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달려온 끝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다만 초고속성장은 우리 사회에 과실만을 안겨주지 않았다.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지역 간 불균형을 초래해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원인이 됐다. 전국 지역 곳곳이 저마다의 문제로 시름하고 있는 현재, 우리는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아가야 할까. [편집자주]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문화시설은 지역 주민의 정주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영화관, 도서관, 전시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은 지역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도시 경쟁력도 좌우한다. 이 중 도서관은 시대 요구에 따라 변모하면서 지역 내에서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 지역 재생의 관점에서 도서관의 활용 가치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공공도서관의 역할 확장… 독서공간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전국 문화시설 중에 가장 많은 시설은 뭘까. 답은 ‘도서관’이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공공도서관은 1,328관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자체 운영 도서관 1,064관으로 가장 많다. 이어 △교육청 운영 도서관이 236관 △사립 운영 도서관 28관 순이다.
지역 공공도서관 수를 살펴보면 지역별 편차는 존재한다. 먼저, 경기도가 328관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214관 △경남 81관 △전남 78관 △경북 76관 △강원 70관 △전북 68관 △충남 66관 △부산 60관 순이었다. 이처럼 시도별로 공공도서관의 양적 편차는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도서관수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왔다.
지난해 전국 총 공공도서관수는 2024년 대비 32개 관이 늘었다. 총방문자 수는 전년보다 2.8% 늘어난 2억3,053만명을 기록했다. 1관당 방문자 수는 17만3,593명으로 전년 대비로는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만 2021년엔 1관당 방문자 수가 11만5,016명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많이 늘어난 수치다.
‘작은도서관’까지 포함할 경우 전국 도서관수는 8,158개으로 확장된다. 2024년 기준 작은도서관은 6,830개로 집계됐다. 작은도서관 역시, 관수와 방문자 수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1인당 방문자수는 2020년 3,396명에서 2024년 4,755명으로 늘었다.
도서관 방문객수 확장되고 있는 데엔 관수 자체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서비스 기능이 확장되고 있는 영향도 큰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도서관은 지역 사회에서 복합문화플랫폼으로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 단순한 책 대여점과 독서실 공간을 넘어, 강연과 전시, 교육, 공연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1관당 도서관은 연간 92건의 평균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관당 프로그램 참가자 수는 2만3,304명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다.
이용자 수요를 반영한 공간 혁신도 이뤄지고 있다. 과거의 폐쇄적인 열람실 구조에서 벗어나, 개방감 있는 공간 설계를 통해 공부하고, 쉬고,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개관한 서울 강서구 ‘강서도서관 가양관’도 이러한 트렌드가 반영된 도서관 중 한 곳이다.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들어선 이 도서관은 개방형 복합문화공간 구조로 설계됐다. 지상 4층, 대지면적 6,685㎡ 규모로 조성된 도서관엔 독서 및 학습, 창작, 휴식, 전시, 미디어 제작, 문화행사 관람 등을 위한 공간이 다채롭게 배치됐다. 주민들의 교류와 휴식, 다목적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다는 후문이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는 ‘시사위크’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공공도서관은 굉장히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라며 “이용자의 요구와 정책적인 관점이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옛날엔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책과 좌석만 원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커졌다. 정책적 관점도 점차 문화적, 이용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서비스와 운영 방식, 공간 구성도 이를 반영해 변화해왔다”고 설명했다.
◇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만든다”
도서관은 단순한 문화시설을 넘어,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공동체 복원과 사회문제 해결, 도시 재생의 매개체로 활용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비평가는 “도서관은 지역 문화의 중심이자, 주민의 일상 공공 기반시설로 역할을 한다”며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도서관계의 관심은 ‘공동체 형성’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비평가는 저명한 도서관 전문가인 데이비드 랭크스 미국 텍사스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좋은 도서관은 책을 모으고, 괜찮은 도서관은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만든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공동체 형성의 거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말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문헌정보학계에선 도서관이 지역소멸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충남도서관이 2024년 9월 개최한 ‘저출산·인구소멸 시대, 공공도서관의 과제 및 역할’ 토론회에서 노영희 건국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인구소멸 대응책으로 도서관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노영희 교수는 같은 해 11월 발표한 논문(‘인구소멸시대 공공도서관의 과제와 역할 변화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인구감소위기 지역에 세워진 공공도서관의 사례를 분석해 도서관이 지방소멸 대응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파악해보고 이를 기반으로 다앙햔 대응 전략을 도출하기도 했다.
◇ 도서관의 활용 가치 확장… ‘지역 침체’ 해법될까
논문에선 여러 도서관의 사례가 제시됐다. 이 중 일본 다케오시립도서관의 사례가 주요하게 언급됐다. 논문에 따르면 인구 5만명의 일본 다케오시는 2013년 민간 기업인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에 도서관 운영을 위탁한 후, 문화적 및 경제적 효과를 크게 보았다. 다케오도서관은 도서관 겸 서점으로 재단장된 후, 연간 방문객 수가 25만 명에서 92만명으로 증가했다. 지역 숙박시설 가동률과 음식점 매출도 각각 2배와 1.2배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다케오시는 36억 엔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봤다고 한다.
일본은 도서관을 활용한 지역 재생 실험이 활발하다. 노 교수는 다케오시립도서관 외에도 △워케이션의 성지가 된 우미미라이 도서관 △지역경제 활성화의 대안으로 설립된 이시카와현립도서관 △유스하라초의 ‘구름 위 도서관’을 소개했다. 국내 사례로는 인제 기적의 도서관을 언급했다.
노 교수는 해당 논문을 통해 “도서관은 접근성이 뛰어난 공공시설로, 다양한 문화 활동과 융합적 환경을 제공해 지역 주민들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높이는 공간으로 기능한다”며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복지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복합문화시설로서의 도서관 건립이 지역소멸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노 교수는 여러 사례 및 정책 연구를 토대로 △문화중심 도시재생 사업을 연계한 도서관 건립 △유휴 부지 및 폐교를 활용한 도서관 건립 △고령화 대응 및 외부인 유입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지역 정체성을 담은 도서관 건립 등을 대응 전략으로 제시했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 인도의 저명한 문헌정보학자인 시얄리 라마미타 랑가나단이 도서관학 5법칙 중 하나로 제시해 유명해진 말이다. 도서관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생명체와 같다는 뜻이다. 과연 도서관의 진화가 지역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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