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현대사는 대한민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에게 매혹적이고, 또 위험한 소재다. 최근 두 편의 화제작에게 뒤따른 반응은 그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먼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 의혹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추적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 역사적 사실에 팩션(Faction)을 더했고, 그 결과 거센 정치적 공방에 휘말렸다. 비판은 스크린을 넘어 국회 국정감사와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 시위라는 충돌로 비화했다.
1979년 10·26과 12·12 사이 권력의 공백을 다룬 우민호 감독의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시청자들은 매력적인 빌런이자 주인공인 백기태(현빈)가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신군부 실세 황대식(허정도)을 시원하게 무너뜨리는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갈망했으나, 연출진은 "실제 역사의 큰 팩트를 거스를 수 없다"며 백기태의 허망한 몰락이라는 역사적 순응을 택했다. 그 결과 "서사적 개연성을 배신한 용두사미"라는 시청자들의 차가운 혹평을 마주했다.
상상력을 보태 허구를 섞으면 '왜곡'이라는 공격을 받고, 기록된 역사적 사실만을 충실히 따르자니 '진부하고 허무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창작자들이 겪는 외줄 줄타기다.
'암살자(들)'의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단정하지 않은 열린 가설이자 극영화"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족과 관련자가 생존해 있고 상처가 아물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에 상상력을 더할 때, 그 질문이 어떤 불쾌감과 정치적 해석을 낳을지에 대한 사회적 무게감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었다. 창작의 자유는 질문할 권리를 보장하지만, 반대로 그 질문에 반응하는 대중에게도 분노의 자유는 존재했다.
반면 '메이드 인 코리아2'의 우민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신군부를 이기는 결말을 내려면 역사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쏜 게 안중근이 아니라 제3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역사적 실체적 진실을 지키겠다는 창작자의 고뇌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불만은 단순히 '대체역사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픽션 캐릭터를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틈바구니에 매력적으로 끼워 넣었다는 점에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캐릭터의 서사적 완결성마저 역사라는 거대한 바위 밑에 맥없이 짓눌러버린 안이함에 시청자들은 실망했다.
두 작품의 후폭풍은 우리 사회에 숙제를 던진다. 영화 한 편에 정치권이 개입해 제작사 투자와 평점을 검열하려 들고 배우의 집 앞까지 몰려가 일상을 위협하는 폭력은 결코 정당한 '비판의 자유'가 될 수 없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일침처럼 비판이 인신공격과 삶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건강한 공론장이 아닌 문화적 테러에 불과하다.
동시에 창작자들도 고민해야 한다. "창작의 자유"가 민감한 역사적 상처를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관객의 자연스러운 분노와 비판을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치부하는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역사를 다룬다는 핑계로 서사적 개연성을 포기한 채 관객에게 허무함만을 강요하는 것 역시 창작자의 게으름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상상력이고, 어디까지가 지켜야 할 사실의 경계인가. 자의적으로 자를 대듯 완벽한 선을 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왕 벌어진 이 뜨거운 논란들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입을 틀어막는 비극으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 아슬아슬한 선은 어디에 그어져있는가. 우리가 나누어야 할 '고민'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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