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저평가’에 사재로 답한 최태원…50억 문턱까지 매수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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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시스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에 대한 믿음을 개인 자금으로 증명했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기준인 50억원에 근접한 자금을 투입하며 인공지능(AI) 메모리 경쟁력과 중장기 성장성에 대한 자신감을 시장에 직접 내보였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전날 SK하이닉스 보통주 3620주를 장내에서 매수했다. 당일 종가인 132만2000원을 적용하면 총매입 규모는 47억8564만원이다. 최 회장이 개인 명의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보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최대주주인 SK스퀘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이번 매수를 계기로 직접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서 경영 성과와 주주가치에 대한 책임도 개인 자산으로 나눠 지게 됐다.

특히 매입액이 50억원을 바로 밑돈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현행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따르면 상장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거래 개시일을 기준으로 과거 6개월과 향후 거래기간의 거래를 합산해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을 거래하려면 매매 예정일 30일 전까지 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최 회장의 매입액은 기준보다 2억1436만원 적어 사전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거래가 사전공시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사실상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이유다. 사전공시 대상이 됐다면 최 회장은 수량과 금액, 거래기간 등을 최소 30일 전에 알려야 했다.

최 회장이 절차를 준수하면서도 책임경영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매입 규모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계획이 한 달 전부터 공개될 경우 총수의 매수를 둘러싼 기대와 추측이 확산하며 단기적인 주가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도 고려했다는 해석이다.

무엇보다 이번 매수는 단순한 지분 확대보다 ‘신호’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최 회장이 취득한 3620주는 SK하이닉스의 전체 발행주식과 비교하면 지배력에 의미 있는 변화를 줄 만한 규모는 아니다. 다만 그룹 총수가 개인 자금을 투입해 현재 주가가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보다 낮다고 판단했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

실제 SK하이닉스의 기초체력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올리며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영업이익률은 76%에 달했고 현금성 자산도 88조원으로 늘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서버용 D램,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판매 확대가 실적을 견인했다.

최 회장의 이번 매수는 이 같은 실적이 일시적인 메모리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HBM4와 차세대 AI 메모리를 중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이 단순히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늘린 것이 아니라 AI 사업의 중심에 있는 SK하이닉스를 직접 선택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개인 주식 매입은 총수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를 맞추는 효과도 낸다. 주가가 오르면 최 회장과 일반 주주가 함께 이익을 보고,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최 회장 역시 손실을 부담한다. 경영 성과와 개인 자산의 방향이 일치하는 만큼 책임경영 메시지가 구두 발언보다 강하게 전달될 수 있다.

과거에도 총수의 직접 주식 매입은 기업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코로나19로 자동차주가 급락했던 2020년 3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식을 817억원어치 매입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주가가 본질가치보다 과도하게 낮아졌다는 판단과 책임경영 의지를 매수 배경으로 제시했다. 특히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주식을 직접 취득한 것도 당시가 처음이었다.

이처럼 총수나 최고경영자의 자사 주식 매입은 통상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내부자가 향후 실적과 기업가치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정보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내부자거래 연구에서도 내부자의 매수 공시가 매도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긍정적 정보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돼 왔다.

이번 매수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지만 시장 기대치를 밑돈 데다 구체적인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29일 주가가 9% 이상 하락했다. 최 회장의 매입에는 기업의 실적과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위축된 투자심리를 진정시키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처음 직접 취득했다는 점에서 일회성 주가 방어보다 중장기적인 동행 의지를 강조하는 효과도 있다. 향후 추가 매수 여부와 보유 기간에 따라 이번 거래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다만 총수의 개인 매수를 회사 차원의 자사주 매입·소각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최 회장이 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해도 전체 발행주식 수가 줄지 않기 때문에 주당순이익이나 주당 가치가 직접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48억원이라는 금액도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실제 수급을 장기간 바꿀 정도는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매수의 진정한 가치는 단기적인 주가 상승보다 최 회장이 SK하이닉스의 성장 가능성을 개인 자산으로 뒷받침했다는 데 있다"며 "SK하이닉스가 HBM4 이후에도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구체적인 주주환원 정책까지 내놓는다면 이번 매수는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실적과 환원정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총수의 개인 매입만으로 투자자의 우려를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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