1~5월 공중화장실 불법촬영 사건에서도 휴대전화를 이용한 범죄가 90%에 달했다.
범죄 유형과 사용 기기를 고려하면 와이파이 전송 신호만 감지하는 장비로는 상당수 불법촬영을 적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해 기기에 저장하는 범죄는 탐지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된다.
해외 공항에서도 이 같은 수법을 이용한 범죄가 발생했다.
올해 3월 미국 캔자스시티 국제공항에서는 공항 내 식당 직원이 화장실 칸막이 아래로 휴대전화를 넣어 이용객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직원의 휴대전화에서는 여성 피해자들이 촬영된 영상 파일 66개가 발견됐다.
사건 이후 공항 당국은 화장실 안전관리 대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직접 촬영이 공항 화장실에서도 현실적인 범죄 위협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공항공사는 장비 선택 과정에서 설치 비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국 공항에 장비를 확대 설치할 경우 화장실마다 한 대씩 설치하는 와이파이 탐지형은 약 6억 원이 필요한 반면, 칸마다 센서를 설치하는 열·동작 감지형은 약 24억 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두 방식의 설치 비용은 4배 차이가 난다.
공사는 국내 공항에서 불법촬영 범죄가 적발된 사례가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설치 비용이 저렴하더라도 주요 범죄 수법을 탐지하지 못한다면 예산 투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와이파이 탐지형 장비를 전국 공항에 설치하는 데 6억 원을 투입하더라도 무선 전송 신호가 없는 휴대전화 직접 촬영은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기 설치비용을 줄이는 데 집중하다 정작 범죄 예방이라는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대응과도 차이를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와이파이 탐지형과 열·동작 감지형을 모두 도입해 2년간 탐지 정확도와 오작동률 등을 비교한 뒤 확대 설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반면 한국공항공사는 두 기술의 탐지 성능을 직접 비교하기보다 비용을 고려해 한 가지 방식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범죄 유형별 탐지 성능과 오작동 가능성을 검증하기 전에 장비 종류부터 제한한 셈이다.
특히 내년 2월 관련 법률 시행을 앞두고 탐지장비 설치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장비의 설치 여부뿐 아니라 실제 범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지도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장비를 설치하더라도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범죄 유형을 탐지하지 못한다면 안전 확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 의원은 “적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범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잡아내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공항 화장실 안전은 예산보다 범죄 예방 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행 중인 구매·계약 절차를 재검토하고 여러 기술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시범사업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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