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제안, 싸워서 이기기보다 기업 스스로 바꾸게…변화 필요한 '주주행동 전략'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국내외에서 주주제안을 통한 경영 참여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기업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주주총회 표 대결을 통해 요구를 관철하기보다 기업과 사전에 협의하고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하는 방식이 주주제안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일정 요건을 갖춘 주주제안의 경우 이사회가 이를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 

다만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과거 주총에서 찬성률 10% 미만으로 부결된 동일 안건을 3년 안에 다시 제안하는 경우 등에는 회사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또 주주 개인의 고충에 관한 사항이나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내용, 제안 이유가 명백히 거짓이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역시 배제 사유에 해당한다. 

반대로 정당한 사유 없이 주주제안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을 경우 이사·감사 등에게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 반복보다 방식…엇갈린 D사·S사

주주제안을 꾸준히 반복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D사 소액주주 연대는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11년 연속 주식배당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상정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올해 정기주총에서도 해당 안건의 찬성률은 의결권이 행사된 주식 기준 10.6%에 그쳤다.

주주들은 D사의 주주환원이 미흡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주식배당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회사 측은 주식배당보다 성장을 위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같은 요구가 10년 넘게 이어졌지만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간 동일한 내용의 주주제안이 반복됐지만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비효율적인 주주 관여활동이 됐다"고 평가했다.

반대로 주총장에서의 정면충돌 대신 사전 협상을 통해 실제 지배구조 변화를 끌어낸 사례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 A자산운용사는 지난 2022년 S사의 최대주주 개인회사와 S사 간 장기간 이어진 용역계약을 문제 삼았다. 이후 A자산운용이 추천한 감사가 선임됐고 S사는 같은 해 최대주주 개인회사와의 용역계약을 종료했다.

이듬해에는 양측이 정기주총 이전에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보상위원회 설치 △비핵심자산 매각 △IR 및 주주 커뮤니케이션 강화 △주주환원 확대 등을 포함한 12개 사항에 합의했다. 공개적인 주주 캠페인과 주주대표소송도 종료됐다.

특히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를 통해 이사 후보 추천과 내부거래, 경영진 보상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회성 요구를 넘어 지배구조 개선을 내부에 정착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 美 SEC 제도 변화…주주제안 판단은 기업 몫

미국에서도 주주제안을 둘러싼 기업의 역할과 책임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기업금융국은 지난 14일부터 기업이 특정 주주제안을 주총 자료에서 제외해도 되는지를 사전에 판단해주던 'No-Action' 요청에 더 이상 응답하지 않기로 했다. 해당 조치는 즉시 적용됐다.

기존에는 기업이 특정 주주제안을 제외할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SEC에 의견을 요청할 수 있었다. SEC 실무진은 이에 대해 비공식적인 견해를 제시해왔지만, 앞으로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주주제안 배제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업이 주주제안을 배제할 때 관련 근거를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고, 소송 위험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과거 SEC 판단 사례가 충분하지 않거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서는 주주 측과 제안 철회나 수정 등을 사전에 협의하는 방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상법과 시행령에 따라 주주제안 상정 의무와 배제 사유가 규정돼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기업이 참고해왔던 SEC의 사전 판단 관행까지 중단되면서 이사회와 경영진의 자체 판단과 책임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 "결과보다 구조…기업 스스로 바꾸게 해야"

전문가들은 주주제안의 목적을 처음부터 직접 요구하기보다 기업이 스스로 개선에 나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기업 입장에서는 배당 확대나 특정 거래 중단처럼 결과를 곧바로 요구하는 제안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나 공시 강화처럼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은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법을 마련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수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방식은 주주제안이 일회성 표결에 그치지 않고 기업 내부의 제도와 절차로 자리 잡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단기적인 요구 관철보다 지배구조와 주주권 보호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표이사의 보수 축소를 직접 요구하기보다 사외이사 중심의 보상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고, 특정 내부거래 중단을 요구하는 대신 내부거래위원회를 통해 거래를 심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소각 역시 직접 요구하기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등을 통해 구체적인 주주환원 목표를 제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엄 연구원은 "노골적으로 문제점을 지적·비판하거나 급격한 변화를 독촉하면 기업 측의 저항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우선은 완곡하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해당 주주제안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수용하게 하고, 비록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기업들이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익 보호 노력을 이어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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