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삼성전자가 프랑스 인공지능(AI) 기업 미스트랄 AI에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 차원이 아니다. AI 모델을 구동하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의 ‘두뇌’부터 메모리·파운드리, 스마트폰과 가전까지 연결되는 생태계를 아우르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스트랄이 추진하는 신규 투자 라운드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투자 규모는 수억유로로 거론되며 최대 10억유로(약 1조6900억원)에 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스트랄은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기업가치 약 200억유로(약 33조8000억원)를 인정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양사는 투자 여부나 규모를 공식적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삼성과 미스트랄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삼성벤처투자는 지난 2024년 6월 미스트랄이 마무리한 6억유로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삼성SDS도 같은해 2월 미스트랄 주식 34만6000주를 약 78억원에 취득해 지분 0.12%를 확보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투자 주체로 나설 경우 삼성 계열사의 초기 지분 투자가 최대 10억유로 규모의 전략적 투자로 확대되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미스트랄을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스트랄은 2023년 4월 구글 딥마인드와 메타 출신 연구자인 아르튀르 멘슈, 기욤 랑플, 티모테 라크루아가 설립한 곳이다. 미국의 오픈AI와 앤스로픽, 구글 등에 맞설 수 있는 유럽의 대표 AI 기업으로 꼽힌다. 설립 당시부터 개방성과 투명성, 비용 효율성을 앞세워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왔다.
미스트랄의 강점은 기업이 목적에 맞게 모델을 조정하고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체 서버인 온프레미스부터 사설 클라우드와 퍼블릭 클라우드, 엣지 기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AI 모델을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업 데이터를 외부로 보내기 어려운 제조와 금융, 공공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은 구조다.
특히 삼성전자가 투자 카드를 꺼낸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는 AI 반도체 수요 선점이 꼽힌다. 생성형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뿐 아니라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용 D램,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대규모 반도체가 필요하다. AI 모델 기업의 이용자와 서비스가 늘수록 필요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물량도 함께 증가한다.
삼성전자는 HBM과 D램·낸드플래시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까지 보유한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회사는 메모리와 로직, 파운드리를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기반으로 AI 모델 학습부터 추론까지 전체 과정에 필요한 반도체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미스트랄과의 관계를 강화하면 향후 AI 인프라 투자 과정에서 삼성 반도체를 공급하거나 모델에 최적화한 제품을 공동 개발할 접점도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 기업과 AI 모델 개발사가 지분 관계로 묶이는 흐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은 지난해 미스트랄의 17억유로 투자 유치를 주도하며 13억유로를 투입했다. ASML은 약 11%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섰으며, 양사는 AI를 반도체 장비와 연구개발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AI 모델 개발사와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를 단순 공급하는 관계를 넘어 장기 고객과 공동 기술개발 파트너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스트랄은 안정적인 반도체와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고, 삼성전자는 AI 서비스가 성장할수록 늘어나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수요를 선점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가전, 로봇 등 완제품 사업과의 접점도 크다. 미스트랄은 상대적으로 적은 컴퓨팅 자원으로 구동할 수 있는 고효율 모델과 기업 맞춤형 AI에 강점을 갖고 있다. 초기 모델인 ‘미스트랄 7B’도 더 큰 규모의 기존 모델보다 추론 비용과 처리 효율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됐다.
이 같은 기술은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 기기 안에서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와 연결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비롯해 TV와 가전, PC, 로봇까지 AI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AI 사업을 데이터센터용 ‘AI 팩토리’, 기기 내부에서 구동하는 ‘로컬 AI’, 로봇 등 현실 공간과 결합하는 ‘피지컬 AI’로 구분해 관련 반도체와 기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투자가 실제 기술 협력으로 이어질 경우 미스트랄 모델을 삼성전자 제품에 최적화하거나 삼성 반도체에서 모델을 효율적으로 구동하는 공동 작업도 가능하다. 갤럭시 AI와 비스포크 AI 가전, 최근 대표이사 직속 조직을 신설한 로봇 사업까지 적용 후보군이 넓다. 특정 미국 기업의 모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제품과 지역에 따라 여러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다.
유럽 시장 공략 측면에서도 미스트랄의 전략적 가치가 높다. 유럽 각국은 자국의 데이터와 기술 통제권을 확보하는 ‘소버린 AI’를 강화하고 있다. 미스트랄은 데이터를 현지에 보관하고 기업이 직접 모델 운영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미국 빅테크의 대안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미스트랄의 주요 주주로 참여하면 유럽 정부와 기업의 AI 인프라 사업에 진입할 연결고리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미스트랄도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스마트폰·가전 판매망을 활용해 유럽을 넘어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투자 자체의 재무적 가치도 무시하기 어렵다. 미스트랄은 지난해 ASML이 주도한 투자에서 약 117억유로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이번에는 200억유로 수준의 몸값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투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한 삼성으로서는 미스트랄의 성장에 따른 투자 수익과 전략적 협력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다만 200억유로에 달하는 기업가치가 실제 사업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글로벌 AI 시장은 오픈AI와 구글, 앤스로픽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까지 가세해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서비스 이용자와 매출을 빠르게 늘리지 못하면 수익성 확보가 늦어질 수 있다.
지분 확보 이후 구체적인 협업으로 연결 여부가 이번 투자 성패로 이어질 전망이다. 미스트랄이 삼성전자의 HBM과 파운드리 고객으로 자리 잡고, 삼성의 스마트폰·가전·로봇에 AI 모델을 공급한다면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완제품을 넘어 AI 플랫폼까지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갖추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미스트랄 투자 검토는 AI 시대에 반도체만 잘 만들어서는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보여준다"며 "투자가 성사된다면 삼성전자가 AI의 ‘몸’을 만드는 기업에서 ‘두뇌’ 개발에도 참여하는 기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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