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제시한 총 4755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계획이 국정감사 검증대에 오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기존 투자와 신규 투자의 구분, 연도별 집행 계획, 전력·용수 확보 방안 등 투자 실현 가능성을 가늠할 핵심 쟁점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시작된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 이 회장과 최 회장을 포함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결정 과정과 정부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두 회장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총수를 국회로 불러 세우는 ‘망신주기식·마구잡이식 증인 채택’이라며 반대했다.
두 회장의 국감 초반 출석은 불발됐지만, 출석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오는 22일 산중위 종합감사와 26~27일 환노위 종합감사를 앞두고 추가 증인 채택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합의하면 두 회장이 종합감사 증인석에 설 가능성은 남아 있다.
재계에서는 총수 출석 여부를 둘러싼 공방만으로 이번 국감이 소진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총수를 증인석에 세우는 것보다 4755조원의 산정 근거와 실제 집행 가능성, 정부와 기업 간 역할 분담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국감의 본질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삼성과 SK는 지난 6월 29일 정부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각각 2655조원과 21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두 그룹의 발표액을 합하면 4755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전체 금액 가운데 실제 신규 투자가 얼마나 되는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두 그룹이 제시한 금액에는 기존 사업과 신규 투자계획이 함께 포함됐지만, 정부가 발표한 1461조원은 신규 투자 중심으로 산정됐다. 발표 주체별로 집계 범위와 투자 기간이 달라 같은 기준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삼성그룹이 제시한 국내 투자액 2655조원과 삼성전자가 공시한 투자계획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는 2026년부터 2040년까지 국내에 약 24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시하면서도 시장 상황과 경영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중장기 가이드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감에서는 4755조원 가운데 이미 집행 중인 사업과 새로 추가된 사업을 구분하고, 각 사업이 어느 단계까지 확정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사회 의결을 마친 투자와 경영진 차원의 장기 구상도 분리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열사별 투자 주체와 사업별 금액, 연도별 집행 규모, 착공·양산 목표 시점도 주요 검증 대상이다. 장기간에 걸친 투자 예정액을 단순 합산한 수치인지, 실제 자금 조달과 집행 계획까지 마련된 사업인지에 따라 발표된 투자액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번 국감에서 투자 실현 가능성과 기업의 의사결정 자율성을 함께 따져볼 핵심 사안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호남권에 425조원, SK하이닉스는 서남권에 400조원을 투자해 각각 메모리 반도체 공장 2기씩 총 4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두 회사의 투자액만 825조원이며 앰코테크놀로지 등의 계획을 포함하면 서남권 전체 투자 규모는 896조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은 최 회장이 지난 4월까지만 해도 호남 반도체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가 약 두 달 뒤 투자계획을 발표한 배경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의 사업성 판단에 따른 결정인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요구가 영향을 미쳤는지가 쟁점이다.
다만 투자 결정 과정의 정부 개입 여부만 부각하면 대규모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추진 조건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실제 가동되려면 부지 선정과 토지 보상, 산업단지 지정, 환경영향평가, 각종 인허가, 송·변전망과 용수시설 구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직 기업별 정확한 입지와 공장별 투자액, 착공 및 양산 시점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반도체 업황과 메모리 기술 변화, 국내외 생산 거점의 가동 상황에 따라 공장 건설 시기나 생산 품목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전력과 용수 확보는 사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다. 한국전력은 2029년부터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3기가와트(GW)의 전력을 우선 공급한다는 계획이지만, 필요한 송·변전망 건설 일정과 재원 분담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한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향후 5년치 전기요금을 미리 납부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경위도 국감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전력망 구축 비용을 기업과 공기업, 정부 가운데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 정해지지 않으면 공장 건설 일정 역시 장담하기 어렵다.
용수 공급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장 4기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하루 용수량과 공급원, 정수·폐수처리시설 건설 계획,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의 비용 분담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전력과 용수시설 구축이 반도체 공장 착공보다 늦어질 경우 전체 투자 일정이 밀릴 수 있다.
이번 국감에서는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뿐 아니라 정부가 약속한 지원책의 준비 수준도 함께 검증해야 한다. 기업에만 4755조원 투자의 이행 책임을 묻기보다 관련 인허가를 어느 정도 단축할 수 있는지, 기반시설 구축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지역 인력과 협력사 생태계를 어떤 방식으로 조성할지를 정부에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총수 출석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검증은 가능하다. 투자계획을 수립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담당 경영진,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한전과 수자원 관련 기관 책임자를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러 사업별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로부터 투자 산정 기준, 연도별 집행계획, 기반시설 구축 일정 등의 자료를 제출받는 방안도 있다.
국감에서 우선 확인해야 할 내용은 전체 투자액 가운데 신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계열사별 투자 주체, 사업별 이사회 의결 여부다. 여기에 부지 확정 및 인허가 진행 상황, 공장별 착공·양산 일정, 전력·용수 수요와 공급계획, 정부 지원 규모, 사업이 지연되거나 철회될 수 있는 조건까지 살펴봐야 한다.
4755조원은 단순한 기업 투자계획을 넘어 지역 산업구조와 국가 전력망, 용수 공급체계에 장기간 영향을 미칠 규모다. 발표된 숫자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려면 기업의 자금 집행뿐 아니라 정부의 기반시설 구축과 제도적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국감의 성패는 이 회장과 최 회장을 증인석에 세우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야가 총수 출석을 둘러싼 정치 공방을 넘어 4755조원의 산정 근거와 집행 로드맵, 호남 반도체 투자의 의사결정 과정과 실행 조건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밝혀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