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인간의 뇌는 매우 작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세계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뇌는 약 1.4kg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은 장기는 인간의 모든 삶을 관장한다. 생각과 감정, 기억과 학습, 움직임과 의식까지 모두 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만큼 뇌에 생기는 이상은 치명적이다. 자폐스펙트럼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전증 등 다양한 뇌 질환은 개인의 삶과 주변 지인들, 나아가 사회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생명과학분야에서 뇌과학 분야가 인류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그렇다면 인류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이 거대한 세계를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그리고 난치성 뇌질환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자들은 어떤 도전에 나서고 있을까. 인간의 뇌라는 작지만 가장 거대한 우주 속, 이곳을 탐험하는 뇌과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뇌질환 연구단(Center for Synaptic Brain Dysfunctions)’을 찾았다.
◇ 뇌의 근본, ‘시냅스’서 뇌 질환 근원 찾는 사람들
15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본원, 자연과학동 내부로 들어서자 흰색의 연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에서는 연구자들이 여러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쥬라기공원’같은 SF영화나 게임 속에서 자주 묘사되는 첨단유전과학 연구실의 모습과 유사했다.
기자가 방문한 장소는 IBS 시냅스뇌질환 연구단의 연구센터였다. 2012년 IBS에서 첫 출범한 8개 연구단 중 한 곳이다. 2017년 첫 5년 차 성과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 말 그대로 글로벌 뇌 질환 연구의 중심 중 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IBS 시냅스뇌질환연구단엔 수장인 김은준 단장을 비롯,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들이 모여 있다. 이곳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조현병, 치매 등 주요 뇌질환의 원인이 되는 시냅스 기능 이상을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기초과학에서 출발한 이들의 연구는 난치성 뇌 질환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며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은준 단장은 “뇌 질환 연구에 있어 경쟁력은 우리가 해외 저명한 연구진들과 동등하거나 더 앞서고 있다 생각한다”며 “이 정도로 연구 비용과 시설, 인재들을 지원해주는 곳은 전 세계 통틀어도 IBS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물론 뛰어난 연구시설과 인재를 갖췄다고 해서 뇌 질환의 완전한 정복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뇌는 전체 체중의 2~3% 수준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복잡성은 타 장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간의 뇌에는 약 86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있다. 각 뉴런에는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수천 개 존재한다.
이때 시냅스가 뉴런을 연결하는 전체 연결 수는 약 100조~1000조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연결 갯수로 환산하면 최대 1,000조개가 넘는다. 말 그대로 하나의 ‘작은 우주’인 셈이다. 이 중 하나라도 치명적인 이상이 발생하면 뇌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은준 단장은 “복잡한 우주 행성의 움직임, 기상을 예측하는 슈퍼컴퓨터 조차 아직 우리의 작은 뇌 데이터 일부조차 완벽히 해석하지 못한다”며 “범위의 스케일이 다르긴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뇌를 작은 우주라고 우리가 부르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 유전자 결손 쥐로 추적하는 뇌 질환의 기원
김은준 단장의 안내를 받아 연구단 연구센터의 핵심 시설 내부로 들어섰다. 흰색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곳이기에 철저한 위생 관리가 필수였다. 김은준 단장에 따르면 센터 내부에는 약 5,000여마리의 실험용 쥐가 살고 있다고 했다.
연구실 내부 투명한 아크릴 케이지엔 실험용 쥐들이 한 마리씩 들어있었다. 쥐의 머리에는 은색 고깔 모양의 모자처럼 보이는 장치가 씌워져 있었다. 이는 뇌파를 측정하기 위한 장비였다. 실험에서 쥐의 행동 변화와 뇌파 변화를 측정, 뇌 질환의 근본적 발병 원리와 진행 상황 연구에 사용된다.
실제로 연구단 내부 실험실에서 커다란 모니터로 쥐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두운 암실에서 자폐 증세가 있는 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실험이었다. 미로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은색 뇌파 탐지 장치를 머리에 쓴 쥐는 길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밖에도 쥐의 음향 반응 실험실, 빛 반응 실험실 등 다양한 테스트 공간이 존재했다. 마치 인간이 건강검진을 받을 때 병원 내 여러 테스트실을 방문하는 것과 비슷하게 보였다.
이때 궁금증이 들었다. 어떻게 쥐가 ‘자폐 스펙트럼’ 등 뇌 질환 증세를 보일 수 있을까. 배미현 IBS시냅스뇌질환연구단 연구위원은 ‘유전자 결손’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실험용 쥐의 유전자 일부 혹은 전체를 유전자가위 등 기술로 없애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폐 등 뇌 질환을 실험용 쥐에서 인위적으로 유발할 수 있다.
배미현 연구위원은 “현재 뇌 질환 연구에는 유전자 결손된 쥐 모델을 주로 사용한다”며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대부분 사용하지만 3~15% 정도는 해외 등에서 이미 제작된 모델을 들여와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험실 한편에서는 한 연구원이 스포이드로 액체를 캡슐 안에 넣고 있었다. 이는 실험용 쥐의 유전자 샘플이었다. 쥐의 발가락에서 채취한 시료를 약품에 녹여 샘플화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하면 자폐 등 뇌 질환이 쥐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유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IBS 연구진은 “자폐 연구에 돌연변이 쥐 모델을 사용하는데 이 쥐들을 교배했을 때 태어난 쥐가 자폐가 있는지, 아니면 평범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샘플을 채취한다”며 “유전자증폭기술(PCR)을 활용해 아주 조금의 조직만 채취해도 많은 양의 돌변변이 위 유전자 샘플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전 세계적 인정 받는 연구단, 다음 과제는 ‘인재를 위한 자리’ 마련
국가적 지원과 뛰어난 인재, 연구진들의 협력으로 연구단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성과들을 대거 발표했다. 2012년에는 시냅스 이상이 자폐 스펙트럼 이상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규명,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후속 연구가 지난 9일 발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단의 성과는 뇌 질환 환자 가족들에게 작게 나마 희망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록 환자는 2022년 기준 3만7,603명이다. 국내 연구에서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유병률이 최대 2.64%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김은준 단장은 “한국의 자폐 커뮤니티가 생각보다 큰데 지금까지 IBS 규모의 연구단이 없다가 생긴 이후 연락해오시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그분들께 기초과학의 한계를 말씀드리면 실망과 희망을 동시에 가지시며 응원의 말씀을 해주시는데 감사하고 과학자로서 힘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단이지만 부족한 점도 있다. 특히 지원이 필요한 것은 ‘인재’라고 김은준 단장은 말했다. 과학자들을 보조할 ‘보조 인력’의 안정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은 창의성의 경쟁이기도 하지만 ‘규모의 경쟁’ 측면도 강하다는 것이다.
김은준 단장은 “이는 IBS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연구기관의 공통적 사안으로 모든 과학자들이 교수나 연구책임자(PI)가 될 수는 없다”며 “이때 뛰어난 과학도분들을 위한 스텝사이언티스트, 스텝엔지니어 자리를 마련한다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IBS를 포함, 국가 연구기관의 경우 새로운 행정 TO는 많아야 한 해 2~3명 나올까 말까 하다”며 “이런 보조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뇌 질환 연구, 더 나아가 국가 기초과학분야 발전의 건강한 토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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