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국회=박설민 기자 기술의 ‘범용화(Commoditization)’ 현상은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특히 IT·전자기기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스마트폰과 TV, 모니터, 컴퓨터 등은 기술 발전으로 경쟁사 간 제품 격차, 개성, 차별성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최저가형 모델을 구매하더라도 어느 수준의 성능은 보장된다.
이것이 최근 ‘디스플레이’가 주목받는 이유다. 그동안 단순히 전자기기의 화면으로 인식됐던 디스플레이는 이제 범용화 시대, 제품의 가장 큰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 됐다.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업계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휘는 화면의 ‘폴더블폰’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디스플레이 시장 주도권은 한국이 쥐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양사의 기술력은 중·소·대형 OLED패널 등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점유율은 약 70%에 이른다. 하지만 LCD 등 저가형 모델에서 중국 등 경쟁국들의 추격도 매섭다. 이에 전문가들은 새로운 국가 산업 안보로 자리 잡은 디스플레이 초격차 유지를 위한 국가 차원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OLED까지 파고든 中… 5년 새 점유율 12%→31%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1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서 ‘ 디스플레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를 주관 개최했다. 주최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정 의원, 이재관 의원, 전은수 의원이 맡았다. 각각 파주을, 천안을, 아산을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로 국내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 지역이다.
이번 토론회는 글로벌 디스플레이 패권 경쟁 속 국내 산업의 현주소 진단, 초격차 확보를 위한 범정부, 국회 차원의 선제적 대응방안 모색을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 주제는 ‘산업안보가 된 디스플레이, AI로 이끄는 초격차’다.
축사를 맡은 박정 의원은 “디스플레이는 이제 하나의 전자제품의 부품을 넘어 첨단산업 경쟁력과 국가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며 “차세대 OLED와 마이크로 LED 등 미래 기술에 대한 장기적 연구개발, AI 제조혁신을 위한 투자, 인재 양성 등 종합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 의원의 말처럼 첨단 디스플레이는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급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성숙기에 접어든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의 가치는 매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480~550억달러로 추정된 OLED시장은 2036년까지 약 1,300억~1,55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9~11%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의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한국 87.3%, 중국 12.1%였던 OLED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한국 68.7%, 중국 31.2%로 좁혀졌다. 5년 만에 중국 점유율이 19.1%p 상승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LCD를 포함한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1분기 기준 중국이 55.9%, 한국이 28.9%로 크게 뒤지고 있다.
이승우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 부회장 “어느 새 중국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흔드는 위협적 존재가 됐다”며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기업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투자를, 연구기관을 이를 뒷받침할 기술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LG “답은 압도적 기술”… AI 혁신·투자 지원 한목소리
결국 현재 OLED, 마이크로 LED 등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에 있어 글로벌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선 정책적·기술적 지원이 함께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인공지능(AI) 전환’에 발맞춘 제조 혁신과 신시장 선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한철종 센터장은 “공간 컴퓨팅(XRㆍAR), 로봇 인터페이스 등 AI 시대의 신시장 개화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 기업들이 제조 전 공정에 AI를 전면 도입해 공세를 펴는 만큼, 국가 주도의 AI 데이터 공유 체계 및 인프라를 구축해 초격차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 개념을 대응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는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AI가 가설 설정부터 평까까지 폐루프(Closed-loop)를 자동 수행하는 국가 제조 데이터 인프라다. 이 AI자율실험실 모델에 Virtual Fab을 결합, 가상 공간 공정 시뮬레이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뮬레이션과 실제 검증, 모델 갱신 사이클 자동화를 이룰 수 있다. 그 결과, 디스플레이용 신소재 및 공정 개발 기간의 단축, 수율 향상 및 개발 비용의 절감, 작업자 숙련도 편차 제거 및 인력 의존도 탈피 등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한종철 센터장의 설명이다.
다만 이 같은 디스플레이의 기술 혁신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허철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세제 지원 강화 △투자 인프라 적기 구축 지원 △중소기업 및 연구기관 지원 강화의 3가지 전략을 정부·국회에 제안했다.
허철 부사장은 “국가 핵심 산업 안보가 된 디스플레이의 초격차는 지금 대한민국이 반드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여기서 AI는 이러한 경쟁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2월 기간이 현행 10년인데 20년까지 연장을 하고 일몰 기한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해 주시기를 요청드린다”며 “R&D 전반을 공제 대상에 포함시켜 기업이 장기적인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이한구 LG디스플레이 그룹장은 “중국의 추격 상황에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살아남는 방향은 압도적이고 차별화된 기술”이라며 “이를 위해 LG디스플레이는 맞춤형 독자 AI를 개발,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및 생산 분야에 적용해 기존 한 달 걸리던 설계 작업이 8시간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인세 차감도 필요하지만 투자금 일부를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직접 환급제를 제안드리고 싶다”며 “디스플레이라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투자한 해 적자가 나면 법인세 자체를 내지 않아 세액공제 혜택을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승우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은 “디스플레이는 이제 단순한 전자부품을 넘어 AI·첨단산업을 연결하고 구현하는 핵심 국가 안보 자산”이라며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우리 생태계를 지켜내는 것은 곧 국가 미래 경쟁력과 안보를 지키는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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