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요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열면 ‘비즈니스석 반값에 타는 법’, ‘이코노미 값으로 비즈니스 앉는 꿀팁’ 같은 제목 영상이 심심찮게 뜬다.
항공권 가격 비교 앱을 소개하는 광고부터 마일리지 승급 노하우를 파는 유튜버까지, 저렴하게 상위 좌석을 노리라는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 잡았다. 항공사가 정가로 팔던 좌석을 왜 이렇게 싼값에 내주는지 궁금해질 법하다.
항공사가 손해를 감수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정가로는 팔리지 않았을 좌석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석이나 프리미엄 좌석은 예약이 마감되지 않은 채 그대로 이륙하는 경우가 잦고, 한번 이륙한 비행기의 빈 좌석은 다시 팔 수 없는 재고이기 때문에 항공사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채우는 쪽이 낫다.
경영학에서는 이 문제를 수익관리(Revenue Management)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같은 좌석이라도 언제, 누구에게, 어떤 가격에 파느냐에 따라 수익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항공기 좌석이나 호텔 객실처럼 특정 시점이 지나면 그대로 소멸해버리는 재고를 다루는 산업에서 정교하게 발전해 온 분야다.
국내 항공사도 이 문제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대형 항공사는 항공권을 구매한 이후에도 국제선 일부 노선에 한해 좌석 승급을 신청받는데, 출발 며칠 전까지 정해진 요금을 내고 신청하면 잔여 좌석이 있을 경우 배정해주는 방식이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같은 저비용항공사(LCC)도 동남아, 괌처럼 비행시간이 긴 장거리 노선에는 별도의 프리미엄 좌석을 운영하고 있고, 출발 당일 공항에서 잔여 좌석이 남으면 정해진 금액을 받고 그 자리에서 업그레이드 해준다.
이 방식의 공통점은 항공사가 가격을 먼저 정해두고 승객이 그 가격에 맞춰 신청한다는 점이다. 대형 항공사든 LCC든 마찬가지 구조다. 가격을 항공사가 고정하는 순간, 그 금액을 감당할 의향이 있는 승객과 없는 승객으로 시장이 딱 둘로 나뉘고, 승객마다 실제로 지불하고 싶은 금액이 얼마나 다른지는 반영할 방법이 없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둔 플러스그레이드(Plusgrade)는 이러한 형태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이 회사는 항공사가 가격을 미리 정하는 대신, 남는 프리미엄 좌석을 승객이 직접 써낸 금액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제공한다. 현재 전 세계 80개 이상의 항공사가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경매시스템 운영 방식은 이렇다. 이코노미 승객이 예약을 마치면 출발 며칠 전 이메일이나 앱으로 입찰 안내가 도착하고, 승객은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직접 써서 제출한다. 흥정처럼 여러 차례 금액을 올리는 절차 없이, 한 번의 입찰로 결과가 정해진다.
낙찰은 운이 아니라 승객이 써낸 금액 순서로 결정된다. 가장 높은 금액을 제출한 승객부터 순서대로 좌석이 배정되고, 여러 명이 같은 금액을 써냈을 경우에만 예약 클래스, 마일리지 등급, 입찰 제출 시각 등의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가린다. 낙찰되지 않으면 입찰금은 그대로 환불되고, 출발 24시간에서 48시간 전 사이에 결과를 통보받는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이 구조가 위험 부담 없는 추가 매출로 이어진다. 원래대로라면 비어서 이륙했을 좌석에서, 승객이 스스로 써낸 금액만큼 새로운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좌석을 늘리거나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고 얻는 매출이라, 항공권 판매보다 오히려 이익률이 높게 잡힌다.
가격을 깎아 좌석을 채우는 할인 판매와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가 체계를 흔들지 않은 채, 승객이 각자 매긴 가격으로 잉여 좌석만 정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지켜온 가격 정책과 매출 확대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족되는 셈이다.
환경 측면에서도 짚어볼 지점이 있다. 항공기 한 대가 이륙할 때 소비하는 연료는 좌석이 몇 자리 비어 있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같은 비행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몇 명이 나눠 부담 하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고, 빈 좌석에 승객을 채울수록 1인당 배출량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미 발생하기로 확정된 배출량을 승객 수로 나누는 접근은 항공 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논의에서 자원 효율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매출을 늘리려는 항공사의 이해관계와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사회적 요구가 같은 방향을 향하는 셈이다. 좌석을 놀리는 선택보다 채우는 선택이 두 목표 모두에 유리하다는 논리가 여기서 성립한다.
국내 항공사가 운영해 온 고정 가격 방식과 비교하면 차이가 도드라진다. 승객이 가격을 제시하고 항공사가 그 중에서 선택하는 구조는 국내 시장에서 아직 시도된 적이 없다. 대형 항공사와 LCC가 지금까지 택해온 방식이 항공사 중심의 가격 결정이라면, 플러스그레이드 방식은 승객 중심의 가격 결정에 가깝다.
물론 입찰형 업그레이드가 모든 노선에 같은 효과를 내는 건 아니다. 국내선처럼 비행시간이 짧은 구간에서는 좌석 등급 차이에 대한 승객의 지불 의향 자체가 크지 않다. 열 시간을 넘는 장거리 국제선이나 대형 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가 이미 프리미엄 좌석을 운영 중인 동남아, 괌 노선에서 먼저 시도해 볼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플러스그레이드 사례가 국내 항공업계에 주는 시사점은 새로운 좌석 등급을 만들라는 요구가 아니다. 이미 보유한 좌석을, 이미 존재하는 승객의 지불 의향에 맞춰 다르게 파는 방법을 더 세밀히 고민해보라는 제안에 가깝다.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비용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빈 채로 이륙하는 좌석 하나하나가 더 큰 손실일 수 있다.
가격을 고정하는 순간 그 가격에 맞지 않는 모든 수요는 사라져버린다. 항공사가 정한 숫자 하나가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불 의향을 걷어내는 셈이다. 승객에게 가격을 물어보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순간, 그간 버려지던 좌석은 다시 매출로 돌아온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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