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사법이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최종 합의하지 않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자 정치권은 탄핵과 임명동의안 부결로 맞섰다. 후보자의 판결과 자질을 검증하기도 전에 제청권과 임명권을 둘러싼 힘겨루기부터 시작됐다. 대법관 인선은 누가 적임자인지를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대통령과 대법원장 중 누가 주도권을 쥘지를 가르는 정치적 승부로 변했다.
대법원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제청하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강조했다.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공정한 판단 능력, 기본권 보장, 사회적 약자 보호, 도덕성과 다양성을 두루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모두 언급했다.
그러나 선정 기준을 제시하는 것과 판단 근거를 밝히는 것은 다르다. 두 후보자의 어떤 판결과 경력에서 이 같은 자질을 확인했는지 여러 형태의 다양성 가운데 무엇을 우선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추상적인 기준은 제시했지만 그 기준이 최종 판단으로 이어진 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더 큰 공백은 제청 지연에 대한 설명이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21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 네 명을 추천했다. 그러나 실제 제청까지는 209일이 걸렸고 노 전 대법관이 퇴임한 뒤 대법관 한 자리는 5개월 넘게 비어 있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국민 천거와 의견수렴 절차를 상세히 소개했지만 정작 절차가 장기간 멈춘 이유에는 한 줄도 할애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대통령과의 합의가 제청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째, 조 대법원장은 왜 추천위가 후보자를 추린 뒤 곧바로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았나. 둘째, 대통령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왜 협의가 교착된 사실과 향후 계획을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았나. 합의 없이도 제청할 수 있었다면 209일간의 지연을 설명해야 하고, 합의가 필요했다면 최종 합의 없이 제청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제청의 방식이다. 대통령과 협의가 이뤄진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를 한꺼번에 제청했다. 대통령과의 협의를 전면 부정한 것도 끝까지 협의를 이어간 것도 아니다. 협의 여부가 다른 두 후보를 나란히 올리면서 대법원은 정치적 해석을 자초했다. 한쪽에서는 대법원장의 정당한 제청권 행사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시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맞선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런 방식이라면 사법행정이 정치적 메시지로 읽히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법과 원칙, 사법부 독립을 강조해 온 대법원이 이 같은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조 대법원장은 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설명은 생략한 채 정치적 충돌이 가장 큰 방식을 택했는지 답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은 재판을 외부 권력으로부터 지키라는 원칙이지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에서 독립시키라는 특권이 아니다.
정치권의 대응도 다르지 않다. 탄핵과 임명동의안 부결을 앞세울수록 대법관 인선은 또 다른 정쟁의 수단이 된다. 대법원장은 제청 경위를 설명하지 않았고 정치권은 후보자 검증보다 탄핵과 부결부터 꺼냈다. 제청권과 임명권을 둘러싼 충돌 속에서 정작 국민은 왜 두 후보자가 대법관이 돼야 하는지 충분히 듣지 못했다. 사법을 정치로 끌어들인 것도 이를 정쟁으로 키운 것도 국민이 아니다. 이제 조 대법원장과 정치권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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