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음문석이 영화 ‘호프’로 존재감을 증명했다. 외형부터 말투, 표정까지 완전히 바꾼 그는 목수 양배를 단순한 악인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지난달 15일 개봉 후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음문석이 연기한 양배는 마을에 벌어진 거대한 사건의 시작점이 되는 목수로,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행동과 예측 불가능한 면모로 극의 긴장감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온 음문석은 이번 작품에서 외형은 물론 연기 방식까지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영화 공개 후 양배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며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음문석은 양배를 만들어간 과정부터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 캐릭터에 담고자 했던 고민, 그리고 배우로서의 마음가짐까지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호프’로 관객과 만난 소감은. 양배를 향한 반응도 뜨거운데.
“정말 감사한 일이고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황홀하다. 인터뷰도 24시간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나홍진 감독님의 작품을 했다는 것 자체에 만족감이 큰데 캐릭터도 너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 배우들은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잘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낀다. 요즘 무대인사를 다니는데 아직 저를 모르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제가 먼저 ‘우리 집에 있다니께요’라고 대사를 하면 그제야 ‘저 사람이 양배였어?’라며 알아봐 주신다. 그런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음문석이라는 이미지보다 ‘양배’라는 캐릭터로 완전히 각인됐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나홍진 감독과 첫 만남은 어땠나.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 티타임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시면서 긴장을 풀어주셨고, 저도 궁금한 게 많았다. 나홍진 감독님 작품은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지 않나. 제가 ‘곡성’은 전남을 배경으로 했는데 충청도 사투리 뉘앙스가 느껴졌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이 ‘어떻게 캐치했냐’면서 실제 그 지역에서 그렇게 많이 쓴다고 하셨다. 제가 충청도 출신이라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더니 오디션 직전에 ‘이번 대사를 충청도 사투리로 해볼 수 있겠냐’고 제안하셨다. 저는 원래 충청도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오디션 장면은 범석과 파출소에서 대화하는 신이었다. 양배는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짜증이 난 상황이다. 그런데 감독님이 피식 웃고 계시더라. 음문석 입장에서는 ‘내 대사가 재미있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양배의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하고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는데 조금 있다가 감독님이 ‘이번에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정말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뻤다. ‘나이스!’를 외쳤던 기억이 난다. 나홍진 감독님 작품에 합류하면서 배우로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양배는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양배라는 캐릭터 자체가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는, 굉장히 이상한 친구다. 파출소에 있는 분들이라면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알고 있을 텐데, 저수지 끝자락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다. 감독님도 저처럼 양배를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이 친구의 정체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편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만드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고, 그렇게 표현하고자 했다.”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갔나.
“감독님이 처음 양배를 설명해 주신 건 ‘착하지도, 나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문석 씨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들도 양배보다 하수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잡혔지만 양배는 잡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디렉션이 정말 어려웠다. 오디션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였고, 빨리 캐릭터를 찾아야 했다. 평소처럼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료도 찾아보고 정신의학적인 부분도 공부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는 누나의 아이가 쪽가위를 입에 넣으려는 걸 봤다. 누나는 아무렇지 않게 가위를 빼앗았고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또 다른 행동을 했다. 그 모습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아이에게는 아무 의도가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보는 사람에게는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배도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데 그 행동들이 계속 문제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주는 캐릭터로 접근했다.”
-감정선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작가의 의도가 있고 그 안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 완전히 아이처럼만 가면 그 의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 대사를 하면서도 아이 같은 낯선 느낌을 주고 싶었다. 최대한 계산하지 않으려고 했다. 상황만 놓고 보면 굉장히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다. 그런데 양배는 그걸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봤다. 그저 평범한 하루고 자신이 자랑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경찰들을 집으로 데려간 것도 초대한 것이었다. ‘내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자랑은커녕 자신이 아끼던 것들을 다 빼앗기고, 집도 엉망이 된다. 양배의 입장에서는 정말 서운한 상황이었던 거다.”
-나홍진 감독의 연기 디렉션이 다르게 다가온 지점도 있었나.
