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한국은행이 올해 하반기에도 소비자물가가 3% 내외의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라는 무거운 진단을 내놓았다.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충격의 시차 파급 효과가 본격화되는 데다, 최근 일부 IT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이례적인 성과급 지급 움직임이 산업 전반의 임금 인상으로 확산될 경우 물가를 자극하는 새로운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은행은 17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5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지난해 하반기(2.2%)보다 오름세가 확대됐다. 특히 2월 말 중동전쟁 발발 이후 유가가 급등하면서 5월 소비자물가는 3.1%까지 치솟아 2024년 3월 이후 처음으로 3%대를 돌파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반도체 등 IT 업종의 실적 호조에 힘입어 소득 여건이 개선되고 민간소비 모멘텀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고유가·고환율 장기화에 따른 비용 인상 압력이 기업들의 가격 전가로 이어질 리스크가 큰 상황이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내외,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 중후반의 높은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하락해도 ‘6개월 시차’ 두고 비에너지 품목 전가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기간을 바탕으로 고유가 충격의 시차 효과를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 원유가격이 상승하면 석유류 가격에 즉각 반영되는 직접효과가 나타난 뒤, 약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공업제품 등 비에너지 품목으로 비용이 전가되는 '간접효과'가 가시화되어 1년 정도 지속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과거 사례를 보면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전환된 이후에도 유가 상승기에 누적된 비용 압력 탓에 간접효과는 오히려 더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은 조사국은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협상이 진전되어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이 회복되더라도 인프라 복구와 각국의 재비축 수요로 인해 유가 하락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며, 하반기 이후 유가 충격의 파급효과가 석유류 이외 품목으로 번져 물가 고공행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례적인 IT 대기업 성과급, 전 산업 임금 및 물가 상승 유발 우려
유가와 환율 외에 한은이 지목한 향후 물가 경로의 가장 큰 상방 리스크는 '임금 인상 확산 현상'이다. 올해 1분기 명목임금 상승률(3.4%) 중 IT 부문 특별급여(성과급)의 기여도는 1.3%p에 달했다. 이는 과거 10여 년간의 임금 분포 중 상위 3%에 해당하는 매우 이례적인 수준이다. 한은은 반도체 수출 호조와 성과연동형 보상체계 도입 확대로 내년 초 IT 대기업의 성과급 기여도가 상위 1%를 상회하는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적인 특별급여는 일시소득으로 인식되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최근처럼 특정 선도 부문의 성과급이 독보적으로 대폭 확대되는 환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숙련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한 기업 간의 '노동 이동' 경쟁이 유발되고, 노동자들이 임금 협상 시 눈높이를 올리는 '준거임금 조정'이 일어나면서 비IT 부문 및 대기업 전체로 임금 인상 요구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조사국 마이크로데이터 실증분석 결과, 높은 수준의 특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체의 비중이 늘어날 경우 전 산업의 정액급여(기본급) 상승을 부추겨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유의미하게 밀어 올리는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중동전쟁이 종식되어 유가가 떨어지더라도 IT 발 소비 개선과 임금 상승세의 확산이 물가를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며, "경계감을 갖고 산업별 임금 동향과 물가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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