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유럽, ‘에어컨’이 없는 이유

시사위크
 지난 6월 말부터 유럽 전역을 덮친 폭염으로 최고기온은 40도를 웃돌고 있다. 해양 온난화 심화로 인한 ‘오메가 열돔’ 현상이 원인이다. 이 가운데 에어컨 보급 부족은 더 큰 피해를 낳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지난 6월 말부터 유럽 전역을 덮친 폭염으로 최고기온은 40도를 웃돌고 있다. 해양 온난화 심화로 인한 ‘오메가 열돔’ 현상이 원인이다. 이 가운데 에어컨 보급 부족은 더 큰 피해를 낳고 있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유럽이 말 그대로 펄펄 끓고 있다. 지난 6월 말부터 유럽 전역을 덮친 폭염으로 최고기온은 40도를 웃돌고 있다. 해양 온난화 심화로 인한 ‘오메가 열돔’ 현상이 원인이다. 고기압이 제트기류를 막아 열기를 풍선처럼 가뒀다. 이에 유럽 대기에 유입된 북부 아프리카의 공기가 정체, 극심한 더위가 발생했다.

기록적 폭염에 피해도 막심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번 폭염으로 유럽 전역서 초과 사망자가 1,300명 이상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프랑스에서는 장례식장 부족 현상까지 발생했다. 곳곳에 철도와 도로가 녹아 교통망에도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유럽의 폭염 피해가 타 지역보다 훨씬 심각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에어컨’ 보급의 부족이다. 글로벌 기술·경제 선진국이 대거 포진한 유럽이 고작 에어컨 부족으로 경제·사회 전반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폭염을 피해 센강을 뛰어드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 / 뉴시스
폭염을 피해 센강을 뛰어드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 / 뉴시스

◇ 역대 최악의 폭염 겪는 유럽, ‘시원’해서 생긴 에어컨 보급 문제

“파리의 샹젤리제, 에펠탑이요? 1분도 밖에 못 있겠어요. 이러다 알프스도 다 녹을 것 같아요.”

지난주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온 지인 A씨가 말했다. 2주 간의 출장 기간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유럽에 질려버렸다는 표정이었다. 새까맣게 탄 피부가 그 말을 증명하는 듯했다. 실제로 날씨가 서늘하기로 유명한 독일과 스위스는 각각 지난달 41.3도, 38.8도를 기록, 역대 최고 더위를 갱신했다.

이때 A씨는 가장 괴로웠던 것은 에어컨의 부재라고 말했다. 고급호텔이 아닌 이상 에어커은커녕 선풍기도 흔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식당, 역사 등에서 에어컨이 틀어진 경우는 거의 없어, 그늘이 아닌 이상 서 있는 것도 힘든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GDP 대비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럽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 수준이다. 2026년 기준으로는 25%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일본 보급률이 90%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격차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한국 에어컨 보급률은 무려 98%다.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GDP 대비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럽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 수준이다. 2026년 기준으로는 25%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GDP 대비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럽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 수준이다. 2026년 기준으로는 25%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유럽 지역 내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기후’ 때문이다. 현재 지구온난화 발 기후변화로 극심한 폭염이 발생하긴 했지만 유럽 지역은 대체로 서늘한 기후였다. 북대서양 난류, 편서풍의 영향으로 동위도상의 다른 지역 대비 여름 기온이 훨씬 낮다. 특히 북유럽의 여름 평균 기온은 27도 수준이었다.

이 같은 서늘한 기온에 유럽 국민들은 에어컨을 살 의향 자체가 그동안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베니스대학교 경제학과 연구팀은 1990년부터 2019년까지 17개 유럽 국가 전력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일 평균 기온 24도 이하의 서늘한 기후지역에서는 1인 소득과 관계 없이 에어컨 보급률이 15~25%면 포화상태에 이름을 확인했다.

베니스대학교 연구진은 “이론상 연간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초과하는 지역에서는 냉방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해 50~70%에 달한다”며 “하지만 실증 분석 결과, 유럽의 현재 1인당 소득은 이미 에어컨 보급을 뒷받침할 만큼 충분히 높지만 서늘한 주변 기온 덕분에 보급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문화적·건축적·정체성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많다. 즉,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 보존으로 인해 에어컨 등 냉방장치 설치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진은 2018년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 사진=박설민 기자
유럽은 문화적·건축적·정체성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많다. 즉,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 보존으로 인해 에어컨 등 냉방장치 설치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진은 2018년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 사진=박설민 기자

◇ 오래된 건물·비싼 전기요금도 보급 방해요소

하지만 유럽의 저조한 에어컨 보급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가시진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유럽 폭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유럽은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기온이 오르는 지역이다. 

