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봉합된 배재고 사태… 학생보다 못했던 어른들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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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조롱성 응원 구호’ 논란이 양교 학생들의 사과와 용서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사진은 6일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주장(왼쪽)이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제일고 야구부 주장에게 사과문을 전달한 후 악수를 하는 모습. / 뉴시스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조롱성 응원 구호’ 논란이 양교 학생들의 사과와 용서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사진은 6일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주장(왼쪽)이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제일고 야구부 주장에게 사과문을 전달한 후 악수를 하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김윤혁 기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조롱성 응원 구호’ 논란이 양교 학생들의 사과와 용서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배재고 학생들과 이를 포용한 광주제일고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화해의 과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갈등을 매듭짓는 동안 정치권은 이번 사안을 정쟁의 소재로 끌어들이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눈물로 용서 구한 배재고… 포용 품격 보여준 광주제일고

배재고 야구부 일동은 6일 광주제일고를 찾아 조롱성 구호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지난달 29일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 만이다. 당시 배재고 학생들의 조롱성 응원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자, 학교 측은 즉시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과 방문 일정을 추진했다. 다만 광주제일고 측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정을 한차례 미뤘고, 이후 조율을 거쳐 만남이 성사됐다.

이날 강당에 마주 앉은 양교 야구부 학생들 앞에서 배재고 야구부 주장 A군은 대표로 사과문을 낭독했다. 그는 “저희가 광주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셨을 텐데 귀한 시간 마련해 주신 광주일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이어 “모든 선수가 진심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야구를 떠나서 인성이나 태도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다시 한번 배우게 됐다”며 “항상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배재고 교장과 야구부 감독의 사과가 이어진 뒤 마이크를 잡은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움츠러 있는 배재고 학생들을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고개 들고 어깨 펴라. 마음으로 사과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더 잘 살아가는 것”이라며 “다음에 광주제일고 학생을 만나면 멋진 승부를 펼쳐주라”고 격려했다. 사과를 마친 양교 학생들은 악수를 나눈 뒤 함께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배재고에 쏟아진 화환은 진영 대결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당시 교문 앞에는 “자랑스럽다 배재고 힘내자”“스포츠 오염시키는 5·18거부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화환부터 “배재고 폐교를 애도합니다” “극우 세뇌개를 박멸하자” 등 과격한 표현의 화환들이 줄지어 놓였다. / 뉴시스
배재고에 쏟아진 화환은 진영 대결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당시 교문 앞에는 “자랑스럽다 배재고 힘내자”“스포츠 오염시키는 5·18거부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화환부터 “배재고 폐교를 애도합니다” “극우 세뇌개를 박멸하자” 등 과격한 표현의 화환들이 줄지어 놓였다. / 뉴시스

이처럼 배재고 학생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광주제일고 학생들은 그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였다. 잘못은 분명하게 꾸짖되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교육적 화해와 포용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는 동안, 정작 사건의 당사자도 아닌 어른들은 오히려 이를 진영 대결의 소재로 끌어들이며 갈등을 키웠다.

배재고에 쏟아진 화환은 진영 대결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당시 교문 앞에는 ‘자랑스럽다 배재고 힘내자’ ‘스포츠 오염시키는 5·18거부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화환부터 ‘배재고 폐교를 애도합니다’ ‘극우 세뇌개를 박멸하자’ 등 과격한 표현의 화환들이 줄지어 놓였다. 어린 학생들의 일탈이 순식간에 극단적 정쟁으로 변질된 순간이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스타벅스가 5·18과 무슨 관계가 있나. 배재고 학생들과 함께 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화환을 보내 논란을 사기도 했다.

이 같은 공방의 피해는 애꿎은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배재고는 지난 3일부터 학생들에게 당분간 교복 대신 사복을 착용하고 등·하교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에게 피해가 번지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4일에는 광주제일고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른들의 정쟁과 극단적 대립이 죄 없는 학생들의 일상까지 흔들어 놓은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러한 갈등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영 대결을 확대·재생산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이병태 부위원장은 지난 3일 SNS에 “5·18이 성역이 됐다”고 적었다가 파문이 일자 결국 6일 자진 사퇴했다. 그는 사퇴하면서도 SNS에 “우리 모두에게 성역은 있지만, 자신과 일부 집단의 성역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리며 논란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이규연 교장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배재고 야구부에 내려진 ‘출전정지 6개월’ 징계의 재고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공식 요청했다. 사건 당사자인 양교 학생들이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로 화해한 만큼, 배재고 학생들에게도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아울러 서울시교육청도 징계에 대한 재심 신청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 신청 기한은 8일까지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에서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학생들이었다. 반면 정치권은 사건을 의미 없는 진영 대결로 변질시켰고, 그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 결국 이번 ‘배재고 사태’는 학생들의 일탈 자체보다, 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올바른 태도와 사회적 책임을 되묻게 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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