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미국 상원에서 가상자산 전반의 시장 구조와 규율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핵심 법안인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의 심의 개시를 위한 절차 투표가 부결됐다. 이번 부결로 연내 입법 처리는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관련해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 산업의 제도화라는 거대한 방향성이 훼손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의 제도화를 벤치마크 모델로 삼고 있는 한국의 '디지털자산기본법' 및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가 덩달아 지연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 '공직자 이해상충'과 '예금 유출' 이견 차이로 부결
16일 미국 상원에서는 클래리티 법안 심의 개시를 위한 절차 투표(Cloture)가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출석한 민주당 전원(찬성 0명)과 공화당 4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토론 종결 및 심의 개시에 필요한 60표 확보(11표 부족)에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는 이번 절차 투표 부결이 법안의 완전한 무산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확립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 역시 1차 클로처(cloture) 투표에서 48대 49(민주당 찬성 0명)로 부결된 전례가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불과 열흘 뒤 재표결(66대 32)을 통해 본회의 심의를 개시했고, △대체수정안 채택 △상원 본회의 △하원 통과(308-122)를 거쳐 두 달여 만에 대통령 서명까지 일사천리로 마쳤다.
클래리티 법안 상원 클로처 반대 이유를 살펴봐도 의원들의 반대는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화 자체보다는 세부 쟁점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공화당 톰 틸리스(Thom Tillis) 의원의 반대는 "향후 재심 동의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적 선택"이었으며, 조시 홀리(Josh Hawley)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이자·보상 지급으로 인한 지역은행 예금 유출 및 대출 위축"을 우려했다.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마크 워너(Mark Warner)·코리 부커(Cory Booker) 등 민주당 의원들 역시 "대통령 및 고위공직자의 이해상충 방지 조항과 윤리 규정 미흡" 등을 반대 사유로 꼽았다.
◆ 중간선거 겹쳐 내년 상반기 처리 유력…SEC·CFTC·거래소는 '선제 질주'
클래리티 법안은 지니어스 법안과 달리 의회 일정상 통과 시점이 상당 기간 순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원은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이해상충 조항과 예금 유출 문제에 대한 재협상 및 절차 투표 재시도를 모색할 수 있으나, 10월5일부터 11월3일 중간선거를 위한 지역구 활동에 들어가며 본회의 일정이 급감한다.
11월~12월 선거 후 레임덕 회기가 연내 처리의 사실상 마지막 창구이나, 내년 1월 3일 제119대 의회가 종료될 때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다음 의회에서 법안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레임덕 회기까지 포함하면 물리적으로 연내 처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쟁점 타협에 시간이 필요해 내년 상반기로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며 "당초 연내 통과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만큼 디지털자산 가격 및 관련 기업들의 단기 주가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입법 지연과 상관없이 미국 금융당국과 제도권 인프라 편입은 이미 궤도에 오른 상태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올해 3월 증권법 적용 공동 해석을 통해 디지털자산을 디지털 상품·컬렉터블·툴·스테이블코인·디지털 증권 등으로 분류하고 스테이킹·에어드롭·채굴의 증권법 적용 기준을 정립했다.
SEC는 최대 7500만 달러의 등록면제 및 세이프하버를 담은 '규정(Regulation Crypto Assets)'과 블록체인 기반 주식 이전을 반영한 명의개서대리인 규칙을 마련 중이다.
CFTC 역시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H)·USDC의 파생상품 담보 파일럿 시행, 24/7 거래·청산 리스크 관리 기준 제시, 가상자산 무기한 선물(Crypto Perpetuals) 취급 경로 확대를 단행했다.
전통 거래소인 나스닥은 상장 증권의 토큰화 거래 규칙(SR-NASDAQ-2025-072)을 승인받고 크라켄 모회사 페이워드에 1억 달러를 투자해 24시간 거래망을 구축 중이며, 뉴욕증권거래소(NYSE) 역시 증권 토큰화 거래 규칙(SR-NYSE-2026-17)을 발효시켰다.
이미 통과된 지니어스 법안도 내년 1월18일 시행을 확정 지은 상태다.
◆ 美 눈치 보는 韓 정책당국…국내 기업 '경쟁력 공백·해외 유출' 경계
이 연구원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으로 '국내 가상자산 제도화의 동반 지연'을 꼽았다.
미국은 지니어스 법안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선제 분리 입법하고 당국 가이드라인과 클래리티 법안을 병렬 추진하며 민간 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가상자산 2단계 법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은행 참여 방식, 거래소 및 수탁 사업자 규제 등을 단일 포괄 법안으로 다루고 있다. 국내 정책당국이 미국의 최종 입법을 확인한 후 제도를 확정하려 할 경우 국내 규제 공백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관련해 "미국에서도 은행 예금 유출과 스테이블코인 보상이 최대 쟁점으로 남아있는 만큼 국내 논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제도가 명확히 마련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사업에 착수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며 "국내 법제화가 지연되는 동안 경쟁력이 뒤처질 우려가 커, 규제가 먼저 정비된 해외 국가를 중심으로 파트너십을 맺거나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등 사업화 창구를 외부로 돌리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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