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6년 대한민국 4대 그룹의 시계가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회장은 상반기 인공지능과 반도체, 모빌리티, 에너지 등 미래 산업을 둘러싼 승부수를 잇달아 던지며 각자의 성장 방향을 선명히 했다. 마이데일리는 상반기 이들의 선택과 성과를 되짚고, 발표한 투자와 전략을 실제 생산·수주·실적으로 증명해야 할 하반기 승부처를 5회에 걸쳐 짚어본다.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올 하반기 ‘산업 인공지능(AI)’을 핵심 승부수로 띄웠다.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를 로봇과 AI 팩토리, 모빌리티, 냉각·전력 인프라로 확대해 실질적인 매출과 수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8년간 휴대전화와 태양광 등 경쟁력을 잃은 사업을 정리하고 AI·배터리·전장에 집중해 온 구 회장이 이제 사업 재편의 성과를 증명해야 할 시점에 들어섰다.
특히 구 회장은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던 AI와 제조 역량을 ‘원(One) LG’로 묶는 데 직접 나섰다.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LG이노텍, LG CNS, LG유플러스가 각각 보유한 로봇 부품과 배터리, 센서,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능력을 결집해 피지컬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첫 단추는 엔비디아와의 동맹이다. 구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손잡고 로봇·AI 팩토리·모빌리티 등 3대 분야의 공동 사업을 실행 단계로 옮겼다. AI 모델과 반도체를 공급받는 관계를 넘어 LG가 강점을 지닌 제품·부품·제조 현장에 엔비디아의 AI 플랫폼을 결합해 글로벌 표준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 젠슨 황과 ‘AI 동맹’ 실행…휴머노이드 내년 공개
LG와 엔비디아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서 전략적 사업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구 회장과 황 CEO가 만난 지 두 달여 만에 협력 분야와 실행 일정을 확정했다.
구 회장은 당시 협약식에서 “양사의 협업이 속도를 내면서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모빌리티 분야에서 함께할 과제가 명확해졌다”며 “산업을 선도하는 레퍼런스 구축을 통해 AI 확산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성과가 드러날 분야는 로봇이다. LG는 엔비디아의 휴머노이드 파운데이션 모델 ‘아이작 그루트’를 기반으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해 내년 1분기 공개할 예정이다.
휴머노이드에는 LG전자의 액추에이터와 LG이노텍의 센서,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계열사들이 따로 생산해 온 핵심 부품과 기술을 하나의 완성형 로봇에 결집하는 첫 원 LG 프로젝트인 셈이다.
LG전자가 개발한 휠 베이스 로봇 ‘LG 클로이드’는 연내 미국 테네시 공장 세탁기 생산라인에 투입해 실증에 들어간다. 먼저 LG의 제조 현장에서 작업 능력과 안전성을 검증한 뒤 다른 생산시설과 가정·상업 공간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로봇의 관절과 움직임을 담당하는 액추에이터 사업도 본격화한다. LG전자는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악시움’을 중심으로 부품 공급부터 완성형 로봇과 운영 솔루션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가전과 전장에서 축적한 모터·제어 기술을 로봇 사업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 냉각·배터리·전력 묶은 AI 팩토리…글로벌 수주 겨냥
AI 팩토리는 구 회장의 산업 AI 전략이 가장 선명하게 구현되는 분야다. LG는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설계 플랫폼에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LG CNS, LG유플러스 등의 기술을 결합한 AI 팩토리를 구축한다.
LG전자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을 담당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배터리를 제공하고 LG CNS와 LG유플러스는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을 맡는다. LS의 전력 설비까지 더해 냉각과 전력, 정보기술(IT)을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을 만든다.
LG는 내년 상반기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을 기반으로 냉각·전력·IT 기술을 검증할 AI 팩토리를 먼저 구축한다. 이어 2028년 상반기 충남에 80MW 규모의 AI 팩토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주요 설비를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패브 방식을 도입해 건설 기간도 기존보다 20% 이상 단축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건설 중인 LG유플러스 AI 데이터센터도 산업 AI 사업화의 전초기지다. 내년 준공 예정인 파주 센터는 200MW 규모로 GPU를 최대 12만장까지 수용할 수 있다. 공기냉각과 액체냉각을 함께 지원하며 LG전자의 냉각 기술과 LG에너지솔루션의 전력 안정화 기술, LG CNS의 구축 역량이 적용된다.
파주 AI 데이터센터 1동은 준공 전에 이미 계약이 끝났다. LG유플러스는 파주 센터를 기반으로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 사업에서 누적 5조원의 수주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 회장이 내세운 원 LG가 구호를 넘어 실제 수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첫 사업장이다.
