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유튜버 박위에게 "함께 싸우자"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난 2일 전장연은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글을 공유했다.
김 소장은 글에서 "나는 사실 그의 콘텐츠를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내가 가장 불편했던 것은 그의 콘텐츠가 비장애 중심 사회를 거의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을지도 모른다"며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면서도 비장애 중심적인 사회구조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오히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삶을 보며 안도하고 감동하는 서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세상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하는 나의 기질과는 잘 맞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같은 '장애'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지만, 때때로 그는 '휠체어를 탄 비장애 남성'처럼 느껴질 만큼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김 소장은 최근 박위가 KTX 하차 영상을 올린 후 비난을 받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던 사람도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는 언제든 장애를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며 "영상 공개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해서 장애를 조롱하거나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자체를 공격하고, 사건과 무관한 그의 파트너에게까지 혐오를 쏟아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위로 대신 손을 내밀고 싶다. 감동의 세계보다 저항의 세계가 훨씬 고단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세계 역시 꽤 살 만하다"라며 "이제 같이 싸우자고 말하고 싶다"고 글을 맺었다.
김 소장이 속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온 전장연의 핵심 회원 단체다.
한편, 박위는 지난 2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위라클'에 KTX 하차 과정에서 사회복무요원의 실수로 넘어지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해 논란을 불렀다. 현장에서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음에도,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미디어 영향력을 이용해 의무 복무 중인 청년을 공개적으로 저격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 논란으로 101만 명에 달했던 그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95만 명으로 줄었으며, 각종 강연과 토크 콘서트가 취소된 데 이어 서울시 홍보대사 자리에서도 자진 사임했다.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글
그는 비장애중심주의 사회를 몰랐다
최근 각종 언론과 SNS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다.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장애인 유튜버가 KTX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 하차하던 중, 리프트를 발로 밟고 있던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과 역사 직원들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자신의 콘텐츠에 공개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고, 결국 영상을 내렸다. 그러나 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영상 댓글에는 수많은 비난과 혐오 표현이 달렸고, 급기야 그의 파트너의 소셜미디어까지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고 한다.
나는 사실 그의 콘텐츠를 평소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영상에서 장애는 주류 사회의 질서를 흔드는 문제라기보다, 비장애인의 친절과 배려 속에서 극복하거나 개인적인 불편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를 이야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장애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보다는 장애를 가진 개인이 비장애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더 크게 부각됐다.
그는 외모와 사회적 자원, 대중적 인지도까지 상당한 자원을 가진 장애인 유튜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역시 자신의 콘텐츠가 장애인식 개선에 기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장애를 다룬다는 점을 제외하면 주류 유튜브 콘텐츠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비장애 여성 연예인과의 결혼이 알려졌을 때 언론이 떠들썩했던 모습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장애인의 연애와 결혼이 그 자체로 감동적인 사건처럼 소비되는 방식이 나는 불편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불편했던 것은 그의 콘텐츠가 비장애중심 사회를 거의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지만 비장애중심적인 사회구조를 질문하지 않고,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을 보며 안도하고 감동할 수 있는 서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 콘텐츠는 세상에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싶어 하는 나의 기질과 잘 맞지 않았다.
같은 ‘장애’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때때로 그는 내게 ‘휠체어를 탄 비장애남성’처럼 느껴질 만큼 나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던 사람도 비장애중심 사회에서는 언제든 장애를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그가 CCTV 영상을 자신의 콘텐츠에 공개한 점을 문제 삼는다. 영상 공개 과정에서 타인의 초상권이나 개인정보가 적절하게 보호되었는지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그것은 비판과 검토가 필요한 별도의 문제다.
그러나 그 문제와 그에게 쏟아진 장애혐오까지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영상 공개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장애를 조롱하거나,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자체를 공격하거나, 사건과 무관한 그의 파트너에게까지 혐오를 쏟아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번 사건에서 느낀 것은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그의 일상과 나의 일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가 경험해온 차별과 내가 경험해온 차별 역시 같을 수 없다. 그가 가진 사회적 자원과 관계망 속에서는 세상이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느낄 순간이 나보다 훨씬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넘어지는 영상을 공개했을 때도 그동안 자신의 콘텐츠에 달렸던 수많은 응원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자신을 넘어지게 한 상황을 함께 문제 삼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이 친절한 비장애인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장애인이 비장애사회에 항의하는 모습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에게는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이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묻고, 사회에 불편함을 제기하는 순간 갑자기 등을 돌리는 장면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장애인은 감동을 줄 때는 환영받지만, 권리를 요구할 때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장애중심주의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가 만들어온 콘텐츠의 세계에서 장애인은 사랑받을 수 있었다. 밝고 긍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며,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은 얼마든지 응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이 “왜 나를 이렇게 대했느냐”고 따져 묻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그가 이번에 마주한 것은 한 사회복무요원이나 몇몇 역무원만이 아니라, 장애인이 어느 선까지 말하고 행동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해온 비장애중심 사회의 규칙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장연 유튜브만 한 번 구독했어도 알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살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내게 장애는 몸에 덧붙어 있는 부분적인 특성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몸 그 자체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비장애중심 사회에서 나는 너무 쉽게 낯선 사람이 되었고, 때로는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세상이 순순히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저항하는 장애인운동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더라도 결국 어느 순간 사회적 혐오의 대상 앞에 서게 될 수 있다는 것. 사회적 자원이 많든 적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장애인이 비장애중심 사회의 규칙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혐오의 얼굴에는 놀라울 만큼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 그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다. 대신 아무 의미도 없는 혐오 댓글의 늪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경험을 개인의 불운이나 실수로만 남겨두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장애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감동적인 사람’의 이야기에서 조금만 벗어나, 장애인이 왜 이동하다 넘어져야 하는지, 왜 이동할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과 친절에 의존해야 하는지, 왜 장애인이 항의하면 곧바로 ‘민폐’와 ‘특혜’라는 말이 따라붙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도 같이 읽고, 이동권 캠페인도 같이 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시혜와 배려가 아니라 권리의 언어로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나는 그에게 위로 대신 손을 내밀고 싶다.
감동의 세계보다 저항의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고단하겠지만, 그래도 이 세계도 꽤 살 만하다고.
그리고 말하고 싶다.
이제 같이 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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