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정부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에 국가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호남’이 있다. 초대형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 예고되면서다. 삼성그룹은 △글로벌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AI 데이터센터 △미래 에너지 육성을 위해 호남에 425조원을 투자한다. SK하이닉스도 서남권에 약 400조원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호남·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은 지역 균등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달 30일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현장서 ‘호남에 대한 역사적 보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남권은 넓은 평야 대비 산업체 도입 규모가 작다. 국가통계포털(KOSIS)를 살펴보면 지역내총생산(GRDP)은 영남권이 서남권 대비 약 2.5~2.8배 수준으로 높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 산업의 핵심 자원인 ‘에너지’ 확보다. 현재 정부의 핵심 전략은 재생에너지 기반 반도체 클러스터 운영이다. 호남권에 풍부한 태양광을 이용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반도체 사업에서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의 힘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반도체·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 역시 지난달 30일 정부 간담회 자리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선 원전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저렴·안정적 원자력, AI·반도체 산업의 주축
“1978년부터 47년간 원자력이 국내 전력 3분의 1을 생산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막대한 양의 전기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는 1일 서울대학교 공대 원자핵공학과와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개최한 ‘제41회 원자력 관리자를 위한 하계강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행사는 원자력 산·학·연 각 분야 관계자들을 대상, 관리자 소양 및 개별 역량 증진 지원을 위해 마련됐다.
이번 강좌의 핵심 주제는 ‘인공지능(AI)’ 시대 원자력의 필요성이다. AI와 반도체 산업에는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필수다. 이를 위해선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이 결합한 ‘에너지 믹스(Energy Mix)’가 필요하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AI데이터센터 전력 소비의 60%를 원자력에너지와 재생에너지가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반도체 산업에 있어 원자력 에너지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가성비’다. 원자력 발전은 가장 저렴한 발전 중 하나다. IEA-OECD 공동 발표에 따르면 신규 원전 건설 기준 발전 단가는 약 1MWh 당 약 69달러다. 동일 발전 규모 천연가스, 석탄 기반 화력 발전 단가가 71달러, 88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더 저렴하다. 즉, 기저전력 중 가장 저렴한 발전인 셈이다.
이때 일각에서는 대표적 재생에너지원인 ‘태양광’ 발전 단가가 더 저렴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보고서에 따르면 1MWh 당 태양광 발전 단가는 약 30~60달러다. 건설 비용 등이 원자력 발전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원전 기반 발전 단가로 환산할 시 비용은 원자력 발전이 30~40달러로 더 저렴하다.
전력판매단가에서도 원자력 발전은 가장 저렴하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력판매단가는 △원자력 79원 △태양광 120원 △석탄 138원 △LNG 158원이다. 국내 전체 전력 생산량의 31%를 차지하지만 전력 판매 대금도 20.3%에 불과하다. 즉, 최대 전력공급원 중 하나지만 가격은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라 볼 수 있다.
주한규 교수는 “원자력은 고밀도 에너지이자 저비용, 고품질 전력원으로서 우리나라의 낮은 전기 요금 유지의 핵심 수단”이라며 “탄소중립 실현과 데이터센터 확대에 필요한 저비용의 안정적 무탄소 대전력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안정적 기저전력, 탄소중립에도 필요
폭발적 성장을 보이고 있는 AI와 반도체 산업은 사용 전력량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AI데이터센터 전력소비는 약 945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동 기간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 전력소비 예상치는 237TWh이다. 즉, 2030년엔 연간 AI 인프라와 반도체 제조에만 연간 437~637TWh의 전력이 필요할 수 있다.
전력 소비량의 증가는 곧 기후변화 문제와 직결된다. IEA 2025년 ‘Energy and AI’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증가에 따른 탄소배출량은 2035년 기준 3억~5억톤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또한 반도체 산업 내 전력 사용량 증가에 따른 탄소배출 증가량도 2030년 기준 8,6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정부의 ‘재생에너지’ 기반 반도체 클러스터 운영 전략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재생에너지는 끊임없이 안정적이고 동일 수준의 전력공급이 필수적인 AI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정 설비에 최적화된 에너지원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때문이다. 이를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이라 부른다. 둥켈플라우테는 독일어로 ‘어둡고 고요한 침체’라는 뜻이다. 겨울철 등 구름이 많거나 바람이 적은 날 전력 발전이 급감하는 시기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매년 3개월 이상의 둥켈플라우테가 발생한다.
탄소배출에 있어도 원자력 에너지의 장점이 있다. 유엔(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의 1kWh 전기 생산당 1kWh당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12g이다. 타 발전원 대비 이는 우라늄 채굴·농축·연료 제조·발전소 건설·폐로 등 전 과정을 포함한 것이다. 태양광 발전의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이 45g인 것과 비교하면 원자력 발전의 탄소배출량이 오히려 더 적다.
주한규 교수는 “AI시대가 도래한 현재, 재생에너지만으로 100%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안정성과 고비용 때문에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특히 국내의 경우 낮은 풍속과 태양빛의 간헐성 때문에 높은 발전 단가와 막대한 에너지 저장비용, 자원 소모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 안전·고효율 원전, 핵심은 ‘정비’
현재 원자력 발전은 AI와 탄소중립, 반도체 산업이라는 3가지 국가 핵심 과제가 엮인 상태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하고 성공적인 원자력 발전 운영을 위해선 정확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조석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안전기술 부사장은 첫 번째 핵심 과제로 원전 건설 단계의 문제점 해결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원전 건설은 ‘건설-운영’의 중간 단계서 ‘본사 기능 영역 관리자(CFAM)’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이에 한수원은 2024년 12월 본사 시운전 전담조직을 발족했다. 건설-운영 통합조정자 역할이다. 또한 AI시스템 등을 활용, 업무 효율성 증대 등도 진행 중이다.
조석진 부사장은 “최고의 원자력 발전소 만들기 위해선 조직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설계사. 연구자, 회사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 받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원자력의 발전을 위해선 이 부분을 수정하고 장기간 주기의 사업 역량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 문제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이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석진 부사장이 말한 안정적 원전 운영에서 중요한 것은 ‘정비’다. 그중에서도 ‘가동 중 정비(OLM)’는 한수원의 핵심 사업 전략 중 하나다. OLM은 원전 안전설비의 예방정비를 발전소 출력운전 중 수행하는 것이다.
OLM을 적용하면 발전 손실을 줄이는 동시에 설비 이상을 조기에 발견,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내 원자력 산업계는 2010년 OLM 도입을 추진했으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중단됐다. 이후 지난해 새울2호기에 시범 적용을 시작, 순차적으로 다른 원전에도 확대할 예정이다.
조석진 부사장은 “미국의 경우 정비체계혁신을 통해 원전 가동률 60~70% 수준을 90%로 향상시켰는데 이는 원전 1GW 규모 27기를 건설한 효과”라며 “우리 원전 역시 관련 기술을 도입한다면 정비하는 와중에 발전소가 정지해 있는 리스크와 안전 문제가 동시에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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