“제 캐릭터는 특히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를 주신 건 아니었다. 틀은 아주 명확하게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셨다. 리허설을 하면서 제가 작은 부분들을 채워 넣으면 감독님이 그걸 가만히 보시다가 ‘양배라면 그럴 수 있다. 그것까지 해보자’고 말씀해 주셨다. 무작정 자유롭게 하라는 방식은 아니었다. 이 장면에서 어떤 분위기와 모습이 있어야 하는지 큰 틀을 정확하게 제시해 주셨고, 그 안에서 연기하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감정이나 행동들을 잘 포착해 주셨다. ‘이대로 해달라’거나 ‘편하게 해달라’는 디렉션이 아니라, 명확한 틀 안에서 양배라는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점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있다면.
“마지막에 ‘고양이가 튀어나와서’라고 말하는 신이었다. 양배는 어떤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행동들이 계속 문제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서스펜스를 주는 인물로 접근했다. 중요한 건 제가 캐릭터를 단정 짓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양배는 관객들에게 들킬 것 같았다. 고양이를 실제로 봤는지조차 양배 자신도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사 톤도 일부러 애매하게 했다. 어떤 확신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제가 봐도 미묘할 정도의 결을 만들려고 했다. 관객들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다. 양배가 끝까지 잡히지 않으려면 저부터 확신을 가지면 안 됐다. 도덕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순간 캐릭터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제가 몰라야 관객들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그 지점에 호응해주시는 걸 보면서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도 인상적이었다. 구축 과정은.
“가짜 치아를 착용하고 연기하다 보니 몇 마디만 해도 윗입술이 자꾸 달라붙어 올라갔는데, 촬영을 멈추고 다시 갈 수는 없지 않나. 감독님이 그걸 보시더니 ‘윗잇몸을 한번 훑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디테일까지 다 담아주셨고 그런 작은 부분들을 보시면서 양배라는 캐릭터를 더 만들어주셨다. 의상이나 외적인 부분들도 감독님이 디자인한 요소였다. 분장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특수분장을 오래 한 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가짜 치아를 착용하고 다크서클과 기미, 검버섯 같은 것만 조금 더했다. 분장 시간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거의 제 얼굴이다.(웃음)”
-양배를 두고 외계인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양배는 진짜 외계인인가.
“외계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동남아 배우인데 한국말을 잘한다는 반응도 있더라.(웃음) 저는 그런 다양한 해석이 너무 좋다. 여러 시선에서 캐릭터를 바라봐 주신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니까 재미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양배가 외계인인 것은) 잘 모르겠다. 양배도 그건 잘 모른다.(웃음)”
-데뷔 이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돌아보면 어떤가.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개그만 빼고 리포터부터 가수·댄서·예능까지 다 해봤다. 늘 마음속에 있었던 건 이 일을 떠나지만 말자는 것이었다. 춤을 추다 가수가 되고, 예능과 리포터를 거쳐 연기를 배우고, 연출도 하고 단편영화와 상업영화, 드라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다 연결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버텨온 제 자신에게 고맙다. 큰누나가 ‘요즘 잘돼서 좋지?’라고 물어봤는데, 저는 내일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연기가 너무 재미있고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 물론 언젠가는 갑자기 커피숍 사장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일에 충실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의 마음가짐도 궁금하다.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스스로 신인이라고 생각한다. 저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분들이 더 많고, 우선은 전 국민의 70~80% 정도가 알아볼 만큼 연기에 더 집중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건 시간을 쪼개서 언제든 할 수 있다. 또 어떤 분야에 꽂히면 그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건 항상 다음 스텝을 밟는 것이다. 일이 잘 안될 때도, 잘될 때도 늘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지금으로 끝났고, 이제는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하면서 멘털을 다잡으려고 한다.”
-아직 ‘호프’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홍진 감독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 사운드였다. 극장에서 봤을 때 스케일에 걸맞은 사운드를 느낄 수 있도록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그 부분은 TV나 다른 환경에서는 100% 전달되기 어려운 것 같아 아쉽다. 꼭 극장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영화도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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