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이준호 칼럼니스트] 클럽을 잡은 두 손을 그립 위쪽 끝까지 올려 잡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다. 반대로 페어웨이가 좁거나 반드시 공을 살려야 하는 홀에서는 그립을 조금 내려 잡으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길게 잡으면 멀리, 짧게 잡으면 정확하게. 골프에서는 꽤 익숙한 공식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드라이버를 불과 2인치, 약 5cm 내려 잡았다고 해보자. 겉으로는 손의 위치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만, 물리적으로 보면 클럽은 이전과 조금 다른 도구가 된다.

이유는 회전반경에 있다. 같은 각속도로 회전한다면 회전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끝부분일수록 더 빠르게 움직인다. 골프에서는 그 끝에 클럽헤드(clubhead)가 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긴 클럽은 높은 헤드 스피드(head speed)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v=ωr'이라는 간단한 식으로 설명한다. 선속도(v)는 각속도(ω)와 회전반경(r)에 비례한다. 공식을 외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길수록 헤드를 빠르게 움직일 잠재력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 경향은 확인된다. 2008년 스포츠 생체역학(Sports Biomechanics) 학술지에 실린 연구에서는 상급 골퍼들에게 길이가 다른 드라이버를 치게 했다. 클럽이 길어질수록 초기 볼 스피드(ball speed)가 유의하게 증가했고, 캐리(carry)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있다. 핸디캡 0의 남자 프로골퍼 27명을 대상으로 44·45·46인치 드라이버를 비교한 연구에서, 샤프트 길이에 따라 헤드 스피드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고 44인치와 46인치 사이에서는 비거리 차이도 확인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답은 간단해 보인다. 드라이버는 길게 잡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골프에는 물리 공식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수가 하나 있다. 사람이다.
45.5인치 드라이버를 2인치 내려 잡는다고 해보자. 손과 헤드 사이가 그만큼 가까워진다. 회전반경이 줄었으니 '최대 헤드 스피드'만 놓고 보면 분명 손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회전하는 물체를 돌리는 데는 무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무게가 회전 중심에서 얼마나 멀리 있느냐도 중요하다. 같은 무게라도 멀리 있을수록 돌리기 어렵고, 가까이 있을수록 다루기 쉽다. 이것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관성모멘트(moment of inertia)다. 드라이버를 내려 잡으면 손과 헤드 사이의 거리가 짧아지면서, 골퍼가 느끼는 헤드의 회전 저항도 달라진다. 쉽게 말해 헤드가 한결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어떤 골퍼에게는 헤드를 가속하고 페이스를 맞추기 쉬운 조건이 되고, 반대로 헤드의 존재감이 줄어 타이밍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손의 위치가 헤드 쪽으로 옮겨지면서 샤프트가 휘는 느낌도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실제 발사각(launch angle)이나 스핀 변화로 이어지는지는 골퍼와 스윙에 따라 다르다.
결국 2인치를 내려 잡는 순간, 단순히 '짧은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골퍼가 느끼는 클럽의 움직임과 스윙 자체가 함께 변할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구분이 더 있다. 헤드 스피드와 볼 스피드는 같은 말이 아니다. 드라이버를 빠르게 휘두르는 목적은 헤드 스피드 숫자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그 에너지를 공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가 핵심이다.
가령 정상적으로 잡았을 때 헤드 스피드가 110mph, 2인치 내려 잡았을 때 108mph가 나왔다고 하자. 물리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결과다. 하지만 첫 스윙은 페이스 중앙을 벗어나 맞고, 두 번째 스윙은 중앙에 가깝게 맞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10mph의 헤드가 반드시 108mph의 헤드보다 빠른 공을 만드는 건 아니다. 임팩트 효율(스매시 팩터·smash factor)이 좋아지면 줄어든 헤드 스피드의 일부, 혹은 전부를 볼 스피드에서 만회할 수 있다.
