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평양 수준으로만 세상을 보는 ‘우물 안 개구리들’

시사위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지난 10월 8일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 이재명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우리 군이 독자 개발한 극초음속활공비행체(HGV)의 첫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청와대는 이번 시험발사가 마하5 이상의 극초음속 영역에서 비행과 정밀 타격 능력을 검증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를 미래 안보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보고 관련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시험발사 뒤 우리가 개발한 고위력 탄도미사일로 대량응징보복(KMPR)의 핵심 수단인 ‘현무-5’ 미사일도 처음으로 시찰했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이에 시비를 거는 반응이 나왔다. 북한이다. 평소 한국군의 무기 개발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일방적인 비난으로 일관하던 북한이 이번에는 이례적일 정도로 민감하게 구체적으로 반응했다.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라 주고받기식의 입장을 들고나와 눈길을 끌었다.

포문을 연 건 장창하 북한 미사일총국장이다. 그는 같은 달 15일 밤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입장을 내놓았다. 한국이 공개한 활공체의 비행·탄착 사진을 보면 바다에 수직으로 내리꽂히기 직전의 활공체 표면에 그을음 하나 없고 도장색도 깨끗하다는 걸 문제 삼아 북한 특유의 주장을 펼쳤다. 초고온을 동반하는 극초음속 비행 환경을 통과한 물체라고는 믿을 수 없으니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그을음 논란’이다.

우리 군 당국의 설명은 명쾌했다. 그을음은 내열 성능이 부족한 구형 복합재나 불완전 탄화 방식의 열방호 소재를 쓸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개발한 HGV에는 마하 5~10의 극초음속 환경과 수천 도의 초고온을 견디는 최첨단 초고온 내열 신소재와 세라믹 복합체가 적용됐다고 군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탄화와 삭마를 최소화해 표면 손상을 억제하는 최신 열방호 기술의 결과물이 깨끗한 동체라는 얘기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의 소재 기술이 어느 수준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억지스런 비난을 낸 것이란 취지다.

그런데도 북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장창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자 이번에는 김정식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하루 뒤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국산 내열소재 덕분이라는 설명을 ‘억지스러운 주장’으로 몰아붙이며, 어떤 나라의 어떤 기술로도 공기역학적 가열에 의한 표면온도 상승으로 도색이 타버리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구체적인 반박 근거나 과학적 설명은 없었다.

그는 한국군이 HGV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겠다고 밝힌 대목을 붙잡아 “간악한 적들의 대결적 야심이 우리에게 더없이 훌륭한 국방력 강화의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며 슬그머니 논지를 ‘한국군의 대북 위협’으로 옮겨 갔다. 선수를 번갈아 투입하면서 릴레이식 강변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장창하의 마지막 답변이다. 북한 기자가 ‘세계 많은 나라가 극초음속무기 개발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그런 문제는 나에게 묻지 말고 관심이 있다면 군사기술 잡지를 보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북한 매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자신이 총국장을 맡고 있는 분야의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거나, 답하기 곤란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그 잡지는 중앙통신 기자가 아니라 장창하 본인이 먼저 구해 읽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서울에서 나왔다.

돌이켜 보면 북한의 이런 ‘헛발질’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월 3일 중거리 미사일 훈련 때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한국과 일본 군 당국이 미사일의 도약·기동 궤적 추적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조롱했다. 자신들은 1,000km를 비행했는데 한국과 일본은 680km나 700km정도라고 했으니, 결국 300km 정도 궤적을 놓쳤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한미 군 당국은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미 공군 정찰자산 등을 미리 전개해 놓고 다층 감시망으로 궤적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게 군 안팎의 설명이다. 자신들이 변칙 궤도를 그렸으니 한미가 놓쳤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 보여준다. 지구가 둥글다 보니 지평선이나 수평선 너머 먼 거리의 낮은 궤도 운행 상황을 놓치게 된다는 ‘표면곡률’ 문제도 낡은 개념에 불과한 데 북한은 거기에 집착한 것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핵과 미사일 능력을 연일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다. 극초음속미사일이니 신형 전략무기니 하는 단어들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도배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한국은 요란하게 떠들기보다 묵묵히 비공개리에 실력을 축적해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K-방산’이다.

한국 방산은 이제 국제사회가 열광하며 구매에 줄을 서는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란전쟁에서 한국의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2가 미사일 방어에 있어 실전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말이 아니라 성능으로, 선전이 아니라 품질과 월등한 성능, 납품과 계약으로 검증받는 것이 방산이라는 시장이다.

여기서 북한 군부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시각이 드러난다. 자신들이 경험해 본 기술의 한계가 곧 세상의 한계라고 믿는 순간, “우리가 못 하는 것은 남도 못 하거나 가짜”라는 망상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을음이 없으면 조작이라는 논리는 그을음이 생기는 수준의 열방호 소재밖에 만들어 보지 못한 이들의 눈높이를 스스로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군부 인사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심각하다. 미사일과 핵 관련 기술자, 군 고위 인사들이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지 않고 입맛에 맞는 내용만 올리고 있을 가능성이다.

허위 성과를 보고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체제에서는 ‘남조선 영상은 조작’이라거나 ‘남조선은 우리 미사일 궤적을 놓쳤다’는 식의 보고서가 횡행할 수 있다. 그런 허접한 내용을 토대로 대남 담화를 내놓았다가 한국은 물론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면, 이들 남매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일지 모른다.

방산은 한 나라의 기술력과 체제 역량이 응축된 총아다. 초고온을 견디는 재료공학, 정밀 제어를 가능케 하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첨단 정찰자산을 운용할 경제적 토대, 이를 떠받치는 기초과학과 제조업 생태계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나의 무기체계가 나온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개방, 국제협력과 교류 속에서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종합 국력과 폐쇄와 통제 속에서 주민 대부분을 굶주림에 방치한 채 군사 부문에만 자원을 쏟아붓는 북한의 간극은 이미 ‘넘사벽’이다. 이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허황한 주장으로 체면을 지키려 애쓸 때가 아니다.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비롯한 민생과 경제를 챙기고, 사회 전반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순서다. 아무리 무기를 자랑해도 주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체제가 지탱할 힘은 오래가지 못한다.

대남적대 노선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적대를 앞세워 왔지만, 정작 이번 소동은 그 적대가 얼마나 공허한 허구인지를 보여줬다. 한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한국을 적으로 삼겠다는 것은 우물 속에서 하늘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것과 같다.

이제라도 세습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허구의 적대’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 대화의 길로 나와야 한다. 우물 밖의 세상은 북한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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