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새로운 언어, ‘생태 안보’의 시대가 온다

시사위크
오늘날에 있어 안보에 경제 위기와 재난 등도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비군사적 요소까지 안보 개념에 포함되고 있다. 이에 과학기술 기반 연구를 기반, ‘생태 안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오늘날에 있어 안보에 경제 위기와 재난 등도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비군사적 요소까지 안보 개념에 포함되고 있다. 이에 과학기술 기반 연구를 기반, ‘생태 안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안보(安保)’. 편안히 보전함 또는 안전을 보장한다는 이 말은 오늘날에 있어 국가의 안전을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주로 군사적 위협과 테러, 범죄 등이 안보 위협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최근에는 경제 위기와 재난 등도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비군사적 요소까지 안보 개념에 포함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은 새로운 국가 안보의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감소, 새로운 감염병의 확산, 식량난 등 생태자원 고갈이 전지구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면서다. 실제로 우리는 2020년 글로벌 코로나19 팬데믹, 슈퍼 태풍, 이상기후 등을 거치며 이 환경 분야 안보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에 과학기술 기반 연구를 기반, ‘생태 안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도 커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에서 개최한 ‘생태안보미래포럼’에 모인 과학자들과 전문가들도 관련 전략 마련을 위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과 국립생태원은 26일 대전 KAIST 문지캠퍼스에서 공동으로 생태안보포럼을 개최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과 국립생태원은 26일 대전 KAIST 문지캠퍼스에서 공동으로 생태안보포럼을 개최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새로운 안보 과제로 떠오른 ‘생태 안보’ 

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과 국립생태원은 26일 대전 KAIST 문지캠퍼스에서 공동으로 생태안보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전통적 안보의 틀을 넘어 ‘생태(Ecology)’와 ‘안보(Security)’를 융합적으로 조망하고자 마련됐다.

포럼의 핵심 주제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진단이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IoT, 데이터사이언스 등 첨단과학기술을 활용, 선제적인 생태안보 보전 대응 전략과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다.

사실 생태 안보는 군사적 관점에서만 봤을 때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 군사 관점의 안보는 결국 ‘전쟁’과 ‘전투’를 목표로 한다. 수많은 민·군 사상자, 인프라 파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생물종과 생태계 보호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또한 군사작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태안보의 중요성과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사작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경피해는 막을 수 없더라도 평시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파악, 군사 활동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원칙과 대응 체계를 마련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최승운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장은 “이제 안보와 생태를 서로 분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생태적 가치를 국가안보의 한 요소로 인식해 국민 전체가 그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최승운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장은 “이제 안보와 생태를 서로 분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생태적 가치를 국가안보의 한 요소로 인식해 국민 전체가 그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실제로 호주의 국제 싱크탱크 ‘Institute for Economics & Peace(IEP)’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억2,600만명이 ‘매우 높은’ 생태적 위협 지역에 살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생태적 위협이 지속될 경우 지역 내 분쟁, 즉, 크고 작은 ‘전쟁’의 위협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 IEP 측 설명이다. 즉, 군사작전을 통해 현재의 전투에선 승리할지라도 향후 생태적 위협이 등장한다면 더 큰 전쟁이 다시 발생할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최승운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장은 “현재 한국의 멸종위기종 상당수는 군사보호지역과 DMZ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며 “인간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오히려 서식지 보전이 가능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공간이 만들어진 배경은 전장과 분단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전쟁이 발생한다면 군사적으로 중요한 이 지역들이 가장 먼저 파괴될 것이고 멸종위기종과 생물 다양성이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이제 안보와 생태를 서로 분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생태적 가치를 국가안보의 한 요소로 인식해 국민 전체가 그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익 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장은 “국경을 지키고 군사적 위협을 막아내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안보는 기후변화, 자원 고갈, 생태계 파괴와 같이 인류의 생존 기반 자체를 흔드는 비전통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익 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장은 “국경을 지키고 군사적 위협을 막아내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안보는 기후변화, 자원 고갈, 생태계 파괴와 같이 인류의 생존 기반 자체를 흔드는 비전통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김창익 KAIST 안보과학기술대학원장은 “국경을 지키고 군사적 위협을 막아내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안보는 기후변화, 자원 고갈, 생태계 파괴와 같이 인류의 생존 기반 자체를 흔드는 비전통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한국 안보의 중심 DMZ, 새로운 환경안보의 중심이 되다

한국의 생태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지역, 그리고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이날 포럼 발표를 진행한 서형수 국립생태원 보호지역팀 전임연구원은 ‘한반도 비무장지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DMZ(Demilitarized Zone)’로 잘 알려진 곳이다.

DMZ는 1953년 7월 27일 형성된 이후, 73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과 개발이 제한됐다. 때문에 수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생태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DMZ 내 서식하는 생물종은 6,168종이다. 이는 한반도 전체 생물종의 24%에 달한다. 특히 멸종위기종의 경우, 한국 내 종의 38%에 해당하는 102종이 DMZ에 살고 있다.

