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로 널리 알려진 이 경구는 역사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지켜온 가치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역사를 희화화하고 왜곡하는 행위를 가볍게 넘긴다면 같은 잘못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희화화 논란 이후 학생들의 미래와 징계 수위만을 앞세워 비판을 이어가는 국민의힘을 향해 정작 역사 왜곡의 책임과 재발 방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어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역사 희화화 책임보다 징계 수위에 쏠린 논쟁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최근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응원과 행동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됐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 1일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의결했다. 징계는 즉시 적용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는 몰수패 처리됐으며, 하반기 주요 전국대회 출전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선수와 지도자 개인에 대한 책임은 별도의 조사와 심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징계가 발표되자 정치권에서는 학생들의 미래를 우려하며 징계 수위가 과도하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출전정지 조치의 재검토를 요구했고, 양향자 최고위원은 “벌이 너무 과하다”고 밝혔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아선 안 된다”고 했으며, 주진우 의원은 “학생은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훈육이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의원 역시 “아이들 꿈마저 빼앗나”라며 징계 수위를 문제 삼았다.
이 밖에도 김재섭 의원은 “역사를 희화화하고 특정 지역을 낙인찍어 조롱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면서도 “고등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무게는 비정상적으로 무겁다”고 했다. 이어 “실수를 인정하고 올바르게 배워갈 현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자 진짜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우재준 청년최고위원도 “지나친 성역화, 오히려 반감 생길 것”이라며 징계와 사회적 비판의 수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학생들의 미래와 징계 수위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행위는 단순한 학생들의 일탈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조롱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만큼 상처를 받은 피해 학교와 학생,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려와 회복 방안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권이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성년 학생에게 한 번의 잘못이 평생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역시 교육의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정치권의 관심이 징계 수위와 학생들의 진로에 집중되는 동안 정작 사건의 본질인 역사 왜곡과 민주주의 가치 훼손에 대한 책임,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역시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협회는 팀에 대한 출전정지 처분을 신속히 결정하면서도 선수 개인과 지도자에 대한 책임은 별도의 조사와 심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단체와 개인의 책임을 구분해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징계 수위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와 교육적 효과, 대회의 공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학교폭력이나 경기장 내 일탈과는 성격이 다르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가 법률로 인정한 민주화운동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이를 희화화한 행위는 특정 지역이나 세대를 조롱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합의해 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교육은 책임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배우게 되고, 그 과정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미래를 보호하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의미다.
이번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것은 피해자들이다. 광주제일고 선수들과 학교 구성원은 물론,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가족,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상처와 모욕감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메시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학생들의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그들의 행동으로 상처를 입은 이들에 대한 위로와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교육 강화 방안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균형 있는 접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미래와 교육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육은 책임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만 앞세워 책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면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을 기회도 함께 놓칠 수 있다. 학생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사회의 책무다. 정치권 역시 징계의 강도만을 둘러싼 소모적 공방을 넘어, 역사교육과 인권교육을 어떻게 보완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인지에 더 많은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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