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그룹이 영남권에 향후 10년간 42조원을 투자한다. 숫자보다 눈여겨볼 지점은 영남권의 역할 변화다. 현대차그룹은 울산·대구·창원 등 기존 제조 거점을 전기차와 수소, 전동화 핵심 부품, 인공지능 기반 제조 혁신, 에너지 인프라가 맞물리는 첨단산업 벨트로 재편한다.
현대차그룹은 3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정부 부처와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 지자체와 영남권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이하 MOU)를 체결했다.
이번 투자는 자율주행 레벨4 이상 AI 기반 자율주행차(AI Defined Vehicle, AI DV) 전환을 울산 EV 공장과 AI 제조 허브에 연결하고, 배터리·모터·열관리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미래 핵심 부품 클러스터를 울산·대구·창원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제조 특화 AI(Manufacturing AI, 이하 제조 AI), 미래 항공·우주, 에너지 인프라 투자도 함께 진행된다.

영남권은 현대차그룹 제조 체계의 출발점이자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핵심 기반이었다. 울산공장은 세계 최대 단일 완성차 공장으로 성장했고, 주변 부품 생태계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산 경쟁력을 뒷받침해 왔다. 이제 자동차 산업의 경쟁 축은 내연기관과 기계식 부품에서 전동화, 소프트웨어, 데이터, AI 기반 제어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42조원 투자는 이 변화에 맞춰 영남권 제조벨트의 기능을 다시 짜는 계획이다. 과거 영남권이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완성차 경쟁력을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차량과 부품, 제조 데이터, 에너지 공급망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생산 거점의 강점을 전동화와 AI 전환에 필요한 산업 기반으로 연결한다.
이날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영남권을 AI 기반 첨단 자율주행 모빌리티와 핵심 부품 제조, 신사업 투자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모태인 영남권을 미래 첨단산업 거점으로 키우고,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설명이다.
출발점은 울산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4분기 가동 예정인 울산 EV 공장을 중심으로 자동화와 통합 생산체계를 갖춘 AI 제조 허브를 구축한다. 울산 EV 공장은 현대차그룹의 AI DV 전환을 뒷받침하는 핵심 생산기지로 활용된다.
AI DV는 차량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구조를 뜻한다. 현대차그룹은 로보택시 수준의 자율주행 레벨4 이상 기술까지 AI DV를 고도화하고 있다. 이 경쟁력은 차량 소프트웨어 개발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데이터를 생산 현장에 반영하고, 품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제조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울산은 EV와 수소를 함께 맡는다. 현대차그룹은 울산 EV 공장에 이어 수소연료전지공장을 건설하고, 차세대 수소연료전지와 고분자전해질막(Polymer Electrolyte Membrane, PEM) 수전해기를 수출 주력 상품으로 육성한다. 내연기관차 대량 생산의 상징이던 울산은 EV, 수소연료전지, 수전해 설비가 함께 배치되는 전동화·청정에너지 제조 거점으로 바뀐다.
미래 핵심 부품 클러스터는 울산과 대구, 창원을 잇는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울산에 현대모비스 배터리 시스템 조립라인을 마련하고, 대구에는 현대모비스 모터·제어기 생산라인을 둔다. 경남 창원에는 현대위아 전기차용 열관리 시스템 생산라인이 들어선다.
이 배치는 전기차 경쟁의 핵심이 완성차 조립에서 부품과 제어 기술의 통합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터리 시스템은 주행거리와 충전 안정성에 영향을 주고, 모터와 제어기는 출력과 효율, 주행 감각을 좌우한다. 열관리 시스템은 배터리와 구동계의 성능 유지, 혹한·혹서 환경에서의 효율 확보와 맞닿아 있다.
전기차의 상품성은 조립라인 마지막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배터리 시스템, 모터·제어기, 열관리 시스템의 설계와 생산, 제어 기술이 처음부터 맞물려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이 부품 축을 영남권 안에 배치하는 이유도 개발과 생산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래차 시장에서 생산 거점의 경쟁력은 물량보다 대응 속도와 기술 통합 능력에서 갈린다.