‘비무장’이라는 이름이지만 DMZ는 엄연히 군사지역이다. 우리나라와 북한은 1953년 휴전 협정을 맺으며 ‘군사분계선(MDL)’을 설정했다. 이 선을 기준, 양측 진형은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2km 물러났다. 이 4km의 완충구역이 바로 DMZ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언제든 군사작전이 벌어져 생태계가 파괴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날 포럼 발표를 진행한 서형수 국립생태원 보호지역팀 전임연구원은 ‘한반도 비무장지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DMZ(Demilitarized Zone)’로 잘 알려진 곳이다. / 사진=박설민 기자
이날 포럼 발표를 진행한 서형수 국립생태원 보호지역팀 전임연구원은 ‘한반도 비무장지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DMZ(Demilitarized Zone)’로 잘 알려진 곳이다. / 사진=박설민 기자

따라서 이곳의 생태계와 야생생물군의 중요성을 알려 위협요소 관리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DMZ 보호의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확한 DMZ 내 생물종 분포 현황, 습성, 개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형수 국립생태원 보호지역팀 전임연구원은 “DMZ 일원 생태계는 약 70년 이상 민간인의 출입과 개발이 제한돼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DMZ 내 생물종을 보호하는 것이 생태 안보 관점에서 어떤 이점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김영민 국립생태원 포유류복원팀 전임연구원은 여러 DMZ 서식 멸종위기종 중 ‘산양’ 사례로 ‘멸종위기종 연구와 생물다양성 안보의 가치’ 발표를 진행했다.

우제목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인 산양은 아주 오랜 세월 모습이 변하지 않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린다. 현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으로 개체수가 매우 적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세계적인 보호를 받는 종이다.

김영민 연구원은 “산양에게 가장 큰 위협은 폭설, 산불 등 자연적 원인들도 있지만 사실 인간 활동이 가장 크다”며 “서식지 파괴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의 충돌 등 문제가 있는데 주민·시민단체·지역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보전협의체를 만들고 교육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줄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멸종위기종의 보호를 안보의 언어로 바꿔본다면 이는 환경과 생태계가 무너지기 전 위협요소를 대응하고 미리 대비하는 일”이라며 “생물다양성을 지킨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아직 모르는 미래의 어떤 위기를 이겨낼 잠재력을 비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민석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원(박사과정)은  DMZ 생태 모니터링 부분에서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손민석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원(박사과정)은  DMZ 생태 모니터링 부분에서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AI기술, 생태 안보의 새로운 해법 제시

생태 안보의 유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DMZ 등 군사 지역은 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멸종위기종 보호, 환경 보호 연구에도 제한이 있다. 또한 개체수가 매우 적은 멸종위기종을 추적하거나 분류하는데도 많은 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AI’ 기술이 이 문제의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손민석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원(박사과정)은 ‘카메라 트랩’에서의 AI활용에 대한 주제로 발표했다. 특히 DMZ 생태 모니터링 부분에서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AI기반의 카메라 트랩으로 멸종위기종 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구글’이 개발한 ‘SpeciesNet’이 있다. 이는 카메라 트랩용 이미지 분석 AI다. 야생에 설치한 무인센서 카메라 사진에서 동물을 찾아내고 어떤 종인지 자동 분류한다.

구글에 따르면 SpeciesNet 현재 포유류·조류·파충류 등을 포함해 2,498개 범주를 분류 가능하다. 지난해 오픈소스로 공개된 이 기술은 현재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종 모니터링에 사용되고 있다. 동부 탄자니아에 위치한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주변국 내전으로 생태 안보가 불안정한 곳으로 꼽힌다.

손민석 연구원은 “AI기술을 사용하게 되면 산이나 DMZ 지역 등에서 대량의 데이터가 수집됐을 때 이 데이터를 굉장히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며 “물론 야생동물 이미지를 분류하면 여전히 전문가들의 직관을 넘을 순 없지만 보조도구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도 생태 안보의 핵심 요소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헌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원은 기후 허위정보가 진화하면서 대중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기후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도 생태 안보의 핵심 요소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헌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원은 기후 허위정보가 진화하면서 대중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사진=박설민 기자

아울러 ‘기후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도 생태 안보의 핵심 요소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헌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원은 기후 허위정보가 진화하면서 대중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단순한 ‘과학신뢰 부정론’의 관점이었던 기후 허위정보가 현재는 ‘해결책 회의론’, ‘영향 부정론’, ‘인과 부정론’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기후 허위정보의 확산을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김영헌 연구원은 자연어 언어모델(LLM)의 ‘기후정렬(Climate alignmet) 작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현재 인간의 정보 습득은 검색으로 정보를 찾던 방식에서 AI로 정보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AI가 어떻게 기후변화 문제에 답하느냐가 인류의 생각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창익 안보과학기술대학원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국가 주요 인프라의 타격 문제, 생물다양성 파괴 등 다양한 복합적인 위기 앞에서 과학기술과 생태학의 결합은 필수적”이라며 “데이터 기반의 생태계 예측, AI를 활용한 기후 대환 감시 그리고 생물 자원 보존을 위한 첨단 기술은 생태 안보를 실현할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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