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갈등이 임금 인상을 넘어 인사제도 개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내부 입장문에서 인사·평가제도 개선을 교섭의 핵심 과제로 강조하면서 회사의 인사권과 노조의 참여 범위를 둘러싼 대립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8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는 임금 인상률뿐 아니라 인사이동과 평가, 승격, 성과보상 등 인사제도 전반에 대한 노동조합의 참여 범위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동조합은 최근 조직국장 명의로 직원들에게 입장문을 발송했다.
입장문에서 노조는 “이번 임단협을 단순히 월급 몇 퍼센트 더 달라는 싸움으로 본다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제도이며, 이번 임단협의 본질은 제도”라고 밝혔다.
임금 인상뿐 아니라 인사제도 개선을 이번 교섭의 주요 목표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조는 인사이동 기준과 근무제도 변경 절차, 평가·승격의 공정성, 성과보상 원칙 등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러한 요구가 단순한 근로조건 개선을 넘어 기업의 인사권과 경영 판단에 노동조합이 관여하는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인사이동과 평가, 승격 등은 기업의 인력 운영과 직접 연결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노조의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조는 그동안 경쟁사와의 임금격차 해소를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세워 왔다. 직급과 연차에 따라 경쟁사보다 고정급이 낮고 성과보상 체계에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임금 협상에서도 양측의 입장 차이는 크다. 회사는 기본급 6.2% 인상과 일시금 지급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기본급 9.5% 인상과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사제도 개선 요구에는 지난해 불거진 내부 인사 문건 논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당시 회사가 저성과자를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일부 부서에 유리한 평가를 적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인사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의 요구가 인사권 행사에 대한 과도한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평가와 승격 기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개별 인사 결정에 노동조합이 관여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사 간 교섭 범위를 둘러싼 법적 판단도 쟁점이다. 기업의 본질적인 경영 판단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지만 근로조건과 직접 관련된 인사·배치전환 등은 구체적인 요구 내용과 영향에 따라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9월 발표한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에서 사업경영상의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해당 결정으로 근로조건의 변동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관련 사항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기업의 영업이익 등과 일정 비율로 연동한 성과급 요구 역시 노사 간 자율적 협의는 가능하지만 의무적 교섭이나 쟁의행위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기준을 실제 교섭 요구에 적용하려면 각 요구가 근로조건 및 경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따라서 이번 갈등 역시 노조가 요구하는 인사제도 개선이 근로조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지, 회사의 고유한 인사 결정 권한을 제한하는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노사 갈등은 이미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노조는 지난 5월 1일부터 5일까지 첫 전면 파업을 진행한 데 이어 세 차례 사후조정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오는 26일부터 3주간 2차 총파업을 예고했다.
최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대 주주인 삼성전자에도 인사·보상 제도에 대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삼성전자가 인사제도의 공통 기준과 평가·직급 요건 등에 실질적으로 관여해 왔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회사가 실질적인 개선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교섭 결렬의 책임이 사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노조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며 장기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과 고객사 신뢰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조합이 교섭 대상이 아닌 회사의 인사·경영권을 단체협약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까지 강행하는 것은 정당한 노동운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파업 명분과 실제 교섭 요구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실력 행사는 노사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회사 성장의 결실을 임직원들과 나누고 합리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대화할 용의는 언제든 열려 있다”면서도 “현행법상 교섭 대상이 아닌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과도한 개입 요구와 이를 명분으로 한 명분 없는 파업 시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인사제도 개선을 교섭의 핵심 과제로 강조하고 사측이 경영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양측의 대립은 임금 인상률 조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오는 26일 파업을 앞두고 인사제도에 대한 노조의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조율할 수 있을지가 교섭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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