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국어 안내판과 화려한 입간판을 내건 대형 약국이 골목마다 이어졌다. 그러나 매대 앞은 한산했고, 진열대를 채운 것도 의약품보다 스킨케어 제품이었다. 한 약국 직원은 “평일이라 그렇다”고 했다.
한때 화장품 로드숍과 소품숍이 메우던 명동 거리에 대형 ‘파머시 뷰티’ 약국들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뷰티 매장이 약사를 채용하고 약국으로 간판을 바꾸는 사례까지 늘면서 명동 일대는 그야말로 ‘약국 화장품’ 격전지가 됐다.
◇ PDRN·스킨부스터 열풍에 외국인 몰리는 ‘K-약국’
명동 약국의 주 타깃은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다. 매장 공간의 70~80%는 일반 의약품이 아닌 스킨케어 매대로 채워져 있다. 특히 PDRN, 엑소좀, 시카, 바쿠치올, 판테놀, 레티놀 등 고기능성 성분을 전면에 내세운 재생·미백·여드름·기미 특화 라인이 주를 이룬다.

약국 화장품 인기에 불을 지핀 것은 한국의 피부과 시술과 K-뷰티 인기가 맞물리면서다. 파마리서치의 리쥬란 시술이 해외 스타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피부과 시술 후 피부 관리를 위한 제품인 ‘리쥬비넥스크림’ 등이 ‘약사 추천 재생크림’으로 공유돼 품절 대란을 빚기도 했다.
약국도 외국인 응대 인력을 배치하고, 전용 짐 보관 서비스나 즉시 세금 환급 시스템을 도입하며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한 약사는 “한국 시술이 외국보다 저렴해 시술 후 피부 상태를 관리할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화장품 가격도 자국보다 싸니 여러 제품을 구매해 한 번에 간다”고 말했다. 피부과 시술과 약국 소비가 하나의 동선으로 묶이는 구조다.

◇ 상반기 결제 12배 늘고…약국 수는 52% 증가
수치상으로도 외국인의 약국 소비는 크게 늘었다. BC카드 분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지역 외국인의 약국 카드 결제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76.9% 늘었다. 같은 기간 피부미용은 109.8% 증가했다.
중구청에 따르면 명동 일대 약국은 지난해 46곳에서 이달 70곳으로 52% 늘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수요가 점포 증가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올해 개업한 한 약국 관계자는 “평일이나 계절에 따라 손님 기복이 상당하다”며 “환율 변동에 따라 외국인 구매력이 좌우되는데, 최근 환율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있는 약국 제품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고 토로했다.

◇ 약국 옆 또 약국…올리브영과도 경쟁
유통 공룡 ‘올리브영’과의 격차와 약국 간 과열 경쟁도 큰 부담이다. 약국 직원들은 물량 공세와 상시 할인, 대형 세일을 앞세운 올리브영의 벽을 넘기 어렵다고 했다.
한 약사는 “손님들에게 약국 전용 라인과 올리브영 제품의 차이를 설명해도 결국 인지도나 세일 폭을 보고 올리브영으로 발길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리브영은 외국인 전용 글로벌 특화 매장인 ‘올리브영 센트럴 명동타운’과 플래그십 매장 ‘명동 타운’을 비롯해 명동 일대에 총 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CJ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뷰티 소매 시장은 13조7162억원이고, 올리브영 매출은 2조9433억원으로 점유율 21.5%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명동 약국들은 올리브영 매장 인근에 바짝 붙어 유입 인구를 흡수하는 입지 전략을 쓰거나, 올리브영에 입점하지 않은 약국 전용 브랜드와 고기능성 더마 제품을 배수진으로 치고 있다.
또 다른 약국 관계자는 “유사한 콘셉트의 약국들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생겼다”며 “과거 신사동 가로수길이 천편일률적인 매장들로 도배되며 매력을 잃었던 것처럼 명동 상권도 볼거리가 줄고 매력이 반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통·제약사 ‘더마’ 공략 가세…약국은 테스트베드?
약국이 뷰티 유통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자 유통‧제약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무신사는 지난달 ‘무신사 뷰티 홍대’ 지하 1층에 약국을 들인 ‘파머시 뷰티’ 공간을 오픈해 개점 사흘 만에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약사들도 화장품 사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동국제약의 센텔리안24, 동아제약의 파티온, 유한양행의 더이유, 한미사이언스의 아데시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약국이 신규 더마뷰티 브랜드의 초기 유통 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 약사는 “더마뷰티 제품이 많이 나오지만 올리브영 입점이 쉽지 않아 약국 문부터 두드리는 경우가 있다”며 “약국에서 소비자 반응을 얻으면 올리브영으로 옮겨 가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약국의 뷰티 매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약국 본연의 기능과 판매 방식에 대한 관리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외국인 응대 직원이나 통역 인력이 제품 성분과 사용법을 설명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약사들은 계산대에서 연고 등을 고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루 몇 번 바르라는 간단한 복약 지도를 했다.
약국들이 고기능성 제품과 약사 상담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지만, 소비자에게는 약국과 일반 화장품 매장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독일에서 온 20대 여행객도 “약국이라 방문한다기보다는 올리브영이든 약국이든 길을 지나다 눈에 띄면 자연스럽게 들어가 본다”고 말했다.
약국에서 만난 홍콩에서 온 20대 여행객은 “약국에서는 여드름 연고 등을 구매했다”며 “화장품은 올리브영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더마뷰티 시장 자체는 성장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더마뷰티 시장은 2020년 7893억원에서 2025년 1조5557억원으로 커졌다. 더마 스킨케어의 연평균 성장률은 15.7%로 전체 스킨케어 시장 성장률(2.1%)을 크게 웃돌았다. 명동 거리에는 이날도 대형 약국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약국 관계자들도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이어지는 만큼 뷰티 약국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봤다. 다만 규모의 경제를 갖춘 약국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 대형 약국 관계자는 “현재도 명동에 약국 매물이 나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결국 경쟁을 버티지 못한 약국들이 문을 닫고, 남은 시장을 대형 약국들이 나눠 갖는 구조로 재편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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