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리셋하겠다"…타노스의 '미친 합리성', 지금 AI가 닮아간다[곽명동의 씨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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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인피니티 워'./디즈니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꿈에서 시작된 공포

'인공지능 공포'의 시작은 한 남자의 악몽이었다. 1981년 영화 <피라냐 2>를 만들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제작자와의 갈등으로 연출권을 빼앗겼다. 돈도 없고 병까지 걸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로마의 삼류 호텔에서 40도의 고열에 시달리며 환각에 가까운 꿈을 꿨다. 훗날 그는 "불에 타서 상반신만 남은 금속 해골이 다가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손에 자루칼을 쥐고 나를 향해 끌어당겼다"고 회고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게티이미지코리아

깨어나자마자 호텔 메모지에 그린 스케치는 '터미네이터' T-800의 최초 디자인이 되었고,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자의식을 갖고 인류를 위협하는 1984년 SF 걸작 탄생의 시초가 되었다. 2023년 CTV 뉴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AI의 위험성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나지막이 덧붙였다. "내가 1984년에 이미 경고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았다."

상상이 현실의 경고가 되다

한때 영화 속 상상이던 경고는 이제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2022년 챗GPT 출시 이후 AI 성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면서, 통제력 상실 문제는 먼 미래의 가정이 아닌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구글 등 주요 AI 기업들이 위험에 대비해 개발 속도를 조율하자고 제안한 것 역시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학계의 목소리도 한층 높아졌다. 세계적 'AI 대부'로 꼽히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와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등은 지난달 영국 케임브리지대 'AI 과학·정책 프로그램(CASP)' 공동 논문에서 "AI 시스템에 대한 통제를 상실할 경우, 가장 극단적인 순간 인류의 소외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서늘한 경고를 건넸다.

AI의 위험은 스스로 반란을 일으킬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오남용만으로도 치명적이다. AI가 기존 치료제나 분자 구조를 조합해 치사율이 극도로 높은 신종 바이러스 설계를 도울 수 있고, 군사적 효율성을 이유로 핵무기나 국가 핵심 기반 시설의 통제권을 맡겼다가 예기치 못한 시스템 오류로 대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

타노스라는 거울, 폭주하는 '극단적 합리성'

이러한 위험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영화적 거울이 바로 타노스다. 타노스는 단순히 파괴를 즐기는 악당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하고, 그 목표를 방해하는 존재를 차갑게 제거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의 타노스가 자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생명체의 절반을 솎아내는 과격한 공리주의자였다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타노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스템 전체를 전면 리셋하려는 '우주적 설계자'로 진화한다.

그는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의 절반을 없애면 나머지 절반은 번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희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들이 있는 한, 다가올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도 언제나 존재할 테니까. 그들은 저항할 것이다. 이 우주를 마지막 원자 하나까지 산산이 없애버리겠다. 너희가 날 위해 모아준 스톤들로 새로운 우주를 만들겠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아는 생명으로 가득 찬 새로운 우주를, 감사해하는 우주를 만들겠다."

눈여겨볼 대목은 타노스의 행동이 단순한 '악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설정한 '우주의 균형'이라는 목표를 위해 인간의 자유와 개성, 고통과 기억, 심지어 생명까지 한낱 통계적 수단으로 취급한다. 문제는 타노스가 비합리적이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목표를 향해 지나칠 정도로 일관되고 완벽하게 폭주한다는 데 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이나 따뜻한 온기를 가치 함수에 담지 않은 채 '인류의 장기적 생존 확률'이나 '시스템 최적화' 같은 단일 수치만 극대화하도록 설정된다면, 그 극단적 합리성은 가장 비인간적인 비극을 낳는다.

공포 너머의 과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악몽에서 시작된 '차가운 금속의 서사'는 이제 스크린을 넘어 현실의 질문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어떤 가치와 목적을 AI에 부여할 것인가." 터미네이터처럼 기계의 형상으로 기어오든, 타노스처럼 손가락을 튕기는 절대적 설계자의 모습으로 다가오든, 중요한 것은 그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지금 인간의 규범과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할 질문은 AI가 얼마나 똑똑해질 것인가가 아니다. 그 차가운 지능이 무엇을 위해 숨 쉬게 할 것인가이다. AI가 비추는 가장 위험한 디스토피아는 인공지능 자체의 악의가 아니라, 효율성과 최적화에 빠져 '인간됨의 가치'를 스스로 지워버린 우리의 황폐한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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