그러니 드라이버에서 봐야 할 숫자는 하나가 아니다. 헤드가 낸 속도가 공으로, 다시 공이 날아간 거리와 좌우 분산(dispersion)으로 이어지는 '사슬'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짧게 잡으면 정확해진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맞을까. 이 부분은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기존 연구에서 긴 드라이버가 항상 더 부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의 2008년 연구에서는 클럽이 길어져도 정확도가 유의하게 나빠지지 않았고, 국내 프로골퍼 연구에서도 방향성은 선수의 신체조건과 길이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긴 드라이버는 멀리 가지만 부정확하고, 짧은 드라이버는 덜 나가지만 정확하다'는 말을, 모든 골퍼에게 통하는 법칙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주의점이 있다. 기존 연구의 상당수는 길이가 서로 다른 드라이버를 '따로 제작해' 비교했다. 우리가 코스에서 하는 것처럼 하나의 드라이버를 그대로 둔 채 그립만 1~2인치 내려 잡는 것과는 조건이 다르다. 실제로 이 연구가 나온 뒤, 2009년 폴 글레이저는 같은 학술지에 반론을 실었다. 성능 향상이 샤프트 길이 자체 때문인지, 실험용 드라이버의 다른 특성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원 연구진도 곧바로 답했다. 샤프트 길이는 다른 조건과 완전히 분리해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결론은 유지했다. 45.5인치 드라이버를 2인치 내려 잡는 것과, 샤프트를 잘라 43.5인치로 만드는 것은 같지 않다. 클럽 전체의 질량 분포와 그립 위치, 샤프트가 휘는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하나 남는다. 그렇다면 같은 드라이버를 내려 잡으면 실제로 어떻게 될까. 글레이저의 지적처럼, 그 답은 골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남의 평균이 아니라 '내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행히 그건 연습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재 봤다. 같은 45.5인치 드라이버로 평소처럼 잡은 상태(0인치), 1인치, 2인치 내려 잡은 상태를 각각 15구씩, 트랙맨(TrackMan)으로 측정했다. 순서 효과를 줄이려 세 조건을 번갈아 반복했고, 잘 맞은 몇 개가 아니라 전 구간의 평균과 편차를 함께 봤다.
클럽 스피드는 내려 잡을수록 또박또박 줄었다. 108.4mph에서 107.7, 106.9mph로. 물리학이 예고한 그대로다. 그런데 볼 스피드는 거의 꿈쩍하지 않았다. 159.9, 160.2, 160.0mph. 클럽은 느려졌는데, 공 속도는 그대로였다.
비밀은 스매시 팩터에 있었다. 1.474에서 1.487, 1.496으로 또렷하게 올라갔다. 줄어든 클럽 스피드를 정타가 고스란히 메운 것이다. 캐리는 270야드 안팎에서 사실상 변화가 없었고, 토탈 거리는 오히려 286.5야드에서 287.6야드로 조금 늘었다. 더 인상적인 건 방향이었다. 좌우 분산(평균 절대값)이 8.6야드에서 6.6, 5.2야드로 좁아졌고, 페이스 센터에 맞는 비율도 함께 올라갔다.


물론 이건 내 스윙의 결과다. 어느 길이가 정답이라고 미리 정해둘 일은 아니다. 사람마다 팔 길이도, 신장도, 스윙 궤도도, 클럽을 가속하는 방식도 다르다. 같은 45.5인치도 누군가에게는 최적의 길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긴 클럽일 수 있다. 실제로 시중에 파는 드라이버는 평균 45.5인치 안팎이지만, PGA 투어 선수들은 대체로 그보다 짧은 드라이버를 쓴다(투어 평균 약 44.5~45인치). 리키 파울러는 한때 45.5인치 드라이버를 내려 잡고 치다가, 정확성을 위해 최근 43인치대까지 줄이기도 했다. 가장 빠르게 치는 이들이 무작정 긴 클럽을 고르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가장 빠르게 휘두를 수 있는 길이는 무엇인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나는 어느 길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공을 때리고 있는가'이다. 드라이버의 목적은 가장 높은 헤드 스피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속도를 공에 전달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능한 한 멀리 보내는 것이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드라이버'에 한정된다. 아이언을 내려 잡는 것은 거리를 줄여 더 정교하게 치기 위한, 목적이 다른 선택이다.
다음 연습에서는 그립 위에 표시를 해보자. 0인치, 1인치, 2인치. 그리고 같은 드라이버로 각각 쳐본다.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드라이버 길이는, 샤프트에 적힌 45.5라는 숫자가 아니라 두 손을 어디에 놓느냐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이준호 스윙다인 아카데미 대표/KPGA PRO(Class A)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참고: Kenny 등(2008) 'Influence of shaft length on golf driving performance'(Sports Biomechanics)와 이를 둘러싼 Glazier의 반론·저자 답변(2009); 정철·김지선(2019, 한국응용과학기술학회지); 시판·투어 드라이버 길이는 제조사 피팅 가이드 등 참고. 본문 측정값은 필자가 동일 45.5인치 드라이버로 0·1·2인치를 각 15구씩 트랙맨으로 측정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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