◇ 인포테인먼트 넘어 자율주행…전장 사업 외연 확대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LG의 전장 사업을 인포테인먼트 중심에서 자율주행 영역으로 확장한다. LG와 엔비디아는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을 기반으로 차세대 AI 정의 차량(AIDV) 플랫폼을 공동 개발한다.
LG전자는 그동안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와 전기차 파워트레인, 램프 등을 중심으로 전장 사업을 키워왔다. 올 2분기 전장 사업은 매출 3조259억원, 영업이익 1912억원으로 모두 역대 2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분기 매출은 2개 분기 연속 3조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률도 6%를 웃돌았다.
하반기에는 높은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는 동시에 자율주행과 차량용 고성능 컴퓨팅으로 사업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엔비디아의 AI 플랫폼과 LG의 디스플레이·통신·부품 기술을 결합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상대로 한 수주 경쟁력을 강화한다.
전장 사업이 LG전자의 새로운 현금창출원으로 안착한 가운데 AI 모빌리티가 다음 성장 단계로 이어지면 구 회장이 추진한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 가전은 냉각·구독으로 진화…AI 인프라 핵심축 부상
LG전자는 주력인 가전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냉난방공조(HVAC)와 구독 등 고수익 사업을 확대한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발열이 급증하면서 대형 냉각 시스템이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떠올랐다.
LG전자는 냉각수분배장치와 칠러 등 AI 데이터센터용 냉각솔루션을 앞세워 글로벌 공급망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서버 공간을 차갑게 유지하는 공기 냉각부터 GPU 칩의 열을 직접 제거하는 액체냉각까지 갖춰 데이터센터 환경에 맞춘 종합 냉각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가전 구독과 webOS 플랫폼은 제품을 한 번 판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속해서 수익을 만드는 사업 모델로 육성한다. 올 2분기 LG전자 구독 사업 매출은 6600억원을 기록했으며, 해외 시장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히고 있다.
LG전자는 올 2분기 매출 23조8265억원, 영업이익 1조5791억원으로 역대 2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하반기에는 가전과 TV 수요 둔화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전장·공조·로봇 등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이 과제다.

◇ 배터리는 전기차 넘어 ESS…AI 전력 수요서 돌파구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수요 둔화를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확대로 돌파한다.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능력 일부를 ESS로 전환해 가동률을 높이고 AI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전력망에서 발생하는 신규 수요를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올해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의 ESS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6배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ESS가 차지하는 비중도 20% 후반까지 확대됐다. 최종 고객사가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인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포함해 3조원 이상의 신규 수주도 확보했다.
하반기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합작 2공장과 혼다 합작공장의 ESS 생산라인을 조기에 안정화하고 연말까지 북미에서 50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는 차세대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 양산도 추진한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은 올 2분기 미국 생산보조금을 제외하면 127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ESS 성장세와 신규 배터리 양산이 전기차 캐즘에 따른 수익성 저하를 얼마나 빠르게 상쇄하느냐가 하반기 실적을 좌우할 전망이다.
◇ ‘선택과 집중’ 8년…이제는 투자 성과 증명할 때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사업의 미래 경쟁력을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왔다. 휴대전화와 태양광, 액정표시장치(LCD) 등 수익성이 악화한 사업을 정리하고 AI와 배터리, 전장, 바이오 등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에 자원을 집중했다.
LG는 향후 5년간 국내에 1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60조원은 핵심 소재·부품·장비와 연구개발에 투입해 국내 생산 기반과 기술 경쟁력을 강화한다. 투자 방향도 범용 AI 경쟁보다 제조 현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 AI에 맞춰지고 있다.
구 회장의 하반기 승부수는 AI 모델의 성능 경쟁 자체가 아니다. LG가 보유한 가전·배터리·전장·통신·데이터센터 역량에 AI를 적용해 다른 기업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산업 솔루션을 만드는 데 있다.
관건은 속도와 수익성이다. 휴머노이드와 AI 팩토리는 아직 초기 시장이고 배터리와 석유화학은 업황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빅테크와 완성차·로봇 기업들도 피지컬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 하반기는 구 회장이 8년에 걸쳐 진행한 선택과 집중이 수확 단계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다. 엔비디아와의 동맹을 기반으로 원 LG가 로봇과 AI 팩토리, 모빌리티 분야에서 구체적인 수주와 매출을 만들어낸다면 산업 AI는 배터리와 전장을 잇는 LG의 차세대 성장축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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