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한소희 기자] 역사학자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고(故) 안상호의 친일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심용환 소장은 11일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리고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한 하영의 증조부 논란을 언급했다.
그는 "갑자기 어떤 여배우의 증조부 문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며 "역사학계가 그의 증조부를 '친일 맞음'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까지 나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번 논쟁이 쉽게 결론 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봤다.
먼저 심 소장은 안상호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인사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종 독살설에 대해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당시의 풍문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안상호를 고종 독살과 직접 연결하는 시각에 선을 그었다.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등 친일 인사들이 다수 참여한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소장은 안상호가 당시 엘리트 계층이었고 친일 인사들이 참여했던 단체에 몸담았으며, 일제가 시정 홍보 과정에서 그의 집안을 활용한 정황 등을 고려하면 말년의 행적을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다만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 가입 이력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상호를 다룬 기존 연구 역시 그를 친일파라고 단정하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상호가 1872년생으로 일제강점기가 그의 생애 후반부에 해당하고, 관련 논문 역시 주로 개화기 시절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심 소장은 이번 논란이 확산되는 과정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고종 독살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안상호가 독살의 주체로까지 인식되고, 일부 학자의 견해가 마치 역사학계 전체의 판단인 것처럼 전달되면서 결국 하영까지 '친일파 후손'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는 일단 논란이 시작되면 갈등은 너무나 빨리 극단으로 치닫고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모두가 나 몰라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안상호에 대해서는 젊은 시절 의친왕의 총애를 받은 의학 엘리트였으며 일정 부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던 인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향후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확인된다면 그때 친일파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역사적 판단에는 명확한 근거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안상호의 행적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심 소장은 독립군을 치료했던 박서양이나 농촌 의료에 헌신했던 이영춘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안상호가 이들과 같은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라고 짚었다. 오히려 총독부 정책에 순응하고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개인적 성공을 이어갔다는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하영을 향해서는 가족사를 대하는 태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심 소장은 "여배우의 잘못이라면 그러한 가족사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친일 행위를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과 '후손'의 범위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 소장은 명확한 기준 없이 누군가를 쉽게 친일파로 규정할 경우 친일 부역의 실질적인 기준 자체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연좌제가 잘못된 것처럼 조상의 공과 과를 후손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문제 역시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이에 따른 권리와 책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한 사회적 기준이 필요하다며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과거사를 그 자체로 인식하고 배우고 존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하영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하영은 증조부가 한양에서 처음으로 양의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는 하영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그의 과거 행적이 재조명되면서 친일 논란으로 번졌다.
안상호는 일본 도쿄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한 뒤 국내에서 서양식 의료 활동을 펼쳤으며 왕실 진료에도 참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고종이 쓰러졌던 당시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에 참여한 이력도 전해진다.
이와 함께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성향의 인사들이 참여했던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했다는 기록 등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처음에는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친일파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소속사는 11일 추가 입장을 통해 기존 답변을 정정하고 사과했다. 소속사는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 성급히 답변하여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하영이 방송에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집안의 4대 의료가업 이력을 언급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배우 본인 역시 무거운 마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소속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역사적 사실과 한 인물의 이력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영은 2019년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로 데뷔한 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범형사2', '이두나!'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이후 '중증외상센터'에서 간호사 천장미 역을 맡아 주목받았으며,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에서 고은새 역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다음은 역사학자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글 전문.
갑자기 어떤 여배우의 증조부 문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더불어 역사학계가 그의 증조부가 '친일 맞음'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까지 떴다. 이 논쟁은 그 어떤 합리적인 중재를 통해 해결되지는 않을 듯하고 결국 시간이 해결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할 말은 해야겠다. 일단 첫째, 고종독살설은 '암살설'이고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풍문에 불과했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간주 된다.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그것이알고싶다 스핀 오프 프로그램에서는 법의학자까지 동원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제를 하고 방송을 만들기도 했다. 냉정히 말해 10년간 일본에 아무런 저항을 않던 고종을 갑자기 일본이 독살할 이유 자체가 없다. 따라서 당시 주치의라고 해서 그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잘못되었다.
둘째, 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친목회 등 친일파들이 많이 참여했던 단체에 소속된 것, 그리고 일본이 시정 홍보를 할 때 그의 집안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만년의 그가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친일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관련해서는 이정은 선생의 논문이 하나 있고 그 논문은 친일파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참고로 안상호는 1872년 생이고 일제강점기는 그의 만년의 생인데 논문은 개화기 때 그의 인생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엉뚱하게 커졌다. 고종독살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대중이 많기 때문에 이미 증조부는 독살의 주체가 되었고 어떤 학자의 발언 하나를 두고 언론이 ‘역사학계’라고 단정지음으로 이제 그녀는 친일파의 후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냥, 방송 나왔다가 의사 집안 자랑해서 괴씸죄로 걸린거 아니에요?"
아마 이 말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문제는 일단 논란이 시작되면 갈등은 너무나 빨리 극단으로 치닫고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모두가 나 몰라라 한다. 여배우의 증조부는 젊은 날 의친왕의 총애를 받았던 뛰어난 의학 엘리트였다. 또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좌시하지도 않았다고 보인다. 물론 그의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진다면 그는 친일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밝혀진 다음에나 할 이야기이다. 여하간 그는 박서양처럼 군의관이 되어 독립군을 치료한 적도 없고 구마모토 농장에서 헌신하며 전라도 농민들을 위한 의료행위를 펼친 이영춘 같은 노력도 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기사를 보면 그는 총독부의 정책에 충실했고 적절한 관계를 잘 유지하며 개인적인 성공을 구가했다.
여배우의 잘못이라면 그러한 가족사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리라. '밖에 알려진 것과는 달라요', '저는 제 힘으로 성공했어요', '물려 받은거 별거 없어요' 뭐 이런 식의 친일파 후손들의 역사 인식에서 멀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상의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자랑을 일삼은 우리의 일상과도 별다를 바 없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쉽게 누군가를 ‘친일파’라고 단정해버리며 과거사에 있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이 친일파가 될 것이고, 결국 친일 부역의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비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더구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역사학계 자체에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뉴라이트에 시달려 왔고 그들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너무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라는 학문과 진실 모두를 오롯이 이 싸움에 바치면서 스스로 선과 악의 단순한 판별자가 되어 버리면 그 결과는 역사학 자체의 위기를 몰고 올 것이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까지를 '후손'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보다 명쾌한 기준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연좌가 잘못되었듯 조상의 공이 자신의 공은 아닐 터. 어디까지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고 그로 인해 어떤 권리와 책무를 누려야 되는지에 대해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이대로가면 임진왜란 의병장 후손도 보훈의 대상이 되겠어요!"
정말 그렇다. 정확한 기준으로 가지고 과거사를 그 자체로 인식하고 배우고 존경하는 것, 그래서 보훈이 아닌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어야 한다. 역사학계의 역할 또한 그것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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