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 생존기 上] 선풍기 한 대로 버티는 33도… 폭염이 삼킨 쪽방촌

시사위크
4일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김태진(50) 씨의 방 안 온도는  33도를 넘어섰다. / 사진=이민지 기자
4일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김태진(50) 씨의 방 안 온도는 33도를 넘어섰다. / 사진=이민지 기자

시사위크|동자동=이민지 기자  서울 전역에 올 여름 첫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4일 오전 11시. 체감온도가 연일 치솟는 가운데 동자동 쪽방촌에서 20년째 살아온 김태진(50) 씨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무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이날 김씨가 머무는 방의 실내 온도는 33도를 가리켰다.

1평(3.3㎡) 남짓한 방 안에는 외부보다 높은 습도로 쿰쿰한 냄새가 가득했다. 취재진은 쪽방촌 주민들이 겪는 폭염의 현실을 직접 체감하기 위해 이곳에서 약 3시간을 머물렀다. 실내 온도는 줄곧 30도를 웃돌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등줄기를 타고 흐른 땀이 이내 온몸을 적셨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폐쇄적인 구조 탓에 방 안에 갇힌 뜨거운 공기는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았다. 하나뿐인 창문마저 바로 앞 골목 담벼락에 가로막혀 있어 외부 공기가 드나들 틈은 사실상 없었다. 방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공기라곤 선풍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체감되는 더위와 답답함은 바깥보다 한층 심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인 김태진 (50)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엔 공용 샤워 공간이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사진=이민지 기자
동자동 쪽방촌 주민인 김태진(50) 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엔 공용 샤워 공간이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사진=이민지 기자
공용 샤워 공간 내부는 성인 한 명이 몸을 돌리기도 버거울 만큼 비좁아 보였다.  / 사진=이민지 기자
공용 샤워 공간 내부는 성인 한 명이 몸을 돌리기도 버거울 만큼 비좁아 보였다.  / 사진=이민지 기자

찬물로 더위를 식히는 일마저 쉽지 않아 보였다. 천막 하나로 간신히 가려진 샤워 공간은 성인 한 명이 몸을 돌리기도 버거울 만큼 비좁아 보였다. 허리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보낸다는 김씨는 “이 방에서 여름을 보내는 건 죽음이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 안에 머무는 일은 점차 정신력 싸움이 돼 갔다. 셔츠와 바지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었고, 계속해서 땀을 흘린 탓인지 이내 어지럼증까지 밀려왔다.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약 3시간 뒤 방을 나서자 한낮의 뜨거운 바깥 공기가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4일 바깥에서 잠을 청하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4일, 바깥에서 잠을 청하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 ‘공용 에어컨’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

김태진 씨처럼 ‘공용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건물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더위를 피해 거리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옷을 입는 것조차 버거운 듯 상의를 벗은 채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서울시는 올해 폭염에 대비해 시내 쪽방촌 건물에 공용 에어컨 설치를 지원했다. / 사진=이민지 기자
서울시는 올해 폭염에 대비해 시내 쪽방촌 건물에 공용 에어컨 설치를 지원했다. / 사진=이민지 기자

서울시는 올해 폭염에 대비해 시내 쪽방촌 건물에 공용 에어컨 설치를 지원했다. 방이 나란히 이어지는 복도에 에어컨을 설치해 방문을 열어두면 냉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결과, 공용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은 일부에 불과했다. 같은 건물이라도 1층 복도에만 에어컨이 설치돼 2~3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냉방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상당수 주민들은 여전히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거나 건물 밖으로 나와 더위를 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자활지원팀 이신옥 팀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에서 동자동 쪽방촌에 설치한 공용 에어컨은 53대”라며 “쪽방은 건물주가 있는 사유재산인 만큼,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은 경우엔 에어컨 설치가 어렵다. 또 동의를 받았더라도 건물 자체가 노후화 돼 설치가 불가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들이 너무 촘촘히 있어서 실외기를 놓을 공간이 없는 곳도 있었다”며 “건물 자체 전압이 약해서 다 차단돼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설치를 못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 무더위쉼터 있는데… 쪽방촌 주민들이 찾지 않는 이유

서울시는 쪽방촌 주민들의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로당과 복지관 등을 무더위쉼터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 많은 쪽방촌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들이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무더위쉼터를 이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4일 무더위쉼터로 운영되고 있는 남영동 동자경로당에 기자가  방문했을 때 쪽방촌 주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사진=이민지 기자
4일 무더위쉼터로 운영되고 있는 남영동 동자경로당에 기자가  방문했을 때 쪽방촌 주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사진=이민지 기자

기자는 쪽방촌에서 약 15분을 걸어 남영동 동자경로당을 찾았다. 경로당 내부는 에어컨이 정상 가동돼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서 쪽방촌 주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로당에는 지역 어르신들만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경로당을 이용 중이던 한 어르신은 취재진에게 “쪽방촌 사람들은 여기 잘 안 온다”고 말했다.

무더위쉼터를 찾지 않는 이유는 거리만이 아니었다. 타인과 마주해야 하는 환경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권모 씨(48)는 “모르는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게 싫다”며 “무더위쉼터가 아무리 에어컨을 빵빵하다고 해도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하늘 아래 똑같은 폭염을 맞이했지만, 모두가 같은 여름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폭염은 생존을 건 치열한 사투였다. 더위가 집어삼킨 1평 남짓한 삶의 공간은 공포로 변했고, 이들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공용 에어컨과 무더위쉼터 등 다양한 폭염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가장 뜨거운 방 안의 온도는 달라지지 못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인공지능 시대가 될 때까지 쪽방촌은 변한 적이 없다”는 권씨의 한마디는 여름만 되면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에도 여전히 열악한 쪽방촌의 현실을 곱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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