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성한 데가 별로 없네. 하나둘 망가지는 게 정상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섧할 때도 많아. 책을 읽느라 안경을 오래 쓰고 있으면 콧등이 아파서 자주 벗고 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 그래서 무슨 해결 방법이 없나 알아보려고 안경점에 갔었네. 가만히 내 방문 이유를 듣고 있던 사장님이 묻는 거야.
사장: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읽는데요?
나: 적어도 10시간 이상이요.
사장: 뭔 책을 그렇게 읽어요?
나: ……
사장: 노인이 그렇게 책을 오래 보시니 당연히 아프죠.
나: 무슨 방법 없을까요? 혹시 코 받침대 없는 테는 없어요?
사장: 있기는 하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될 텐데요.
그러면서 코 받침대 없는 안경테를 보여줘서 안경을 새로 하나 만들었지. 효과가 있었냐고? 별 차이가 없었네. 그래서 독서 안경을 쓸 때는 티슈를 작게 접어서 콧등 위에 얹어놓고 그 위에 안경 코 받침대가 닿게 해. 모르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가끔 모르는 사람들은 물어. 왜 코에 티슈를 얹고 있냐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을 읽어서 콧등이 아프다고 했을 때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안경점 사장님의 모습을 가끔 떠올리면서 혼자 웃네. 나처럼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노인에게는 책이 가장 좋은 친구라는 걸 그분은 몰랐던 거지. 이동성이 떨어지는 노년에는 가까이 사는 친구가 더 정이 가는 것 같네. 책이 그런 친구야.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바로 만날 수 있어서 좋거든. 게다가 필요할 때는 함께 나들이도 할 수 있으니 노년의 소울메이트(soulmate), 즉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아.
내가 노년에도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독서가 뇌의 전신운동이기 때문이야. 노인들에게 건강 유지를 위해 걷기와 운동을 권하는 사람은 많아도 뇌 건강을 위해 독서를 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왜 그럴까? 2024년 12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이 20%가 넘은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나라에서 왜 노인들은 뇌 건강, 특히 치매 예방에 좋다는 책 읽기를 멀리하고 있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네. 스마트폰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야.
2025년 1월에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뇌 썩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면 ‘사고하는 뇌’인 배외측 전전두엽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아 바보가 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스마트폰이 뇌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험을 설계했던 일본의 도호쿠대학의 가와시마 류타 교수는 『독서의 뇌과학』에서 독서를 활용한 인지 기능 향상 프로그램의 효과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네.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고 증상이 중도에서 중증도까지 진행된 환자들에게 일주일에 5일씩 짧은 글을 음독하거나 간단한 단어를 소리 내어 읽도록 했더니 약물을 복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효과를 냈다는 거야.
“이 프로그램의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들의 인지 기능이 향상된 것이다! 증상의 진행이 멈춘 정도가 아니라,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는 인지 기능이 오히려 회복되었다. 이 변화를 실제로 눈앞에서 보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에 광주에 가서 치매를 앓고 있는 누이동생을 복지시설에 입원시키고 왔네. 이번에는 오빠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더군. 감정이 사라진 얼굴로 오빠와 언니 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모습이 애처로워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네. 나중에 자식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다짐도 했어.
치매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나이일세. 70대 초반의 치매 유병률은 3~4% 정도이고, 80대가 되면 40%로 높아져. 85세가 넘으면 두 명 중 한 명은 치매 환자일 가능성이 높아. 노인이 되면 치매가 특이한 질병이 아니라는 뜻이야. 그러니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책을 읽어야 해. 책은 어떤 보약보다도 우리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소중한 친구라는 걸 잊지 말게.
마지막으로 책 읽기는 뇌와 신체가 함께하는 여행이란 걸 보여주는 시 하나 소개하려고 하네. 일본의 유명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숲에게>라는 시야. 집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통해 손과 발, 눈과 귀, 입과 마음을 동시에 움직이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이동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왜 이런 여행은 마다하고 굳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고 밖으로만 나가려고 하는지 몰라.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라”는 옛사람들의 말을 나만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 책을 통해서도 만 리를 여행할 수 있는데….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에 내리는 은밀한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할 말을 잃는다/ 읽는 사람의 손가락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김응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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