제조 AI는 이번 투자 구상에서 산업적 의미가 큰 축이다.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제조 AI 기반 지능형 공장은 생산 설비, 물류, 품질 관리 등 공장 전반의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최적화하는 체계다. 공장에서 쌓이는 데이터가 생산 효율과 품질 개선으로 돌아오고, 다시 학습 데이터로 축적되는 구조다.

자동차 산업에서 제조 데이터는 점점 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작동하는 미래차에서는 공정 데이터, 검사 데이터, 주행 데이터, 부품 데이터가 모두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제조 AI는 이 데이터를 공장 운영의 판단 기준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영남권은 제조 AI를 실증하고 확산하기 위한 조건을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완성차 공장과 부품 생산기지가 밀집해 있고, 협력사 생태계도 넓다. 데이터가 축적되는 공장과 이를 적용할 생산라인이 같은 산업권 안에 있다는 점에서 제조 AI 확산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새만금 프로젝트와의 연결성도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서 △AI △로봇 △수소에너지 중심의 미래 산업 생태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영남권 투자는 기존 제조 기반을 미래차와 제조 AI 중심으로 전환하는 축을 맡는다. 새만금이 신사업과 에너지 기반의 확장성을 담당한다면, 영남권은 대량 생산 경험과 부품 생태계를 바탕으로 미래 산업을 제조 현장에 구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미래 항공·우주 분야는 현대차그룹의 기술 반경을 넓히는 영역이다. 미국 미래 항공 모빌리티 전문 법인 슈퍼널은 전동화 파워트레인 기반 차세대 기체를 영남권에서도 병행 개발한다. 현대차그룹은 우주 발사체 엔진, 달 탐사 로버(Rover) 제작 등도 추진하며 자동차와 로봇에서 쌓은 전동화·자율주행·AI 기술을 다른 이동 영역으로 확장한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는 미래 산업의 기반 조건과 연결된다. EV 공장, 수소연료전지 생산, 제조 AI, 데이터 기반 공장 운영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전제로 한다. 현대차그룹은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 해상풍력, 수전해 플랜트 등을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관련 인프라를 차세대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의 구상은 자동차 제조사의 생산 투자보다 넓은 산업 재편으로 이어진다. 미래차 산업은 차량 생산과 함께 전동화 부품, AI 공정, 제조 데이터, 수소 생산, 전력 인프라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영남권 투자는 이 요소들을 기존 제조벨트 안에서 연결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관건은 연결성이다. AI DV 상용화, 레벨4 이상 자율주행 고도화, 제조 AI 적용, 수소와 에너지 인프라 구축은 모두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제다. 울산과 대구, 창원에 배치된 생산기지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끝나면 투자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완성차와 부품, 데이터, 에너지 인프라가 하나의 산업 흐름으로 연결돼야 영남권 제조벨트의 전환이 성과를 낼 수 있다.
협력사와 인재 체계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영남권 자동차 부품 생태계는 내연기관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전동화와 AI 제조 전환이 빨라질수록 기존 협력사도 배터리 시스템, 모터, 제어기, 열관리, 소프트웨어, 데이터 기반 품질 관리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협력사 교육 체계가 생산기지 전환 속도를 따라가야 첨단산업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십 년간 축적해 온 현대차그룹의 제조 역량을 미래 첨단산업 분야로 확장함으로써 그룹의 성장 동력 강화 및 대체불가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내 산업경쟁력 강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42조원 투자는 영남권 제조벨트에 다음 역할을 부여한다. 울산의 EV·수소, 대구의 전동화 구동계, 창원의 열관리 시스템이 하나의 미래차 밸류체인으로 이어지고, 제조 AI와 에너지 인프라가 이를 떠받친다. 영남권은 자동차를 생산하던 지역에서 AI와 전동화, 에너지가 결합된 미래차 산업을 실제 제조 체계 안에서 구현하는 거점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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