지난해 ‘유럽환경청(EE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2015년에서 2024년 사이 산업화 이전보다 약 2.19~2.26도 평균 기온이 상승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최대치 1.25도 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즉, 과거부터 이미 날씨가 더웠음에도 유럽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핵심 요인은 유럽 특유의 ‘건축양식’이다. 유럽은 문화적·건축적·정체성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많다. 즉,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 보존으로 인해 에어컨 등 냉방장치 설치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EURAC 연구소 재생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유럽 건물의 14%가 1919년에, 26.4%가 1945년 이전에 지어진 것들이다. 특히 영국·스페인·덴마크·프랑스는 1945년 지어진 건축물 비율이 전체 3분의 1을 넘는다.

밀라노 공대 연구진은 “유럽의 역사적 건물의 개보수 방안 선택과 시행이 여러 사회·기술적 장벽 때문에 제한된다”며 “대표적인 장벽으로는 규제(regulations), 역사적 건축물의 열·습기 거동에 대한 지식 부족, 경제성 부족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IEA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요금은 2019년부터 2024년 기간 평균 36% 상승했다. 동 기간 미국의 상승률이 26%임을 감안하면 매우 큰 상승폭을 보였다.  비싸진 전기요금에 평균 전력 소비량 증가까지 더해져 유럽 가정에선 에어컨 사용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IEA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요금은 2019년부터 2024년 기간 평균 36% 상승했다. 동 기간 미국의 상승률이 26%임을 감안하면 매우 큰 상승폭을 보였다.  비싸진 전기요금에 평균 전력 소비량 증가까지 더해져 유럽 가정에선 에어컨 사용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높은 에어컨 도입·유지 비용도 유럽 내 에어컨 보급을 늦추는 방해요소다. IEA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요금은 2019년부터 2024년 기간 평균 36% 상승했다. 동 기간 미국의 상승률이 26%임을 감안하면 매우 큰 상승폭을 보였다. 

베네치아 카포스카리대·뮌헨대·보스턴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를 참고하면 에어컨 등 냉방시스템 보유는 가정 내 전력 소비를 평균 36% 높인다. 즉, 비싸진 전기요금에 평균 전력 소비량 증가까지 더해져 유럽 가정에선 에어컨 사용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 연구진은 “미래 소득 변화, 사회 및 인구 통계학적 요인, 동시에 발생하는 기후 온난화는 2050년까지 에어컨 보급률을 크게 높이고 냉방을 위한 전력 소비량을 급증시킬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은 간과되고 있는 여러 정책적 과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에어컨 블루오션 된 유럽, 삼성·LG전자에 기회되나

에어컨 보급이 더딘 가운데 유럽 내 폭염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EEA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 1980년부터 2020년 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사망자 중 86~91%는 폭염으로 인한 것이었다. 실제 사망자 숫자로 환산하면 7만7,000명에서 12만9,000명에 달한다.

때문에 결국 유럽 내 에어컨 보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베니스대학교 경제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고온화 시나리오(SSP5-8.5)’가 유지될 시 2050년까지 유럽 내 에어컨 보급률은 두 배 이상 증가, 40%에 달할 전망이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해 기후변화가 극심히 일어날 경우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유럽 에어컨 시장은 2030년 142억5,000만달러(약 21조7,825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5.8% 수준이다. 폭염 증가, 낮은 기존 보급률을 기반으로 전반적인 성장세가 예측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필두로 한 가전기업들에게는 글로벌 에어컨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독일 ‘품질금융연구소(ITQF)’, 이탈리아 ‘ITQF’에서 조사한 소비자 만족도에서 에어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필두로 한 가전기업들에게는 글로벌 에어컨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독일 ‘품질금융연구소(ITQF)’, 이탈리아 ‘ITQF’에서 조사한 소비자 만족도에서 에어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 삼성전자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필두로 한 가전기업들에게는 글로벌 에어컨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특히 유럽은 ‘탄소중립’ 관련 규제가 타 국가보다 강한 지역이다.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보유한 ‘친환경 에어컨’ 기술의 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신 에어컨 모델에 친환경 ‘R32 냉매’를 사용 중이다. R32 냉매는 ‘디플루오로메탄(CH₂F₂)’ 기반 냉매다. 주변 열을 잘 흡수·방출하는 특성이 있어 필요한 냉매량이 적다. 이를 지구온난화 영향 수치로 환산하면 기존 냉매 대비 68% 정도 우수하다.

이 같은 시장 흐름에 맞춰 양 사 모두 유럽 내 에어컨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독일 ‘품질금융연구소(ITQF)’, 이탈리아 ‘ITQF’에서 조사한 소비자 만족도에서 에어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도 유럽 내 ‘에어솔루션연구소’를 신설, 냉난방공조(HVAC) 사업 역량 강화를 진행 중이다.

다만 값싼 물량의 중국 제품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한 ‘세계무역통계 솔루션(WIT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유럽 내 에어컨 및 관련 제품 수입액은 총 39억5,100만 달러(약 6조387억원)이다. 이 중 중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억8,100만달러(약 4조973억원)으로 68%에 달한다. 반면 한국 제품은 1억5,300만달러(약 2,338억원) 수준으로 점유율 3.9%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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